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다시 러스트벨트의 녹을 제거할 수 있을까?

 


베들레헴 스틸(Bethlehem Steel) 옛 제철소. 한때 미국 산업화를 상징했던 용광로는 지금 카지노 리조트 옆에서 산업유산으로 남아 있다. 녹슨 철골은 제조업의 영광과 러스트벨트의 쇠퇴를 동시에 증언하고 있다.

러스트벨트의 무덤들

지지난주, 펜실베이니아 베들레헴의 윈드크릭이라는 곳엘 다녀왔다. 

그 실체는 한때 미국 2위 철강회사였던 베들레헴 스틸의 무덤이다. 

그 무덤같은 살풍경 가운데 어울리지 않는 새 건물이 하나 자리를 잡았다. 

카지노 리조트. 

반짝이는 슬롯머신 홀 하나를 빼면 사방은 녹슬 대로 슨 용광로와 폐공장뿐이었다. 

정선 카지노 옆 폐광촌을 연상시키는 그 풍경 앞에서, 나는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1991년,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빼닮은 터미널 타워를 구경하겠다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몇 블록 옆 건물들이 온통 합판으로 못질돼 있는 걸 보고 걸음을 멈췄던 기억이다. 

상인들에게 물으니 답은 간단했다. 

홈리스들이 들어가 불을 지르는 걸 막으려는 것이라 했다. 

딘킨스 시장 취임 전의 할렘 거리가 그 자리에 겹쳐 보였다.

처음 미국 땅을 차로 밟았을 때, 

워싱턴DC에서 시카고, 인디애나폴리스, 애틀랜타, 댈러스, 엘에이까지 이어지던 그 광활한 풍경 앞에서 나는 분명 감탄했었다. 

"이 땅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땅이구나." 

그러나 이따금 본의 아니게 스쳐 지나가던 허름한 동네들이, 그 감탄 밑에 조용히 균열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윈드크릭을 다녀온 지금, 그 균열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미국은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재건의 산수가 안 맞는다

트럼프 행정부를 위시한 리쇼어링론자들은 우방국의 손목을 비틀어서라도 제조업을 미국 땅에 되돌려 놓겠다고 한다. 

그럴듯하다. 그런데 그다음이 없다. 

되돌아온 공장의 노동자에게 얼마를 줄 것인가. 

결국 현행 미국 근로자 연봉 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게 만든 물건을 대체 누구에게 팔 것인가. 

시간당 4~5달러짜리 공임으로 찍어내는 나라들이 지구촌에 널려 있는 마당에, 무슨 수로 가격 경쟁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수출은 포기하고 자급자족만 하겠다는 것인가. 국내 수요라는 것도 결국 유한하다. 

무한정 사줄 리 없는 내수시장 하나 믿고 산업 재건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폐다.

결국 리쇼어링파가 실제로 파는 해법은 "미국인에게 저임금을 주자"가 아니라 

"로봇과 AI로 노동 비중 자체를 줄이자"는 쪽이다. 

애리조나의 반도체 공장, 텍사스의 기가팩토리가 그 실물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애초의 질문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그 최첨단 공장이 러스트벨트 실업자를 대체 몇 명이나 고용할 수 있는가. 

답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무역수지엔 도움이 될지언정, 클리블랜드와 베들레헴의 텅 빈 일자리를 채워주진 못한다.

부의 쏠림, 그리고 굶는 애국심

미국 GDP의 상당 부분은 이제 극소수가 창출한다. 

빅테크, 금융, 바이오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 그 주역이다. 

그런데 이 산업들은 애초에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비스업 고용 통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 다수는 사실 요양보호·배달·소매 같은 저임금 노동이지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아니다. 

진짜 고소득 일자리는 전체 고용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줄 것인가. 

빅테크 몇 개 회사의 이익을 걷어 전 국민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발상도 있었다. 

그러나 산수를 해보면 답이 나온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의 순이익을 다 합쳐도 미국 성인 1인당 월 몇백 달러 수준이 한계다. 

그마저 그 기업들의 주가가 지금 속도로 영원히 커준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하는 계산이다. 

그러니 실리콘밸리의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조차 재원을 "빅테크 이익"이 아니라 "부가가치세"에서 찾자고 했던 것 아닌가. 

빅테크가 국민을 영구히 먹여살린다는 그림 자체가, 이미 설계 단계에서부터 흔들리는 전제였던 셈이다.

그러니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일자리도 없고, 기본소득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굶주린 배를 안고 언제까지 갓블레스아메리카를 외칠 것인가.

두 가지 답, 그리고 미국이 고르지 못한 답

이 딜레마 앞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선택지는 두 갈래뿐이다. 

하나는 관세와 리쇼어링으로 일자리를 억지로 되돌리는 길, 트럼프식 답이다. 

고통스럽고 비효율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팔린다. 

다른 하나는 세금과 복지로 부를 재분배하는 길, 이른바 북유럽식 답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같은 자유무역 질서 속에 있으면서도 훨씬 강한 재분배로 부의 쏠림을 완충해왔다.

미국은 이 두 번째 길을 정치적으로 극도로 꺼려왔다. 

복지는 곧 사회주의라는 낙인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요즘은 한국이 더 심하다. 걸핏하면 빨갱이 타령이다.)

그러니 관세와 협박이 "유일하게 정치적으로 가능한" 해법처럼 보이는 것이다. 

트럼프라는 인물이 안하무인격으로 세계를 상대로 협박을 일삼는 것도, 

어쩌면 그 방법 말고는 다른 정치적 선택지 자체를 미국 스스로 봉쇄해온 결과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진짜 질문은 "미국이 재건할 능력이 있는가"가 아니다. 

"미국이 재분배를 선택할 정치적 의지가 있는가"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궤적을 보면, 미국은 그 선택 앞에서 계속 눈을 감아왔다.

녹은 닦아낼 수 있어도, 되돌릴 수는 없다

베들레헴의 옛 용광로는 지금도 카지노 옆에 산업유산처럼 서 있다. 

녹슨 철골 그대로, 철거하지 않고 보존해놓은 것이다. 

아마 그것이 가장 정직한 답일지 모른다. 

러스트벨트의 녹은 닦아낼 수는 있어도, 그 이전의 번영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 

미국이 다시 그 자리에 무언가를 세운다면, 그것은 옛 공장의 부활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무엇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이 다수의 삶을 먹여살릴 수 있는가는, 여전히 답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과연 미국은 그 녹을 다시 닦을 수가 있을까? 이 무한경쟁 시장경제의 질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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