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가 또 다시 막혔을 때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의 전쟁? 뒷짐지고 구경만 하기엔 너무 절박한 대한민국

올해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해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사살했다. 이란은 즉각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보복했다. 그 결과 세계 원유 해상 운송의 20%, LNG의 20%가 지나던 이 뱃길이 사실상 막혀버렸다. WTO 통계로 페르시아만 원유 운반선은 95%, LNG 선박은 99%가 줄었다.

지금은 잠정 휴전이다. 6월 17일 트럼프와 이란 대통령이 전쟁 종식 양해각서에 서명했고, 중재국 파키스탄은 이란이 곧 해협을 재개방하고 미국의 봉쇄도 즉각 해제될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오늘 혁명수비대는 다시 싱가포르 선박을 공격했다.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휴전은 종전이 아니다.

이 판에서 한국은 어디 서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위험한가

솔직히 말하자. 한국의 에너지 자급률은 4%에 불과하다. 석유 수입의 70%를 중동, 그것도 호르무즈를 통한 경로에 의존한다. 위기 초기 두바이유는 배럴당 157달러까지 폭등했고,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었으며 코스피는 7% 이상 급락했다. 먼 중동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유소 기름값이고 전기요금이며 장바구니 물가다.

잊지 말아야 할 것 — 원유는 '연료'이자 '수출 원자재'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논의가 놓치는 지점이 있다. 우리가 중동 원유를 사오는 이유는 발전과 난방만이 아니다. 그 원유에서 나프타를 뽑아 석유화학 제품으로 가공해 되파는, 수출 상품의 원자재 확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밝힌 수치를 보라. "우리 경제는 원유 61%, 나프타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올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나프타는 '석유화학의 쌀'이다. 플라스틱, 합성섬유, 합성고무, 자동차 부품, 전자 소재 — 현대 제조업의 출발점이 모두 여기서 나온다.

봉쇄의 충격은 곧장 공장을 멈춰 세웠다. 국내 나프타 재고가 2주 수준으로 떨어지고 NCC 가동률이 평시 80~90%에서 50~60%로 급락하자, 롯데케미칼·LG화학·여천NCC가 가동을 줄였고 일부는 고객사에 '불가항력(Force Majeure)'까지 통보했다. 서울에서는 종량제 봉투 판매량이 평년의 5배로 치솟았다. 플라스틱 대란을 예감한 자영업자들의 사재기였다. 해협 하나가 막히자 동네 분식집 봉투값까지 흔들린 것이다.

더 뼈아픈 건 이 대목이다. 한국·일본·대만이 도미노 가동 중단에 빠지는 사이, 중국만은 홀로 비껴갔다. 러시아산 원유를 헐값에 직수입하고, 자국의 풍부한 석탄에서 뽑은 '에탄'을 석유화학 원료로 쓰는 다각화 체인을 이미 완성해두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 석유화학 시장의 독점적 우위를 다지고 있다. 위기는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이고, 준비 없는 자에게는 재앙이다. 우리는 어느 쪽이었나.

홍해로 돌리면 되지 않느냐고?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첫 질문이다. 결론부터: 홍해도 이미 막혔다.

후티 반군이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맞춰 홍해 상선 공격을 재개했다. 머스크·CMA CGM·MSC·하팍로이드 — 세계 4대 컨테이너 선사가 일제히 호르무즈와 홍해를 포기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했다. 호르무즈와 홍해는 사실상 하나로 연동된 봉쇄 구조다. 이란이 한쪽을 쥐면 후티를 통해 다른 쪽도 흔든다. 세계 에너지 무역의 두 목구멍이 동시에 조여오는 것이다.

희망봉으로 돌 수는 있다. 그러나 걸프만에서 싱가포르까지 편도 14일이 더 걸린다. 왕복 항해가 35~45일에서 55~70일로 늘어, 세계 선박 가용 능력이 하루아침에 3분의 1 줄어든다. 운임이 치솟고, 원가가 오르고, 경쟁력이 깎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비축유를 전략적으로 운용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며,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 — 이건 이미 누구나 아는 당연한 처방이다. 실제로 정부는 사우디·오만·카타르·카자흐스탄에서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공급선을 확보했다.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같은 브리핑이 인정했듯 이것으로 중동 의존도가 근본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다. 소화제이지 치료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당연한 처방들 위에,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는 한 가지를 더 얹고자 한다.

