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한 세계 3강을 위한 제언


 

​[따따부따] 엠피맨의 눈물과 카카오의 광고창

우리는 또다시 우물 안 호랑이에 만족하려는가

- 1972년 가을, 풋내기 청년 시절 첫사랑과 단풍으로 물든 호젓한 남산길을 걷다가 어린이회관 건널목에서 장발을 단속하던 순경아저씨한테 붙들려 이발기계로 머리 한 가운데 고속도로가 난 사건(?)을 당한 뒤부터 민주화 투쟁하던 대학생 형들의 뒷줄에 끼어 돌맹이를 줏어 나르는, 어설픈 시절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우국충정이 솟구쳤었다고 말하면 그건 분명 거짓말입니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는 그 날 첫사랑 면전에서 고속도로가 난 내 장발단속 사건에 대한 반항의식(?)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면 난 전혀 의식화가 된 적이 없는 애송이였을 뿐이지요.

난 그래서 박정희가 미웠을 뿐, 매판이니 파쇼니 따위는 그게 뭔지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세계사에 또렷이 각인된 세계 최빈국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것'이 무언지 절감하며 살아넘긴 시절이었기에 그가 있어 우리나라의 산업기반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내가 어느 쪽 스탠스를 잡고 서있는지와 상관없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수긍합니다. 분명 우린 그렇게 세계 정상 부근에 우뚝 서있고 난 그것이 국뽕 넘치게 자랑스럽습니다.

지금 내 안에 차오른 국뽕은 비단 호사가적 장삼이사의 개인적 감상만은 아니지 않나요? 모든 지표들이 적확하게 우리나라의 위치를 세계사 위에 자리매김한 것이 아닙니까?

그 감격이 스러질까 봐, 어련히들 잘 해낼까마는, 지난 시기 우리 국뽕을 넘치게 했던 혁혁한 찰나를 돌이켜 보면서 노파심(老婆心) 몇 자를 적어 올리겠습니다 -


​아이팟(iPod)이 세상에 나와 전 세계 음악 시장을 집어삼키기 3년 전, 주머니 속에 수십 곡의 디지털 음악을 담아 듣는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 '엠피맨'을 만든 것은 바로 대한민국이었습니다. 

미국의 냅스터(Napster)와 어깨를 견주며 P2P 파일 공유의 거대한 시대를 열었던 '소리바다' 역시 이 땅의 젊은 피들이 쏘아 올린 미증유의 혁신이었습니다. 

그밖에도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처럼 시대의 흐름을 수년씩 앞서가며 전 국민을 디지털 광장으로 모아들였던 획기적인 스타트업들 역시 모두 우리 손으로 일궈낸 창의의 결정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목록에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결코 작지 않은 이름 하나가 더 있습니다. 

국내 우주기업 씨앤스페이스(CN Space)는 1996년부터 10년간 묵묵히 액체메탄 로켓엔진을 연구해, 2006년 연소기와 터보펌프, 가스발생기를 하나로 묶은 비행용 엔진을 완성하고 국내 특허까지 출원했습니다. 

훗날 스페이스X의 '랩터'와 블루오리진의 'BE-4'가 우주산업의 표준으로 만든 바로 그 액체메탄 재사용 엔진입니다. 심지어 미국 항공우주국(NASA)조차 이와 유사한 메탄엔진 연구에 뒤늦게 착수한 것이 2006년 이후였다고 하니, 우리가 세계보다 먼저 그 문을 열었던 셈입니다. 

이 회사의 기술을 눈여겨본 미 국방성이 접촉해왔고 일본 쪽에서도 기술협력을 타진해왔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만, 그조차 우리 스스로는 별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낸 듯합니다. 

다만 이 회사가 그동안 기술 보안을 이유로 언론 노출을 극도로 자제해온 탓에, 이 눈부신 '세계 최초'는 정작 우리 국민 대다수의 기억 속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위대한 ‘최초’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우리는 세계를 지배할 혁신의 씨앗을 손에 쥐고서도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보지 못했습니다. 냅스터가 안팎의 소송으로 흔들릴 때, 스티브 잡스라는 프런티어가 나타나 '아이튠즈'라는 합법적 생태계를 구축하고 세계를 제패하는 모습을 우리는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왜 스티브 잡스 같은 거대한 프런티어가 나오지 못했을까요? 소리바다라는 웅대한 플랫폼적 판을 깔아놓고도, 기득권의 포화 사격과 법적 규제에 묶여 추진력을 상실하고 사장되어 버린 현실에 목이 메어옵니다. 

