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속 전당대회

 



[시론] 당원은 주인이라면서 왜 의원들은 당원의 뜻을 거스르는가

― 김민석의 ‘10만 표’와 여성 지방의원 간담회가 드러낸 민주당 전당대회의 민낯

참으로 보기 민망한 광경이었다.

8월 10일, 대한민국 국회 의원회관에 경기도 기초·광역 전·현직 여성의원들이 모였다. 명목은 ‘간담회’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벌어진 모습을 보면 이것을 평범한 정책간담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언론도 이들을 김민석 후보를 지지하는 경기도 전·현직 여성의원들로 보도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참석자들의 자기소개였다.

“○○ 국회의원 지역구의 시의원 ○○○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대동소이했다.

“김민석 총리님의 당대표 당선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귀를 의심했다.

시의원은 국회의원의 부하가 아니다. 국회의원이 임명한 사람도 아니다. 주민들이 직접 투표해 선출한 독립된 선출직 공직자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의 선출직 지방의원이 자기 이름 앞에 자신을 뽑아준 시민이 아니라 특정 국회의원의 이름부터 붙이는가.

‘○○시민이 뽑은 시의원’이 아니라 ‘○○ 국회의원 지역구의 시의원’이라니.

이 짧은 자기소개 한마디에 한국 정당정치의 오래된 병폐가 압축돼 있는 것은 아닌가.

더 놀라운 장면은 그 뒤에 나왔다.

김민석 후보는 참석자들에게 나라의 운명이 걸렸다고 생각하라며 표를 모아달라고 했고, **“여기서 하여간 몽땅 모아서 10만 표는 모으는 것으로”**라는 취지의 주문까지 했다. 참석자 가운데 누군가는 개인별 사진 촬영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김 후보는 당선시켜 놓고 찍으라는 취지로 답했다. 이 장면은 현재 공개된 영상과 이를 옮긴 자료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간담회인가, 선거조직 결의대회인가.

더구나 이들이 자신을 ‘어느 국회의원의 지역구 시의원’이라고 소개했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누가 이들을 모았는가.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각 지역구 국회의원이 직접 참석을 지시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국회의원의 이름을 자신의 정치적 소속처럼 내세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사이에 어떤 정치적 위계가 작동하고 있는지 묻기에 충분하다.

눈 오는 밤의 여성들과 의원회관의 여성들

나는 여기에서 반드시 구별하고 싶은 것이 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에 분노해 눈 내리는 겨울밤 거리로 뛰쳐나왔던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오랫동안 ‘개딸’이라고 조롱받던 이른바 ‘개혁의 딸’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누가 자리를 약속했는가.

누가 공천을 약속했는가.

누가 참석하라고 명령했는가.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거리로 나왔다. 민주주의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절박함 하나로 추위 속에서 응원봉을 들고 밤을 지새웠다.

그것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 시민의 정치였다.

그런데 지금 국회 의원회관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무엇인가.

선출직 지방의원들이 특정 국회의원의 지역구 사람임을 밝히고, 당대표 후보의 당선을 기원하고, 후보는 그들에게 10만 표를 모아오라고 독려한다.

두 장면을 같은 ‘여성 정치 참여’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하나는 자발적 시민의 결집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조직을 통한 표의 결집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나는 바로 이 차이를 분명히 하고 싶다.

지난해에도 당심과 ‘의심(議心)’은 달랐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일이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정청래와 박찬대가 맞붙었던 민주당 전당대회를 돌아보자.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정청래 61.74%, 박찬대 38.26%.

특히 권리당원은 정청래에게 **66.48%**를 몰아줬고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정청래는 **60.46%**를 얻었다.

그런데 대의원 투표에서는 정청래의 득표율이 **46.91%**로 떨어졌다.

당원과 국민의 선택은 분명했는데 당 조직의 중심부로 들어가자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난 것이다.

당시에는 대의원 한 표가 권리당원 약 17표의 가치를 가졌다. 더 주목할 것은 대의원 가운데 국회의원이 공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방의원 등이 포함돼 있어 이른바 ‘오더 투표’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공개적으로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청래는 당시 이렇게 표현했다.

“당심이 의심(議心)을 압도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런데 1년 뒤 우리는 또 비슷한 광경을 보고 있다.

당원들 사이에서 강한 기반을 가진 정청래에 맞서 상당수 의원과 지역 정치조직이 다시 반대편으로 움직이고 있다.

왜인가.

지난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이 이미 자신들의 뜻을 그렇게 명확하게 보여줬는데, 왜 민주당 의원들의 상당수는 또다시 그 흐름과 다른 선택을 하는가.

혹시 1인 1표가 두려운 것은 아닌가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마침내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동일하게 하는 1인 1표제가 처음 적용된다.