피해국은 연합하여 규범을 강제할 수 있는가

생각해보라. 이란과 후티가 무력으로 뱃길을 막고 통행료를 뜯는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해협 연안국이 통항을 방해하거나, 통과 통항을 정지시키거나, 단순 통과에 요금을 부과하는 것을 금지한다. 규범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 규범을 누가, 어떻게 강제하느냐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4월 7일, 바레인이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및 요르단과 공동으로 안보리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란의 선박 공격 중단을 요구하고, 상선 호송을 포함한 방어적 공조를 각국에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부결됐다. 러시아 대표는 이 결의안을 "공격적 행동을 이어갈 백지수표"라 비난했다.

5월에는 미국과 걸프 국가들이 유엔 헌장 7장 — 군사적 강제까지 가능한 조항 — 에 근거한 더 강경한 결의안을 추진했다. 이란이 공격과 불법 통행료를 멈추지 않으면 제재를 포함한 실효적 조치를 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중이 거부권으로 버티는 한, 안보리라는 정문(正門)은 닫혀 있다.

여기서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가해국의 뒷배가 되어버린 세계에서, 안보리는 더 이상 항행의 자유를 지켜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피해국들은 손을 놓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길은 안보리 바깥에 있다.

첫째, 유엔 총회를 통한 우회로다. 1950년의 '평화를 위한 단결(Uniting for Peace)' 결의처럼, 안보리가 거부권으로 마비될 때 총회가 권고적 행동에 나선 전례가 있다. 법적 강제력은 약하지만, 압도적 다수의 정당성은 무게를 갖는다.

둘째, 유지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에 의한 호송이다. 실제로 영국은 40개국이 참여한 회의를 열어 호송 연합 구성을 모색했고, 프랑스는 항행 자유 회복을 위한 국제 임무를 준비했다. 영국은 드론·전투기·군함을 호르무즈 방어 국제 임무에 파견했고, 인도와 파키스탄도 오만만에서 유조선 호위에 나섰다. 안보리 결의 없이도, 자국 상선을 지킨다는 자위권의 명분으로 다자 호송은 가능하다.

셋째, 경제적·법적 압박의 공조다. 가해 행위로 이득을 보는 통로 — 통행료를 받아 챙기는 결제망, 그것을 우회로 활용하는 금융 채널 — 을 피해국들이 공동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 있었나. 영국이 40개국을 불러 모으고, GCC가 무력 사용까지 불사하며 항행 자유를 외칠 때 세계 5위 교역국이자 가장 직접적인 피해 당사국 중 하나인 우리의 목소리는 어디 있었는가. 청해부대를 아덴만에 파견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 상선이 지나는 뱃길이고, 우리 공장을 돌리는 원자재가 지나는 길이다. 규범을 만드는 자리에 우리가 앉아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한국도 항행의 자유를 지키는 국제 연합체의 핵심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계 5위권 교역국이면서 에너지 수입의 대부분을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 나라가 국제 해상질서의 수혜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외교와 경제력, 그리고 제한적이지만 해군력을 활용해 국제 해상안보 논의의 주도국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서울 가장 번화한 거리에 '테헤란로'를 개설했고, 테헤란 주요 거리 이름에 '서울로'를 답례한 전통적 선린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호간의 우호와 국제규범 안에서 나누는 우정이지, 우리 선박과 선원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그들과는 선린을 가릴 상황은 아닌 것이다. 

만의 하나라도 우리의 국익이 침해를 당한다면 우리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국가적 책무가 있다. 설령 그것이 결과적으로 미국을 돕는 일이 될지라도 그것이 한국 자신의 생존을 지키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이란이 호르무즈를 "우리 재산"이라 선언하는 세상이 됐다. 국제법이 무력화되고, 해협이 통행료 징수소가 되며,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그 도발의 방패가 되는 세상이다. 이것은 중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 바브엘만데브 — 세계의 모든 병목 수로가 이 선례를 지켜보고 있다. 오늘 호르무즈에서 통한 협박은, 내일 다른 해협에서 되풀이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에 취약한 나라다. 그 취약함 위에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우리에게 항행의 자유는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공장을 돌리고 밥상을 차리는 생존의 조건이다.

남의 전쟁을 남의 뉴스로 소비하고 있을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준비한 나라에게는 시장점유율을 넓히는 기회가 되고, 준비하지 못한 나라에게는 국가 경쟁력을 잃는 재앙이 된다. 이번 위기에서 중국은 기회를 얻었고, 우리는 불안을 얻었다. 다음 위기에서도 같은 결과를 반복할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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