AI시대의 민주주의

 


AI는 인간을 해방시킬 것인가, 실업자로 만들 것인가

― 인공지능 시대와 새로운 사회계약에 대한 고찰

Ⅰ. 서론

어제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보다가 한동안 말을 잃었다.

영상 속에는 직원이 열 명 남짓한 중간 규모의 주택건설 회사가 등장했다. 그런데 그 회사는 주택을 현장에서 처음부터 짓는 것이 아니라, AI와 로봇을 활용해 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제작한 뒤 집터로 옮겨 조립하고 있었다.

영상에서는 그 회사가 1년에 1,500채가 넘는 주택을 지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집 한 채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일주일 남짓이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던 건설현장의 상식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숫자였다. 젊은 시절 내가 보아온 현장에서는 30~40평짜리 집 한 채를 짓는 데도 수십 명이 몇 달씩 땀을 흘려야 했다. 목수, 전기공, 배관공, 미장공, 지붕공, 도장공이 각자의 순서에 맞춰 들어가야 했다. 날씨가 나쁘면 공사는 멈췄고, 자재가 늦어지면 일정은 다시 밀렸다.

그런데 이제는 집이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영상을 끄고 난 뒤에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감탄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코드를 짜는 시대가 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AI가 로봇과 결합해 건설현장까지 바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정말 어지간한 직업은 모두 흔들리는 것 아닌가.’

이 글은 바로 그 불안에서 출발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기술혁명을 반복적으로 경험해 왔다.

증기기관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을 두려워했다.

전기가 보급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컴퓨터가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졌다.

실제로 많은 직업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때마다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

농부는 공장 노동자가 되었고, 공장 노동자는 사무직이 되었으며, 사무직은 IT 전문가가 되었다.

기술혁명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믿게 되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은 이전의 기술혁명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기술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했다면, AI는 인간의 지식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AI는 변호사의 계약서 검토를 돕고 있으며, 프로그래머의 코드를 작성하고, 디자이너의 시안을 만들고, 기자의 초안을 작성하고 있다.

과거에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자동화의 위험에서 안전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높은 교육을 받은 전문직들조차 자신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술혁명이 노동시장을 뒤흔드는 동안 사회는 늘 완충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시대에도 과연 그런 일이 반복될 것인가?

만약 AI가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적은 수의 새로운 일자리만 만들어 낸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진출할 산업 자체가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인간이 평생 직업을 갖고 살아간다는 전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들은 단순히 경제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와 사회, 교육과 복지, 그리고 민주주의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오늘날 많은 정치인들이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기본소득, 직업재교육 등의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들이 AI 혁명이 가져올 구조적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문제와 마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기술혁명은 인간을 기계와 경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AI 혁명은 인간을 인간의 지능과 경쟁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인가.

아니면 노동의 의미 자체를 무너뜨리는 존재가 될 것인가.

이 글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Ⅱ. 이번 AI 혁명은 왜 과거의 산업혁명과 다른가

기술혁명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새롭지 않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직조기계가 등장하자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Luddite Movement) 운동을 벌였다.

그들은 기계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직업이 사라졌다.

그러나 역사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계는 일자리를 없앴지만 동시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수백만 명의 농민이 도시의 공장으로 이동했고, 공장이 성장하면서 관리직과 사무직이 늘어났다.

컴퓨터 혁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자수와 계산원은 사라졌지만 프로그래머와 시스템 엔지니어가 등장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기술혁명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바라보았다.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는 지금까지의 기술혁명과 결정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인간의 근육이 아니라 인간의 두뇌가 경쟁 상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의 변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프로그래밍은 가장 유망한 직업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았다.

높은 연봉.

재택근무.

무한한 수요.

젊은 세대는 앞다투어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AI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숙련된 개발자가 몇 주 동안 작업해야 했던 코드가 이제는 몇 시간 만에 작성된다.

물론 아직 AI가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다.

생산성이다.

예전에는 개발자 10명이 필요했던 프로젝트가 이제는 5명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

사장이 굳이 10명을 고용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가장 강력한 영향이다.

대량해고보다 신규채용 감소.

사람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화이트칼라의 안전신화 붕괴

오랫동안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부해라.”

“좋은 대학에 가라.”

“전문직이 되어라.”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기계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는 이 공식 자체를 흔들고 있다.

회계사가 하던 일.

변호사가 하던 일.

