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고구마와 푸른 콩 꼬투리
며칠 전, 한인마트에서 햇고구마를 보았다.
'햇고구마.'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반가웠다. 고구마야 사시사철 흔하게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햇고구마라는 말에는 이상하게 마음을 잡아끄는 데가 있었다.
몇 개를 사 들고 와 쪘다.
김이 오르고 고구마가 익어갈 무렵, 어디선가 낯익은 냄새가 났다.
향긋했다.
가을 고구마의 달고 구수한 냄새와는 달랐다. 풋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고, 달콤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싱그러웠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이 냄새였다.
국민학교 2학기가 시작될 무렵이면 맡을 수 있었던 냄새.
그리고 그 냄새 속에 어머니가 계셨다.
그 시절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는 변변한 군것질거리가 없었다.
과자 봉지를 뜯어 먹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고, 냉장고 문을 열면 먹을 것이 가득한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철따라 밭에서 나는 것들이 곧 우리의 군것질거리였다.
2학기가 시작될 무렵이면 밭의 고구마가 이제 막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느 날 고구마 몇 포기를 캐시고, 아직 푸른 콩이 달린 콩대도 몇 포기 베어 오셨다.
햇고구마였다.
그런데 많이 캐 오시는 법은 없었다.
그때는 그저 아쉬웠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밭에 잔뜩 심어 놓고 왜 몇 포기밖에 안 캐 오시는지, 어린 마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어린 고구마를 우리가 먹겠다고 자꾸 캐 버리면 가을에 거둘 고구마가 줄어든다. 그것은 간식거리를 덜 먹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겨우내 식구들의 배를 채워야 할 양식이 줄어드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자식들 입에 잠깐의 별미를 넣어 주면서도 속으로는 겨울을 셈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우리는 솥에서 고구마가 익기만을 기다렸다.
햇고구마는 가을에 캔 고구마와 달랐다.
아직 전분이 많이 차지 않아서인지 파실파실하지 않았다. 물기가 많아 촉촉했고, 목이 메지도 않았다. 껍질째 한입 베어 물면 부드럽게 씹히다가 목으로 술술 넘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향긋했다.
솥뚜껑을 열 때 김과 함께 피어오르던 그 싱그러운 냄새.
우리는 햇고구마를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고구마가 동나면 이번에는 함께 쪄낸 콩대를 붙들었다. 아직 푸른 콩깍지를 벌리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콩알이 들어 있었다. 하나씩 까먹다 보면 어느새 빈 깍지만 수북했다.
그렇게 햇고구마와 푸른 콩을 먹는 철은 길지 않았다.
콩이 굳어 더는 쪄 먹지 못하게 될 즈음이면 수수가 여물었다.
성미 급한 아이들은 수수 이삭을 손으로 훑어 자잘한 알갱이를 껍질째 오도독오도독 깨물어 먹었다.
나도 먹었다.
하지만 수수에서는 별맛을 못 느꼈다. 맛있어서 찾았다기보다는 별미 삼아, 출출한 배를 잠시 달래려고 먹었던 것 같다.
내가 기다렸던 것은 수수가 아니었다.
햇고구마였다.
푸른 콩도 수수도, 돌이켜보면 햇고구마를 먹던 그 짧은 계절에 함께 따라온 맛이었다.
수수가 여물면 햇고구마의 계절도 끝나갔다.
가을이 깊어지면 고구마를 본격적으로 캤다.
이제는 몇 포기가 아니었다. 겨울을 날 만큼 거두어 저장했다.
그렇게 고구마가 많아졌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더 이상 고구마가 반갑지 않았다.
햇고구마는 별미였지만 추수고구마는 양식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구황식품이었다.
쌀이 귀했다.
어머니는 밥을 지을 때 쌀 한 줌에 고구마를 예닐곱 개씩 나박나박 썰어 넣으셨다.
고구마를 맛있게 먹으려고 밥에 넣은 것이 아니었다.
쌀이 없으니 고구마로 솥을 채웠다.
그것을 밥이라고 먹었다.
한두 번 별미로 먹는 고구마밥이라면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그러나 오늘도 고구마, 내일도 고구마였다. 겨울은 길었고, 그 긴 겨울 내내 고구마가 식구들의 배를 채워야 했다.
햇고구마는 그렇게 더 먹고 싶더니, 정작 가을이 되어 지천이 되자 싫어졌다.
어린 시절의 내게 고구마는 참 이상한 음식이었다.
먹고 싶을 때는 마음껏 먹을 수 없었고,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때는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겨울밤 군고구마 굽는 냄새는 지금도 좋다.
드럼통 안에서 고구마 껍질이 조금씩 타들어가며 풍기던 달고 구수한 냄새. 추운 길을 걷다가 그 냄새를 맡으면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런데 그 냄새를 오래 맡다 보면 엉뚱하게 어린 시절의 고구마밥이 떠오르곤 했다.
쌀 한 줌.
그리고 나박나박 썬 고구마 예닐곱 개.
그러면 나는 나도 모르게 채머리를 흔들었다.
그 시절 긴긴 겨울을 살아내게 해 준 고마운 음식인데도, 다시 먹고 싶지는 않았다.
가난은 때로 고마움과 지겨움을 한 음식 안에 함께 남겨놓는다.
그런데 햇고구마만은 달랐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햇고구마에는 지겨웠던 기억이 없다.
아마 원껏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더 먹고 싶었는데 늘 먼저 동이 났다. 가을 수확이 줄까 봐 어머니는 언제나 몇 포기만 캐 오셨으니까.
그래서 내 기억 속 햇고구마는 늘 모자란다.
한 개쯤 더 먹고 싶은 자리에서 끝난다.
그 모자람이 육십 년이 넘도록 그리움으로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쪄낸 햇고구마를 한입 베어 물었다.
촉촉했다.
목이 메지 않았다.
그리고 그 냄새가 났다.
순간 씹던 입이 멈추었다.
국민학교 2학기가 시작되던 늦여름이었다.
푸른 콩이 달린 콩대를 베어 들고, 어린 고구마 몇 포기를 캐어 집으로 돌아오시던 어머니가 계셨다.
솥에서는 김이 피어올랐고, 어린 나는 그 앞에서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가 왜 고구마를 몇 포기밖에 캐 오지 않으셨는지.
왜 먹고 싶다는 자식에게 실컷 먹이지 못하셨는지.
그리고 그 몇 포기의 고구마를 캐 오면서 어머니는 또 얼마나 긴 겨울을 걱정하셨는지.
이제는 안다.
이제는 햇고구마 몇 상자를 사다 놓고 원 없이 먹어도 된다.
그런데 정작 그 고구마를 쪄 주시던 어머니가 안 계신다.
고구마에서 피어오르는 옛날 그 향을 맡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맛이라는 것을 혀가 기억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머니는 내 코가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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