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신라 - 차라리..........


■ 1:1.2, 그리고 1:2.6 — 균열의 설계도

1967년,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중앙일간지 지방 주재기자이던 매형의 서가에서 1965년판 통계연감을 뒤적인 적이 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저 숫자들과 갖가지 도표와 그래프들이 빼곡한 두꺼운 책이었을 뿐, 내 관심사는 내가 사는 고장에 자동차가 몇 대가 있고 사람은 몇 명이 사는가 등등을 찾아보는 재미에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당시 전라북도에는 버스가 25대 가량 있었다.

그런데 반백 년도 더 지난 지금, 그 시절의 숫자들을 다시 들춰보니 비로소 보이는 게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갈라지기 시작했는지, 그 설계도가 거기 이미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해방 직후 호남과 영남의 인구는 대략 510만 대 630만, 1대 1.2 수준이었다. 지금처럼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니었다. 1960년 전국 인구가 2500만을 넘어섰고, 내가 통계연감을 뒤적이던 그 무렵인 1966년, 두 번째 인구센서스가 실시됐다. 산업화의 엔진에 시동이 걸리기 직전, 대한민국의 마지막 원점 스냅샷이 그렇게 찍혔다.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국무회의에서 던진 숫자를 보라. 지금 영남 인구는 1300만, 호남은 500만. 1대 1.2였던 격차가 1대 2.6으로 벌어졌다. 이 숫자 하나가 지난 60년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압축하고 있다.

무엇이 이 격차를 만들었는가. 나는 이 질문의 답이 정책적 우연이 아니라 설계의 결과였다고 본다.

■ 거점개발이라는 이름의 선택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출범할 때, 정부의 논리는 명료했다. 한정된 자원을 아무 데나 뿌릴 수 없으니, 될 성부른 곳에 집중 투자해서 성장의 낙수효과를 기다린다는 것. 이른바 거점개발론이다. 그 거점은 경부선, 그리고 1970년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그어졌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공업단지가 그 라인을 타고 영남에 집중됐고, 호남은 쌀농사에 발이 묶인 채 경제개발의 흐름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걸 단순한 지리적 효율성의 문제로 넘길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실제 예산 집행 내역을 보면 논리를 넘어서는 차별의 흔적이 뚜렷하다. 농업용 관개시설, 즉 양수기 배정만 놓고 봐도 영남이 호남보다 여섯 배 가까이 많았다. 같은 곡창지대, 같은 농민들인데 물 대는 기계 하나 배정하는 것부터 차이가 났다는 얘기다. 거점개발은 이론이었지만, 그 이론을 현실에 옮기는 손끝에는 이미 지역이 갈려 있었다.

뒤늦게 문제를 알아챈 것은 1972년 3차 경제개발계획에 와서였다. 농촌 인구가 너무 빠르게 줄고 대도시로만 몰리는 게 성장 자체를 갉아먹는다는 걸 그제야 인식하고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말이 계획서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미 격차는 구조로 굳어진 뒤였다. 불이 다 번진 다음에 소화기를 찾은 셈이다.

■ 인구가 증언하는 60년

숫자는 정직하다. 1980년대 후반까지 수도권은 사람이 몰려드는 곳이었고, 호남·영남·충청은 모두 사람이 빠져나가는 곳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역전이 일어난다. 호남의 유출은 오히려 잦아드는데, 영남의 유출이 더 커지는 국면이 온 것이다. 1975년부터 2020년까지 45년을 놓고 보면 전남은 인구가 45퍼센트 줄었다. 전북은 27퍼센트, 경북은 21퍼센트가 줄었다. 호남의 감소폭이 훨씬 가팔랐다.

이건 그저 "지방은 다 어렵다"는 두루뭉술한 얘기가 아니다. 같은 비수도권이라도 경부축에 올라탄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사이에는 분명한 격차의 등고선이 그어져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이 지점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논쟁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 60년 만의 반전, 그리고 그 반전을 둘러싼 소란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보고회가 열렸다. 삼성전자와 SK가 밝힌 투자 규모를 합치면 4755조원. 삼성전자는 평택·용인에 2030조원을 쏟는 것과 별개로 호남권에 425조원, 충청권에 140조원, 영남권에 60조원을 배정했다. SK는 AI 데이터센터에 1000조원, 반도체 공급 확장에 1100조원을 투입하는데 그 안에 용인 600조원, 서남권(호남) 400조원, 청주 100조원이 들어 있다.