번역가가 하던 일.

디자이너가 하던 일.

기자들이 하던 일.

심지어 의사들의 일부 업무까지도 AI가 수행하기 시작했다.

AI는 피곤하지 않다.

불평하지도 않는다.

연봉 협상도 하지 않는다.

24시간 쉬지 않고 일한다.

기업 입장에서 생산성이 더 높은 도구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기술은 결코 뒤로 가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AI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언젠가 사회가 규제를 통해 속도를 늦출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은 거의 예외 없이 전진했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한 후 다시 마차 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컴퓨터가 등장한 후 타자기로 복귀하지 않았다.

인터넷이 보급된 후 종이신문 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AI 역시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나라가 AI 개발을 중단하더라도 다른 나라가 계속 개발할 것이다.

어떤 기업이 AI 사용을 포기하더라도 경쟁기업은 사용할 것이다.

기술혁명은 늘 선택이 아니라 경쟁이었다.

따라서 AI를 막는 것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결국 사회는 AI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번에는 새로운 일자리가 충분히 생길 것인가

낙관론자들은 말한다.

"걱정하지 마라. 새로운 직업이 생길 것이다."

그 말은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AI 트레이너.

프롬프트 엔지니어.

AI 감사관.

AI 윤리 전문가.

같은 직업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많을 것인가?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 새로운 직업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인가?

50세의 회계사가 AI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55세의 행정직 직원이 머신러닝 엔지니어가 될 수 있을까?

40년 동안 운전만 해온 사람이 AI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들이 아직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혁명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속도보다 기존 일자리를 없애는 속도가 더 빠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류는 처음으로 노동시장 자체가 축소되는 시대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문제는 경제를 넘어 정치의 영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Ⅲ. 청년실업과 민주주의 ― AI는 사회계약을 무너뜨릴 것인가

역사를 돌아보면 민주주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은 가난 자체가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실이었다.

사람은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사회는 급속히 불안정해진다.

AI 시대가 진정으로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젊은 세대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통로를 좁혀버릴 가능성 때문이다.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보증서가 되지 않는 시대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교육은 계층 상승의 가장 확실한 사다리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고,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한 제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들은 노력과 보상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사회를 지탱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대학 등록금은 계속 오르고 있다.

학생들은 막대한 학자금 대출을 안고 사회에 나온다.

그런데 정작 졸업 후 기다리는 것은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이다.

이 상황에서 AI가 등장했다.

기업 입장에서 신입사원 한 명을 채용하는 대신 AI를 활용하여 기존 직원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경제적으로만 본다면 답은 명확하다.

그 결과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초급 직무(entry-level job)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은 젊은 세대가 사회로 진입하는 첫 번째 관문이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험을 요구하는 사회"의 역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도 경력을 요구한다.

젊은이들은 경험을 쌓기 위해 직장을 원하지만,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

이미 존재하는 모순이다.

AI는 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과거에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신입사원이 담당했다.

그 과정에서 경험을 쌓고 숙련자가 되었다.

하지만 AI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신입사원을 육성할 필요성을 점점 덜 느끼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경험을 쌓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된다.

AI는 숙련자의 생산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미래의 숙련자가 성장할 통로를 좁힐 수도 있다.

이것은 단순한 고용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가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청년실업은 언제나 정치문제가 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1930년대 대공황.

1960년대 학생운동.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정치적 양극화.

이 모든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젊은 세대가 기존 질서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경제문제와 정치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미래가 불확실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급진적인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다.

그것이 좌파적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고 우파적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이다.

AI가 대규모 실업을 유발하지 않더라도 청년층의 기회 자체를 줄인다면 정치적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세대 간 계약은 유지될 수 있는가

현대 사회는 암묵적인 계약 위에 세워져 있다.

기성세대는 열심히 일한다.

젊은 세대는 공부하고 사회에 진입한다.

그리고 언젠가 서로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교체한다.

이것이 세대 간 계약이다.

하지만 만약 젊은 세대가 진입할 자리가 부족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사회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누가 일할 것인가?"

"누가 물러날 것인가?"

"누가 기회를 가져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경제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가 된다.

50세 강제은퇴는 가능할까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노동시장이 심각한 압박을 받을 때 사회는 생각보다 과감한 선택을 해왔다.

정년제.

조기퇴직 제도.

의무교육.

사회보장제도.

