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은 저절로 태어나지 않는다
― 배재고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
며칠 전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벌어진 배재고 학생들의 응원 논란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철없는 학생들의 장난"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 한마디로 이 사건을 덮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진공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상징은 어디선가 배우고, 누군가를 통해 익히며, 사회가 허용한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 역시 학생들만의 문제로 끝낼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돌아봐야 할 문제다.
나는 지난 5.18을 이용한 마켓팅의 일환으로 '광주민주화 운동'을 폄훼해서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스타벅스 관련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영향력 있는 기업인의 언행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 논란이 우리 사회에 충분한 성찰과 공감, 책임으로 이어졌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오히려 그 이후 일부 정치권에서는 이를 표현의 자유나 소비의 자유라는 프레임으로 적극 활용했고, 선거 과정에서도 하나의 정치적 상징처럼 소비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언행은 그 자체로 강력한 신호가 된다는 사실이다.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언행을 통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기인지를 배운다. 논란이 충분한 성찰과 책임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비슷한 표현은 점차 일상 속 농담과 놀이로 소비될 위험이 있다.
이번 배재고 학생들의 행동 역시 그런 가능성을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생들이 그 표현을 어디서 접했고 어떤 의도로 사용했는지는 확인되어야 할 문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그런 표현이 운동장에서 '장난'으로 사용될 수 있었는가.
우리는 그 질문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비극은 특정 지역만의 기억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아픔은 대한민국 전체가 함께 기억해야 할 역사다. 그 기억이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되는 순간, 상처는 피해자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로 번진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지역 갈등 역시 더욱 깊어진다는 점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역사적 상처가 반복해서 소환되고, 그 과정에서 혐오와 조롱이 아무렇지 않은 놀이처럼 소비된다면 언젠가는 사회적 신뢰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학생들의 일탈로만 보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문화를 흉내 낸다.
영향력 있는 기업인도, 정치인도, 언론도, 시민도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언행이 사회에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또한 역사적 비극과 민주주의의 희생자를 의도적으로 조롱하거나 왜곡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보다 명확한 사회적 책임과 제도적 장치를 논의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지만, 공동체가 오랜 시간 합의해 온 역사적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피해자의 존엄을 반복적으로 훼손하는 행위까지 아무런 책임 없이 방치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민주주의인지는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문제는 학생들이 아니다.
그들이 어디선가 배운 언어와 상징이다.
역사를 조롱하는 언어가 더 이상 놀이가 되지 않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소한의 문명이며, 이번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던진 가장 무거운 질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은 누구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권리만큼이나 무거운 책임도 함께 따른다. 특히 국가 의전서열 7~8위권에 속하는 정당 대표급 정치인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수많은 국민에게 하나의 사회적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스타벅스 논란이 사회적 갈등으로 번졌을 때, 일부 정치권은 이를 단순한 소비 선택이나 정치적 표현의 문제로 해석하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 판단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배재고 학생들의 응원 논란이라는 또 다른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물론 두 사건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공인의 언행이 사회 분위기와 문화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당시 논란을 정치적 상징으로 적극 활용했던 공인들 역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신들의 언행이 사회에 어떤 신호를 보냈는지 성찰할 책임이 있다.
공인의 책임은 법적 책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를 통합하고 갈등을 치유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면, 그 역시 국민 앞에서 설명하고 성찰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책임 정치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다. 매듭을 만든 사람이 매듭을 푸는 것이 순리라는 뜻이다. 만약 자신의 언행이 역사적 상처를 둘러싼 갈등을 키우는 데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 역시 공인으로서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야말로 권한이 큰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을 요구하는 민주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그래서 권고한다. 국민의 힘과 장동혁대표가 아무런 문제 의식없이 선거에 활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로 인해 배재고 문제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제 1 야당으로서 어떤 해법이 있었을 것으로 믿는다. 차제에 배재고 응원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 바란다. 한편이 되어 같이 히히덕거리든 아이들을 따끔하게 혼을 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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