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장수 가위 소리에 묻어 있는 가난한 나라의 기억
얼마 전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방문 하나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장난감이 가득했다.
자동차며 로봇이며 인형이며 이름도 모를 장난감들이 상자마다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손주들이 놀러 올 때마다 하나둘 사준 것들이란다.
“이걸 다 가지고 노냐?”
친구가 웃었다.
“뭘. 며칠 가지고 놀면 싫증 내. 그래도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아예 방 하나를 애들 물건 창고로 만들었어.”
허어.
방 하나를 창고로 만들어야 할 만큼 장난감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나는 한동안 그 방을 둘러보다가 엉뚱하게도 아주 오래전 소리 하나를 떠올렸다.
철컥, 철컥철컥.
엿장수 가위 소리였다.
“아, 엿들 사시오!”
'동네방네 여인네들, 방구석에 앉아 한숨만 쉬지 말고
떨어진 삼베 고갱이, 구멍 난 양은냄비 들고 나오소.
시어머니 극성통에 담뱃대 꼭지 부러진 것,
영감 할멈 싸움 끝에 놋숟가락 목 부러진 것,
애지중지 쓰다가 밑구멍 빠진 가마솥도 다 좋소.
아, 엿들 사시오!'
내가 어렸던 1960년대 초, 엿장수 아저씨가 동네에 나타나면 굳이 소리를 지를 필요도 없었다.
철컥! 철컥철컥!
그 요란한 가위 소리만 들리면 아이들이 쏜살같이 골목으로 뛰어나왔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주머니에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엿을 포기할 우리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온 동네가 보물찾기 장소가 되었다.
남의 집 울타리 밑을 두리번거렸다. 길바닥도 샅샅이 훑었다.
녹슨 못 한 개.
찌그러진 철사 한 토막.
어디서 떨어져 나왔는지 모를 쇳조각.
심지어 깨진 유리조각까지 주웠다.
요즘 아이에게 그런 것을 주우라고 하면 큰일 날 소리겠지만 그때 우리 눈에는 그게 쓰레기가 아니었다.
돈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엿이었다.
한 줌 모아 엿장수 아저씨에게 가져가면 그는 손으로 무게를 가늠해보고 가락엿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뚝!
손가락 한 마디만큼 떼어주었다.
운수가 좋은 날에는 한 뼘 가까이 얻는 횡재를 하기도 했다.
그날은 세상을 다 얻은 날이었다.
입안에 들러붙는 엿을 아껴 먹느라 혀끝으로 굴리고 또 굴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희한한 세상이었다.
깨진 유리조각까지 돈이 되던 세상.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가난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라 전체가 가난했다.
1960년대 초 대한민국에는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대규모 일관제철소도 아직 없었다. 포항제철이 세워지고 쇳물을 본격적으로 쏟아내기 훨씬 전이었다.
그러니 고철은 쓰레기가 아니라 귀중한 산업 원료였다.
못 하나, 철사 한 토막, 깨진 냄비 하나가 엿장수 손에 들어가고, 그것이 다시 고물상으로 넘어가고, 그렇게 모인 폐품이 어딘가에서 다시 원료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재활용을 한다.
그러나 그때는 달랐다.
환경을 생각해서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버릴 물건조차 없어서 재활용했다.
그 시절에는 쓰레기도 귀했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는 엿장수의 커다란 가위 말고 또 하나의 가위가 있다.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가 방에 앉아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고 계셨다.
그러더니 가위를 들었다.
나는 무얼 하시나 하고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겉머리를 들어 올리더니 속에 있는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았다.
싹둑.
잘라낸 검은 머리카락을 흰 백지에 곱게 내려 놓으셨다.
또 한 움큼을 잡았다.
싹둑.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기가 괴로웠다.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잘려나갈 때마다 내 가슴 한쪽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렸다.
“엄니, 왜 머리를 잘라?”
어머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씀하셨다.
머리카락을 사러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여자들의 머리카락도 돈이 되었다.
잘라낸 머리카락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았다. 제법 한 줌이 되면 그것을 사러 다니는 사람이 돈을 주고 가져갔다.
그리고 나는 똑똑히 보았다.
어머니가 그 돈을 어디에 쓰셨는지를.