나는 이 지점에 주목한다.

1인 1표제는 단순히 선거규칙 하나를 바꾼 것이 아니다.

당내 권력의 이동이다.

대의원 몇백 명, 몇천 명을 움직여 전당대회의 흐름을 바꾸던 시대에서 수많은 평당원의 한 표 한 표가 똑같은 가치를 갖는 시대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조직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것이 과연 반가운 변화이기만 할까.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이 대의원과 지방의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강할수록 1인 1표제는 그들의 당내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그렇다면 지난해 박찬대에게 몰렸던 조직표와 이번 김민석 주변에 결집하는 의원들의 움직임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가.

나는 단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원에게는 물을 권리가 있다.

당신들은 왜 그렇게 1인 1표 시대의 당심과 번번이 다른 곳을 바라보는가.

지방의원 공천권은 정말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더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경기도 여성 지방의원들이 왜 자신을 소개하면서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름을 앞세웠는가.

법적으로 지방의원 후보를 국회의원 개인이 공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 지역위원장과 현역 국회의원이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전당대회를 앞두고도 언론은 대의원 가운데 지방의원 등이 포함돼 있고 국회의원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오더 투표’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그대로 전했다.

그렇다면 이번 영상은 뜻밖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방의원들이 국회의원의 이름을 자신의 정치적 신분증처럼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천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사람이라면 왜 그 이름이 필요한가.

그리고 당대표 후보 앞에서 굳이 “○○ 의원 지역구 시의원”임을 밝히는 행위는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호남의 당원 급증도 설명되어야 한다

또 하나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전체 권리당원의 무려 33%가 호남에 몰려 있다. 수도권에도 40% 가까운 당원이 있지만 호남의 비중은 승부를 좌우할 정도로 커졌고, 호남은 이번 경선의 최대 승부처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김민석 후보는 바로 그 호남에서 다른 지역보다 강한 경쟁력을 보여왔다.

여기에 ‘대규모 신규 당원 가입’과 관련한 여러 주장과 의혹까지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면 중앙당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지역별 신규 권리당원은 언제 얼마나 늘었는가.

누가 이들을 모집했는가.

특정 지역위원회를 중심으로 가입자가 비정상적으로 집중되지는 않았는가.

당비는 정상적으로 개별 납부됐는가.

그리고 그 가입 시점은 이번 전당대회 투표권 취득 시한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나는 조직적인 부정 입당이 있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원 수가 특정 지역에서 급증하고, 그 지역에서 특정 후보의 지지가 유난히 강하며, 그 후보가 지방의원들에게 공개적으로 10만 표를 모아달라고 주문하는 모습까지 나타났다면 당연히 검증해야 한다.

의혹을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료를 공개하면 된다.

당원을 주인이라 부르면서 주인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

민주당은 입버릇처럼 ‘당원주권’을 말한다.

그렇다면 당원을 정말 주인으로 대하라.

당원을 필요할 때 불러내는 투표기계로 취급하지 말고, 국회의원이 지방의원을 움직이고 지방의원이 당원을 움직이는 피라미드식 조직정치를 끝내라.

무엇보다 김민석 후보에게 묻는다.

당대표가 되겠다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지방의원들에게 10만 표를 모아오라고 독려하는 것인가, 아니면 왜 자신이 당대표가 되어야 하는지를 150만 당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설득하는 것인가.

당대표는 의원들이 만들어주는 자리가 아니다.

지역위원장들이 만들어주는 자리도 아니다.

지방의원들이 만들어주는 자리도 아니다.

당원이 뽑는 자리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은 이미 한 번 자신들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정청래에게 66.48%를 주었다. 심지어 호남에서도 당시 정청래는 권리당원 투표에서 66.49%를 얻었다.

그런데 불과 1년 뒤 정치권의 풍경은 다시 뒤집혀 있다.

그렇다면 당원들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의원들이 당원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1인 1표제가 가져올 당내 권력구조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인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이 답해야 할 것은 누가 대표가 되느냐만이 아니다.

이 당의 주인이 도대체 누구냐는 질문이다.

눈 오는 밤 거리에 앉아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은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공천권도, 조직도, 자리를 약속할 권력자도 없었다.

그저 민주주의 하나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다.

그런 시민들의 힘으로 정권을 되찾은 정당이라면 적어도 그 시민들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선출직 지방의원들을 줄 세워 지지를 확인하고 표를 모으는 정치가 ‘당원주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순간, 민주당은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해온 구태정치와 무엇이 다른지 스스로 답해야 한다.

당원주권은 구호가 아니다.

당원이 내 뜻대로 움직일 때만 당원을 주인이라 부르는 것도 아니다.

당원의 선택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와 충돌할 때조차 그 선택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당원주권이다.

그리고 지금 민주당의 전당대회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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