주 5일 근무제.

이 모든 것은 한때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로 여겨졌다.

AI 시대에 청년고용 문제가 극단적으로 악화된다면 일부 국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계약이 등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조기퇴직 확대.

정년 단축.

청년고용 의무화.

일자리 공유제.

근무시간 단축.

같은 정책들이 논의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오늘날에는 급진적으로 들리는 아이디어가 20년 후에는 상식이 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경제보다 기대감으로 유지된다

사람들이 종종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유지된다.

만약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들의 삶이 부모 세대보다 나아질 수 없다고 믿게 된다면 사회 전체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AI가 만들어낼 가장 큰 위험은 실업률 통계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일 수 있다.

그리고 역사는 그런 순간이야말로 사회가 가장 위험해지는 시점이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AI 시대의 진짜 도전은 기술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 여전히 희망을 제공할 수 있는가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Ⅳ. AI 시대의 처방전 ― 국가와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AI 혁명이 가져올 변화의 규모가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대책도 완전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사회는 선택을 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규모의 생산성 혁명이 나타날 경우 그 혜택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가에 있다.

이 장에서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요 해법들을 살펴보고 그 한계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처방전 : 재교육

정치인들이 가장 먼저 내놓는 해법은 언제나 재교육이다.

AI가 일자리를 없애면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시키자는 논리다.

실제로 과거 산업혁명에서는 이 방법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

농부는 공장 노동자가 되었고, 공장 노동자는 기술자가 되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도 같은 방식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속도다.

과거의 변화는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러나 AI는 불과 몇 년 만에 산업 자체를 바꾸고 있다.

한 직업을 배우고 적응하는 데 10년이 걸리는데 산업은 3년마다 변한다면 재교육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모든 사람이 프로그래머가 될 수도 없고 데이터 과학자가 될 수도 없다.

재교육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처방전 : 주 32시간 근무제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핵심 논리는 단순하다.

AI가 생산성을 높인다면 더 적은 시간만 일하고도 같은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시급 30달러를 받는 노동자가 주 40시간 일한다고 가정해 보자.

주급은 1,200달러다.

그런데 근무시간만 32시간으로 줄어들고 시급이 그대로라면 주급은 960달러가 된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임금삭감이다.

따라서 주 32시간제가 의미를 가지려면 근무시간은 줄이고 임금은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될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이다.

생산성 증가가 그 부담을 상쇄할 만큼 크지 않다면 결국 채용 축소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 32시간제는 분명 매력적인 아이디어지만 생산성 혁명이 동반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다.

세 번째 처방전 : 기본소득

AI 시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다.

직업이 있든 없든.

부자든 가난하든.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급한다.

찬성론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게 될 수도 있다."

"기본소득은 인간에게 최소한의 존엄성을 보장해 줄 것이다."

매우 매력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 인구 3억 4천만 명에게 매달 2,000달러씩 지급한다고 가정해 보자.

연간 수조 달러의 재원이 필요하다.

이는 현재의 연방예산 규모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결국 기본소득의 핵심 문제는 철학이 아니라 재원이다.

누가 그 돈을 부담할 것인가.

네 번째 처방전 : AI세

최근 가장 주목받는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다.

논리는 단순하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해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면 그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AI를 도입하여 1,000명의 직원을 줄이고 연간 5억 달러를 절감했다고 가정하자.

AI세는 그 절감액의 일부를 세금으로 걷어 사회안전망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기본소득의 재원도 여기에서 마련할 수 있다.

직업훈련 비용도 지원할 수 있다.

사회보장제도 역시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세금을 지나치게 높이면 기업은 해외로 이동하려 할 것이다.

너무 낮으면 의미가 없다.

결국 AI세는 국제적 협력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다섯 번째 처방전 : 일자리 공유제

일부 학자들은 앞으로 일자리 자체를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한 사람이 40시간 일했다면 미래에는 두 사람이 각각 20시간씩 일하는 방식이다.

실업자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역시 문제가 있다.

생활비는 20시간만큼 줄어들지 않는다.

집세도 그대로다.

보험료도 그대로다.

식비도 그대로다.

결국 임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일자리 공유 역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분배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기술 자체 때문이 아니다.

AI가 만들어 낼 생산성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AI 덕분에 기업의 생산성이 10배 높아진다면 인류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풍요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다.

