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1996년, 맨해튼 빌리지의 한 모자 가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흑인 손님 하나가 모자를 들고 왔다. 우리 집에서 산 물건이 아니었다. 바꿔 달라고 했다. 주인은 거절했다. 그것이 전부다. 세상 어느 가게에서나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일이고, 십 분이면 끝날 실랑이였다.
그런데 그 십 분이 한 사람의 생계를 삼켰다.
며칠 뒤 가게 앞에 피켓이 섰다. 동네 사람들이 아니었다. 빌리지는 흑인 거주 지역이 아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사람들이 줄을 서서 구호를 외쳤고, 그 줄은 날이 갈수록 길어졌다. 그리고 알 샤프턴 목사가 나타났다. 그가 나타났다는 것은, 이 일이 더 이상 모자가게 한 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때 나는 소기업서비스센터에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통역을 붙이고, 변호사를 알아보고, 경찰과 시청 문을 두드리고, 중재를 시도했다. 그러나 우리는 자원봉사자 몇 사람이 꾸려가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법을 아는 조직, 시청과 언론과 정치인을 동시에 움직일 줄 아는 조직을 상대로, 우리가 가진 것은 선의와 발품뿐이었다.
가게 주인은 영어가 서툴렀다. 그는 자기가 왜 인종차별주의자로 불리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교민사회가 술렁였다. 한인회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당연한 요구였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았기 때문이다. 이건 한 상인의 불운이 아니라 한인 전체를 향한 신호였고, 신호에 응답하는 것이 대표 단체의 일이었다.
그 무렵 한 라디오 방송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인회 임원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들었다.
"한인회가 그런 구멍가게 일까지 나서야 됩니까?"
삼십 년이 지났다. 그 말은 아직도 내 귀청을 울린다.
구멍가게.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이 도시에 온 사람들은 거의 다 구멍가게에서 시작했다. 청과상, 세탁소, 델리, 네일숍, 모자 가게. 새벽 네 시에 청과시장에 나가 상자를 나르고, 밤 열한 시에 셔터를 내렸다. 그 구멍가게들이 자식을 대학에 보냈고, 교회를 세웠고, 한인회에 회비를 냈고, 회장 선거에 표를 던졌다.
한인회는 바로 그 구멍가게들 위에 세워진 조직이었다. 그런데 그 조직의 임원이, 구멍가게 일에는 나설 수 없다고 공개된 방송에서 말했다.
그 말은 실언이 아니었다. 실언은 본심이 새어 나온 것이지만, 저 발언은 본심 그 자체였다. 한인회는 그 시점에 이미 상인의 조직이 아니라 유지(有志)의 조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감사패를 주고받고, 퍼레이드를 열고, 본국에서 오는 인사를 영접하는 일. 그런 일에는 회관이 필요하고 직함이 필요하지만, 빌리지의 피켓라인 앞에 서는 데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저 사람이 우리 사람이라는 감각뿐이다.
그 감각이 없었다.
결국 가게는 문을 닫았다. 아무도 그 주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폐업이 남긴 것이 하나 있다. 맨해튼의 상인들이 스스로 모여 상인번영회를 만들었다.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사람들이, 지켜줄 조직을 직접 만든 것이다. 타 인종 단체와 어떻게 말을 트는지, 정치인을 어떻게 만나는지, 언론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그때부터 하나씩 익혔다.
나는 이것을 한인 사회의 자랑이라고만은 부르지 못하겠다. 이것은 실패의 기록이기도 하다. 대표 단체가 비운 자리를 당사자들이 스스로 메워야 했다는 뜻이고, 그 대가로 한 사람이 가게를 잃었다는 뜻이니까.
한인회가 유명무실하다는 말을 요즘 자주 듣는다. 회장 선거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는 말도 듣는다. 나는 그 원인이 회칙이나 선거제도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원인은 훨씬 단순하다. **한인회가 교민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삼기를 그만둔 그 순간부터, 교민도 한인회를 자기 조직으로 여기기를 그만둔 것이다.** 대표성은 정관에서 나오지 않는다. 누구의 편에 섰는가에서 나온다.
지금 뉴욕한인회 앞에는 회관 재개발이라는 현안이 놓여 있다. 1983년에 백만 달러가 채 안 되는 돈으로 산 여섯 층짜리 건물이 이제 육천만 달러를 호가한다고 한다. 한국의 대형 증권사가 개발을 제안했고, 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나는 이 조용함이 무관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삼십 년에 걸쳐 학습된 거리감이다. 저 건물이 우리 것이라는 감각이 없는데, 저 건물을 어떻게 하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회관은 이미 오래전에 동포의 것이 아니라 회관 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재개발이 부동산 사업이 아니라 시험이라고 본다.
개발이익이 생긴다면 그것은 누구의 몫인가. 1983년에 없는 살림에 백 불, 이백 불을 내놓은 사람들, 2016년에 회관이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을 때 다시 주머니를 턴 사람들의 몫이다. 그 돈이 다시 회관을 고치는 데만 쓰인다면 이 순환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기금이 되어야 한다. 이민 초기의 소기업서비스센터가 하던 일, 지금 시대의 구멍가게들이 겪는 일에 쓰이는 돈이 되어야 한다.
현행 회칙상 재개발과 매각, 장기임대의 최종 승인권은 역대회장단에게 있다.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과 정당하다는 말은 다르다. 99년 장기리스를 몰래 추진했던 전임 회장을 우리는 기억한다. 견제 장치가 만들어진 것은 다행이지만, 견제 장치가 소수의 폐쇄회로로 굳어지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같은 문제다.
요구는 세 가지면 족하다. 실사 결과와 개발 조건을 전면 공개할 것. 개발이익의 용처를 사업 착수 전에 못 박을 것. 결정 과정에 상인 단체와 직능 단체를 참여시킬 것.
삼십 년 전 그 방송에서, 나는 반문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다.
한인회가 구멍가게 일에 나서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일에 나서려고 있는 조직입니까.
그 질문을 지금 다시 한다. 여섯 층짜리 낡은 건물의 창문이 인도로 떨어지는 동안, 그 건물의 가격이 육천만 달러가 되는 동안, 한인회는 무슨 일에 나서고 있었는가.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