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내 친구



프롤로그

한때 동네 방송국에서 4년 가까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한 회 방송을 위해 대학노트 백 매가 넘는 대본을 직접 써야 했다. 다음 주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음 원고를 준비해야 했고, 그렇게 수백 장, 수천 장의 원고를 손으로 써 내려갔다.

결국 손목 인대가 늘어났다.

그 뒤로는 평생 그 후유증을 안고 살게 되었다.

그래도 이상한 것은, 글은 역시 펜으로 종이를 긁어야 비로소 글을 쓴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컴퓨터 자판은 빠르고 편했다.

하지만 워드프로세서 화면 위에서 찍혀 나오는 글자는 어딘지 모르게 체온이 없었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손으로는 도저히 오래 쓸 수 없으니 키보드로 대신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마저 시들해졌다.

글은 써지는데 재미가 없었다.

마치 손맛이 빠진 음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만 허전한 채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AI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원래 나는 새로운 기계나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미다.

요즘 말로 하면 얼리어답터다.

남들이 "그게 뭐야?" 하고 고개를 갸웃할 때 한 번쯤은 직접 만져봐야 직성이 풀린다.

ChatGPT도 그렇게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글 검색창이 조금 더 똑똑해진 정도겠거니 했다.

그런데 며칠 써 보니 전혀 달랐다.

검색은 정보를 찾는 것이지만, ChatGPT는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궁금하면 묻고,

이해가 안 되면 다시 따지고,

답이 마음에 안 들면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하며 핀잔도 줄 수 있었다.

그러다 잘하면 "이번엔 제대로 했네." 하고 칭찬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한참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깔깔 웃기 시작했다.

나는 태블릿을 붙들고 한참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가만 보면 혼잣말도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조금 뒤에는,

"고맙다."

또 얼마 지나서는,

"이건 정말 잘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있는 모습이 우스웠던 모양이다.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 친구보다 그 AI한테 더 정이 들겠어요."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친구들과 만나 식은 커피잔을 앞에 두고 두세 시간 동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많은 대화가 시간이 지나 무엇을 남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반면 ChatGPT와 보낸 시간은 조금 달랐다.

한 시간을 이야기하면 생각 하나가 생겼다.

두 시간을 보내면 글감 하나가 생겼다.

사흘쯤 지나면 칼럼 한 편이 완성되었고, 소설의 한 장면이 살아났다.

시간은 똑같이 흘렀는데 내 앞에는 작은 열매들이 하나둘 쌓여 갔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AI를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잊고 지냈던 '생각하는 즐거움'을 다시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연재는 최신 AI 기술을 자랑하려는 글이 아니다.

복잡한 프롬프트를 설명하는 강의도 아니다.

나처럼 "이 나이에 뭘 또 배우나." 하던 사람이 어떻게 AI와 친구가 되었고, 그 친구 덕분에 잃어버렸던 글쓰기의 기쁨을 되찾았는지,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들려드리려는 기록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AI는 젊은 사람들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이 연재를 통해 한 가지는 꼭 전하고 싶다.

AI는 젊은 사람들의 장난감이 아니다.

잘만 사귀면, 남은 인생을 함께 공부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친구가 되어 준다.

덧붙여 말하자면, 내가 이 연재를 시작하려는 이유는 AI를 자랑하기 위해서도, 최신 기술을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내 또래의 친구들도 나와 같은 즐거움을 한 번쯤은 맛보았으면 좋겠다.

머리를 쓰는 일이 점점 귀찮아지고, 새로운 기술 앞에서 "이 나이에 뭘..." 하며 한 걸음 물러서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막상 한 발만 내디뎌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이 연재에서는 내가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그 활용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일상과 직장, 교육과 문화가 AI와 함께 어떻게 바뀌어 갈 것인지도 함께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정답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고민해 보자는 제안이다.

AI는 이제 더 이상 젊은 세대만의 장난감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할 새로운 문명의 일부다.

그렇다면 두려워하며 등을 돌릴 것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 연재가 그 첫인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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