소수의 기업과 주주들만 혜택을 가져간다면 사회는 극단적인 양극화에 직면할 것이다.

반대로 생산성 향상의 일부가 사회 전체에 분배된다면 인간은 역사상 가장 짧은 노동시간과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동시에 누릴 수도 있다.

결국 AI 시대의 핵심은 기술혁명이 아니다.

분배혁명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AI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경제학은 정치학과 만나게 된다.

Ⅴ. 결론 ― 인간은 왜 일하는가

AI 시대에 대한 논의는 종종 일자리 숫자에서 끝난다.

몇 개의 직업이 사라질 것인가.

몇 개의 새로운 직업이 생길 것인가.

실업률은 얼마나 오를 것인가.

기본소득은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가.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왜 일하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노동을 생존의 수단으로 이해해 왔다.

먹고살기 위해 일했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일했다.

자녀를 교육시키기 위해 일했다.

그래서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곧 생존의 위협을 의미했다.

그러나 AI가 인간 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게 되는 시대가 온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생계를 위해 반드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등장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이상향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인간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은 소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은 종종 직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설명한다.

"나는 교사입니다."

"나는 기사입니다."

"나는 간호사입니다."

"나는 기술자입니다."

그 직업은 단순히 월급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을 의미한다.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를 의미한다.

노동은 인간에게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은퇴자들이 충분한 연금을 가지고도 허전함을 느낀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회 속 역할이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AI 시대가 직면하게 될 가장 어려운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에게서 노동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의미를 어떻게 다시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다.

풍요는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류는 오랫동안 생산성 향상을 꿈꾸어 왔다.

기계가 힘든 일을 대신해 주기를 바랐다.

컴퓨터가 반복작업을 대신해 주기를 바랐다.

AI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루 몇 시간만 일해도 충분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시대.

기계가 대부분의 생산을 담당하는 시대.

굶주림과 빈곤이 크게 줄어든 시대.

그러나 풍요 자체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오히려 인간은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생존의 압박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다.

AI 시대는 어쩌면 인간을 그 질문 앞에 세워놓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산업혁명은 새로운 노동법을 만들었다.

대공황은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산층 사회가 만들어졌다.

인류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며 적응해 왔다.

AI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본소득이 될 수도 있다.

AI세가 될 수도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될 수도 있다.

전혀 새로운 제도가 등장할 수도 있다.

지금은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20세기의 규칙으로 21세기 후반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AI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원자력이 전기를 만들 수도 있고 폭탄을 만들 수도 있듯이, AI 역시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을 해방시킬 수도 있다.

반대로 인간을 소외시킬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기술을 둘러싼 제도와 가치관이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한쪽 길은 생산성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사회다.

다른 한쪽 길은 기술이 만들어낸 풍요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사회다.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AI가 결정하지 않는다.

인간이 결정한다.

긴 글을 마치며

어제 그 영상을 보고 난 뒤에도 한동안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직원 열 명 남짓한 회사가 AI와 로봇을 이용해 1년에 수천 채의 집을 짓는 시대.

누군가는 그것을 진보라고 부를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혁신이라고 부를 것이다.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사실 나 역시 그 기술력 자체는 감탄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영상을 끄고 난 뒤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 집들을 짓지 않게 된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하는 의문이었다.

목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미장공은 어디로 갈 것인가.

배관공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어떤 미래를 꿈꾸게 될 것인가.

AI는 분명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 가운데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류를 육체노동과 반복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열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그 풍요는 누구의 것이 될 것인가.

그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이 글에서 AI를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증기기관을 막을 수 없었고, 전기를 막을 수 없었으며, 인터넷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AI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오히려 그 다음에 있다.

우리는 AI를 만들 준비는 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AI 시대의 사회를 맞이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우리는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생산성이 만들어 낸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기술이 아니라 분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제가 아니라 인간일지도 모른다.

어제 영상을 보며 내가 느꼈던 소름은 기술 때문이 아니었다.

그 기술이 바꾸어 놓을 세상 때문이었다.

AI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가 그 세상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이 글은 필자가 세상에 고하고 싶은 말을 끌어모아 적다보니 A4용지 20매에 달하는 길이가 됐습니다. 이 긴 글을 읽어줄 이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작정하고 쓴 글입니다. 그럼에도 이 긴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존경합니다!

댓글

  1. 장편의 신문 기고문 형식에 AI관련 현실과 미래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어 갑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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