정부가 이 결정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흥미롭게도 내가 앞서 짚은 그 역사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남 인구가 1300만, 호남이 500만인데 해방 직후엔 호남이 더 많았다고. 영호남 차별이 있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그러면서 호남이 오랫동안 개발에서 소외된 덕분에 오히려 전력과 용수, 토지가 잘 보존됐고, 그게 지금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조건과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지금 이 사안만 놓고 보면 호남 투자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누적된 투자량을 비교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발언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나는 이걸 정부의 자기반성이자, 60년 전 거점개발 모델에 대한 뒤늦은 청구서 정산으로 본다. 다만 청구서를 받아 든 쪽의 반응은 엇갈린다. 국민의힘에서는 호남 특혜론, 기업 팔 비틀기라는 비판이 곧바로 터져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처럼 "영호남 모두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왜 호남만인가"라고 되묻는 목소리도 있다.

■ 나머지 3500조원, 그리고 통합이라는 변수

여기서 주목할 지점이 하나 있다. 정부의 균형발전 전략은 5극3특, 즉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5개 초광역권과 제주·강원·전북 3개 특별자치도로 국토를 재편하는 구상이다. 그리고 이 구상은 행정통합과 맞물려 돌아간다.

호남은 이미 답을 냈다. 광주와 전남은 올해 1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대통합을 선언한 지 두 달 만에 통합특별시 설치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정부는 4년간 20조원 이상의 재정 지원과 서울특별시급 위상 강화를 약속했다. 통합이 먼저였고, 투자와 인센티브가 뒤따랐다.

충청과 강원은 올 초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소속 대전시장과 충남지사가 통합 논의에 강하게 반발하며 좌초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데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16개 광역단체장 중 더불어민주당이 13곳에서 승리했고, 국민의힘은 대구·경북·경남 세 곳만 지켜냈다. 충남지사와 강원지사 자리도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통합에 반대하던 지방권력이 교체되면서, 막혀 있던 물꼬가 다시 트일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영남은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다. 대구·경북과 경남은 이번에도 국민의힘이 지켜냈다. 그렇다고 이 지역이 통합 자체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힘은 부산·경남 통합특별시, 대구·경북특별시라는 자체 통합 모델을 이미 발의해 놓은 상태다. 국세·지방세 비율 조정, 자주재원 확대 같은 요구를 담아서다. 문제는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5극3특 모델과 야당이 주도하는 영남 자체 통합 모델이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다른 길을 가려 한다는 데 있다. 이 정치적 줄다리기가 풀리지 않는 한, 아직 지역이 정해지지 않은 나머지 투자분은 영남에서 발이 묶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 갈등이 아니라 청구서로 읽어야 한다

나는 이 글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 않다. 호남이 받는 투자를 특혜라고 부르는 것도, 영남의 저항을 기득권 지키기라고 단정하는 것도 이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은 이거다. 60년대 중반, 우리는 거의 대등했던 두 지역 중 한쪽에만 판돈을 걸었다. 그 선택은 세계가 놀란 산업화를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반백 년에 걸쳐 조용히 곪아온 격차와 원한도 함께 만들어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 청구서가 60년 만에 날아온 것에 가깝다. 청구서를 받은 쪽이 억울해하는 것도, 그동안 못 받은 쪽이 서둘러 챙기려는 것도 다 이해할 만한 인간의 마음이다.

다만 나는 바란다. 이 청구서 정산이 또 다른 원한의 씨앗을 심는 방식으로 끝나지 않기를. 호남이 받은 몫이 영남에게는 박탈감으로, 영남이 요구하는 몫이 호남에게는 불안으로 남는다면, 우리는 60년 전과 똑같은 실수를 이름만 바꿔 반복하는 셈이다. 균형이라는 말의 무게는 어느 한쪽을 다 채워주는 데 있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는 적어도 1대 1.2였던 그 원점을 물려주는 데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예순 몇 해 전, 낡은 통계연감을 무심히 넘기던 한 소년이 지금에서야 깨닫는 이 나라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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