내 월사금을 내셨다.
때로는 내 체육복을 마련하는 데 보태셨다.
우리 집에는 논도 없고 밭도 없었다.
남의 땅을 부쳐 먹는 소작농 살림에서 현금을 만들 방법은 거의 없었다.
쌀이 있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조차 우리 것이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은 몇 안 되는 현금 수입원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나는 그때 경제개발이 무엇인지 몰랐다.
수출이라는 말도 몰랐다.
달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만 어머니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것이 싫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머리카락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초기 수출상품 가운데 하나가 가발이었다.
전국의 도시와 시골을 돌며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사들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렇게 모인 머리카락은 가발공장으로 흘러갔다.
수많은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손을 거쳐 씻기고, 고르고, 다듬어지고, 한 올 한 올 심어진 머리카락은 가발이 되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1964년 무렵 시작된 한국의 가발 수출은 불과 몇 년 만에 급성장해 1970년에는 수출액이 9천만 달러를 넘어섰고, 한국 전체 수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대표 상품이 되었다. 그 해 한국의 수출 총액은 8억 3500만 달러였다.
훗날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이라고 불렀다.
정부의 기록에는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이라고 적혔다.
그리고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이 가난을 딛고 산업화를 시작한 시기라고 쓰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초기 수출산업은 그런 거창한 모습이 아니다.
방바닥에 떨어지던 어머니의 검은 머리카락이다.
싹둑.
또 싹둑.
그것이 내 월사금이 되었고 교복이 되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가발이 되어 태평양을 건넜다.
어머니는 대한민국의 수출산업을 위해 머리를 자른 것이 아니었다.
자식 학교 보내려고 잘랐다.
그런 어머니들이 전국에 얼마나 많았을까.
그들이 잘라낸 머리카락 한 줌 한 줌이 모여 가발이 되었고, 그 가발이 달러가 되어 돌아와 대한민국 산업화의 밑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위대한 사람들의 결단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어느 시골 아낙네가 자식 월사금을 마련하려고 잘라낸 머리카락 한 줌으로도 역사는 만들어진다.
친구 집 장난감 방에 서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즘 아이들은 장난감 하나를 사주면 며칠을 못 간다고 한다.
싫증이 나면 구석에 던져놓고 또 다른 것을 찾는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했다.
우리도 방 하나 가득 장난감이 있었다면 며칠 만에 싫증을 냈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자라던 세상에는 싫증 낼 물건 자체가 없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땅바닥을 살폈다.
혹시 못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을까.
쇳조각 하나 없을까.
깨진 유리조각이라도 없을까.
그것을 주우면 주먹에 꼭 쥐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철컥, 철컥철컥!
소리가 들리면 냅다 뛰었다.
가락엿 손가락 한 마디를 얻으려고.
나는 지금도 어쩌다 뉴욕의 한국식품점에 들르면 나도 모르게 과자 진열대를 두리번거린다.
혹시 엿이 있나 하고.
마누라는 타박한다.
“질 좋은 과자가 이렇게 많은데 촌스럽게 무슨 엿을 찾아요?”
게다가 당뇨까지 있는 사람이 말이다.
흐흐흐.
그 말이 맞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찾는 것은 엿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엿장수 가위 소리가 들리면 맨발로 골목을 뛰어나가던 아이.
못 하나를 발견하고 횡재라도 한 것처럼 주먹에 꼭 쥐던 아이.
그리고 방문 안에서는 아들 월사금을 마련하려고 자신의 속머리를 들어 올려 가위질하던 어머니.
철컥철컥.
엿장수의 가위가 울리고,
싹둑싹둑.
어머니의 가위가 울리던 세상.
그 두 가위 사이에 내가 살아온 70여 년의 세월이 놓여 있다.
한때는 깨진 유리조각 하나도 버리지 못했던 나라가 이제는 멀쩡한 장난감을 보관하기 위해 방 하나가 필요한 나라가 되었다.
참 많이도 변했다.
참 잘살게도 되었다.
그래서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가끔은 그 풍요 앞에서 오래된 가위 소리가 들린다.
철컥, 철컥철컥.
그러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라떼는 말야…… 그 시절에는 쓰레기도 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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