씨앤스페이스의 메탄엔진 역시 특허 서랍 속에 얌전히 잠들어 있는 사이, 대양 건너에서는 그 원리를 이어받은 거대 자본과 국가적 지원이 만나 우주산업의 판도를 통째로 바꿔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없었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세계 표준으로 밀어붙일 담대함과 뒷받침하는 자본이었습니다.

세계를 바꿀 혁신의 동력을 쥐고도 기기 몇 대 더 팔아 치우는 제조업적 계산기에 갇혀 있었고, 웅대한 비전으로 전 세계 유저를 묶어세운 애플과 페이스북, 구글이 세계 영토를 짓밟고 들어올 때 우리는 안방의 울타리 안에서 깃발을 꺾어야 했습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턱 막히고 땅을 치게 만드는 痛憤(통분)입니다. '세계 최초'라는 눈부신 왕관을 쓰고도, 우물 안 개구리에 만족하며 종이 호랑이의 포효에 자족했던 그 거만한 무지와 좁은 안목을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결코 우리 민족의 머리와 손끝이 남보다 못해서가 아닙니다. 엠피맨을, 소리바다를, 그리고 세상이 알지도 못하는 씨앤스페이스의 메탄엔진을 만들어낸 그 창의력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문제는 단 한 번도 우리 스스로 그 가치를 온전히 믿고 세계를 향해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그 비극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형태만 바꾼 채 변질되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켜게 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볼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분통을 금할 길 없습니다. 세상이 손바닥 안에 들어온 시대에 살면서 하루 종일 뒤져봐도 카톡 같은 감성을 가진 메신저 서비스가 없던데, 수천만 국민의 일상을 인질로 잡은 채 세계로 나아갈 밑천을 확보했으면서도, 그들이 선택한 것은 글로벌 영토 확장이 아니었습니다. 

메신저 창 구석구석에 찌라시성 광고를 밀어 넣고, 골목상권의 푼돈을 우려먹으며, 계열사를 쪼개 상장 차익을 노리는 '부동산 지주회사'식 영업이 그들의 야망의 전부였습니다. 세계를 품에 안겠다던 스타트업의 야성은 사라지고, 좁은 내수 시장에서 통행세를 뜯어내는 골목대장의 탐욕만 남은 것입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한글이라는 거친 언어적 장벽의 덕을 보며 안방 특수에 안주하는 동안, 세계 시장의 주도권은 온전히 건너편의 거대 빅테크들에게 넘어갔습니다. 하다못해 그 막대한 자본과 인프라로 트위터 하나, 구글 하나쯤은 맞서 싸워 지켜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인터넷의 도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AI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대전환기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이 땅의 기업가들과 위정자들에게 간곡히, 그리고 매섭게 물어봅니다.

우리는 또다시 챗GPT의 API나 적당히 가져와 예쁜 껍데기를 씌우고, "한국어에 특화된 AI"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어 국내 유저들의 호주머니나 털어내는 '카카오톡식 비즈니스'를 되풀이할 셈입니까?

AI 시대의 승패는 누가 먼저 기술을 흉내 냈는가가 아니라, 누가 독점적 데이터와 사용자의 삶을 잇는 대체 불가능한 '생태계'를 지배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소리바다의 비극처럼, 혹은 씨앤스페이스의 메탄엔진처럼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놓고도 추진력을 잃어버리거나, 단순한 응용 프로그램 몇 개로 내수 시장에서 소소한 구독료나 챙기려는 미시적 욕망에 안주한다면, 대한민국 IT의 미래는 거대 AI 공룡들의 영토 아래 영원히 고립된 외딴섬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겐 재능이 없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25년 전 엠피맨과 소리바다가 흘렸던 비운의 눈물을, 그리고 세상이 알아주기도 전에 서랍 속에서 잠들어버린 메탄엔진의 꿈을 잊지 마십시오. 판을 깔아주기는커녕 규제로 싹을 자르는 정치권과, 안방의 독점 지위에 안주해 푼돈에 눈이 먼 경영자들은 깨어나야 합니다.

​첫날부터 세계를 품겠다는 '태생적 글로벌 비전'과 시대를 돌파하는 담대한 스티브 잡스식 프런티어 정신이 없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AI 시대에서도 또 한 번 '기술 제공자'이자 '소비자'라는 이등 시민의 자리로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통찰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징벌로 찾아오는 법입니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세계 최초를 빼앗긴 비운의 역사'를 유산으로 물려주지는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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