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제일주의라는 이름의 폭력
1. 사료가 없다는 말의
함정
강단사학이 즐겨 내세우는 무기는 '실증'이다. 사료로 확인되지 않는 역사는 인정할 수 없다는 이 원칙은, 얼핏 냉철한 학문적 엄정함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사료를 누가, 왜 없앴는지를 따지지 않는 실증주의는 엄정함이 아니라 편의다.
일제는 강점 초기부터 조선의 역사서를 대대적으로 수거해 불태웠다. 사서(史書)를 없애고, 그 빈자리를 조선사편수회의 '고증'으로
채웠다. 증거를 인멸한 자가 이후 "증거가 없으니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하는 구조 — 이것이 오늘
강단사학이 무비판적으로 물려받은 실증주의의 뿌리다. 전문(傳聞)으로, 구전으로 이어져 온 역사를 사료 부재를 이유로 통째로 배척하는
태도는, 사료를 없앤 자의 논리를 반세기 넘게 재생산해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광개토대왕비가 좋은 예다. 1883년
일본군 밀정 사코 가게노부가 뜬 탁본에서 비문 25자가 변조됐다는 의혹은 1970년대부터 제기돼 왔고, 최근에는 비석 표면에서 실제 끌질 흔적까지
확인됐다. 증거를 인멸하고 조작한 다음 그 결과물을 '사료'로 들이미는 방식 — 이것이 일본이 근대 이래 반복해온 역사공작의
전형이다.
2. 실증이라는 가면을 쓴
식민지
근대화론
이 구조를 학문의 언어로 정교하게 재생산한 이가 이영훈이다. 그는 2007년 저서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국제법이 금지한 노예제로 규정했다가, 2019년 『반일 종족주의』에서는 아무런 새로운 사료 제시 없이 위안부를 직업적 매춘부였다고 입장을 완전히 뒤집었다. 같은 대상에 대해 자기 검증도 없이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는 것은 실증이 아니라 선택이다.
일본군과 조선총독부가 자기 정당화 목적으로 남긴 행정서류를 근거 삼아, 강제 동원을 증언한 피해자들의 육성을 무력화하는 방식은 가해자의 기록과 피해자의 증언에 애초부터 다른 무게를 두는 이중잣대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던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일본 도요타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고, 관계자가 일본 극우단체로부터 항공료와 체류비까지 지원받은 사실은, 이 학문적 입장이 어느 방향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필자의 부친은 일제치하에서 징용으로 북해도 탄광으로 끌려갔었다. 혹독한 노동착취 끝에 늑막에 물이 고이는 병이 들어서야 갱도에서 나올 수 있었다.
무거운 곡괭이를 끊임없이 내리찍도록 채찍질을 가하는 바람에 가뿐 숨을 참을 수 없어서 입으로 숨을 헐떡이다가 얻은 병이었다. 그럼에도 치료는 커녕 더 이상 광부로서 용도가 폐기된 아버지를 치료 조차 하지 않고 되돌려 보냈을 뿐만 아니라 밀린 노임도 주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부정하겠지만 아버지는 노임을 전표로 받았으나 해방이 될 때까지 지급하지 않았다. 그 전표는 내 어릴 때 딱지가 되어 친구들에게 따먹히는 것으로 자취를 감췄다.
내가 딱지를 접은 그 전표가 사라졌으므로 일제가 노임도 주지않고 혹독하게 노동력을 착취했었던 아버지의 과거도 전설이 되고 말아야 한다는 게 강단사학자나 이영훈류의 실증사학 하는 자들의 횡포가 아닌가!
본문으로 되돌아 가자.
식민지 근대화론은 무력이 아니라 통계와 성장률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결과로서의 성장이 과정의 수탈과 폭력을 상쇄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의 영역이다. '실증'이라는 이름으로 가해국에 유리한 결론을 반복 생산하는 이
학문적 자위(自慰) 행위는,
더 이상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무제한 보호받아서는 안 된다.
3. 재조명이라는 이름의 호도
같은 구조는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5.18은 이미 특별법과 법원의 판단으로 민주화운동으로 확정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이 국회라는 공간과 특권을 빌려 '재조명'이라는 이름의 토론회를 주최하고, 그 결과가 전두환 찬양으로 흘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미 국가가 결론 내린 사실(史實)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다시 흔드는 행위에, 국회의원이라는 공적
지위가 정당성의 허울을 씌워준 것이다.
국회의원의 회견·토론회 주선 권한에는 최소한의 검증 절차가 없다. 누구를 국회 공간에 세울지가 전적으로 의원 개인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사적 조직이나 왜곡된 주장이 국회라는
무대에 서는 순간 대중이 체감하는 정당성이 실제 내용과 무관하게 뛰어오르는 이 메커니즘 자체를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4. 독일에는 있고, 우리에게는 없다
독일은 형법 제86조·제86a조와 제130조를 통해 나치 찬양과 홀로코스트 부정을 명백한 범죄로 규정한다. 최근에도 아흔이 넘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자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가해국이었던 독일이 스스로 이렇게까지 엄격한 선을 그어놓은 반면, 피해국인 한국에는 일제강점기 역사를 왜곡·미화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은 피해 당사자가 개인 자격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 것뿐이다. 이미 고령인 피해자들에게 이 부담을 계속 지우는 것 자체가 부조리다.
역사왜곡을 국가가 범죄로 규정하는 입법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왜곡'의 법적 정의를 어떻게 세우느냐, 표현의 자유와의 경계를 어떻게 긋느냐는 입법 과정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 입법 자체를 미룰 이유는 될 수 없다.
최소한
이미 국가와 국제사회가 사실로 확정한 역사 — 강제동원의 강제성, 위안부
피해의 실체, 5.18의 민주화운동 성격 — 를 공개적으로
부정·미화하는 행위만큼은 명확히 범죄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와 함께, 국회의원이 검증 없는
주장에 국회라는 공적 무대를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제도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왜곡에 동조하거나
멍석을 깔아주는 것 역시 왜곡 그 자체와 다르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료가 없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당한 역사,
실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가해지는 모욕. 이것을 더 이상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 뒤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100% 공감하며 동의합니다.
답글삭제둔해지는 기억 새롭개 상기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즉에 정성스레 달아주신 댓글을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