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어게인에게 정권을 갖다 바치려는가!

 


D-600, 다시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 나는 보수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다시 나라를 넘겨줄 사람들이 두려워 이 글을 쓴다

2028년 4월 12일, 제23대 국회의원 총선거.

그날을 600일 앞두고 나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무겁다.

선거라는 것이 원래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것이라면, 한 정당이 국회 과반을 잃는 일이 무슨 나라가 무너질 만큼 대단한 일이겠는가. 민주주의란 정권을 주고받는 제도이고, 국민이 잘못 선택했다면 다음 선거에서 바로잡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다.

이 나라가 지나온 길을 너무 오래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라는 이름을 신앙처럼 믿지 않는다. 보수라는 이름만으로 사람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내가 평생 붙들고 살아온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어느 편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보수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차지했던 세력은 그 이름에 걸맞은 책임과 절제를 보여주기보다 너무 자주 민주주의를 짓밟고 권력을 사유화했다.

그 시작에 이승만이 있었다.

해방된 조국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친일청산은 좌절됐다. 반민특위는 무력화됐고, 반공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폭력이 자행됐다. 제주4·3과 한국전쟁 전후 수많은 민간인이 죽었다. 권력은 장기집권을 위해 헌법을 뜯어고쳤고 마침내 3·15 부정선거에 이르러 국민의 분노에 쫓겨났다.

그 뒤를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와 유신이 이었고 전두환의 신군부와 광주의 피가 이었다. 노태우를 지나 민주화 시대가 왔지만 권위주의 시대가 남긴 정치문화와 기득권의 뿌리까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역사를 누구의 후손에게 연좌제로 물으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묻는 것은 단 하나다.

당신들은 그 역사와 결별했는가.

결별하지 않았다면 과거는 과거가 아니다.

오늘의 정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걱정한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권이 다시 넘어간다면 힘겹게 시작한 개혁이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나를 더욱 두렵게 하는 것은 국민의힘이 아니다.

그들에게 다시 나라를 넘겨줄지도 모르는 민주당이다.


누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가

우리는 너무 쉽게 윤석열만 욕했다.

물론 그가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는지는 역사와 사법의 평가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민주·개혁세력은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사람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내주었는가.

박근혜 탄핵 뒤 촛불의 힘으로 정권을 맡았다. 국회 의석도 국민이 몰아주었다.

그렇게 막대한 정치적 자산을 받아놓고도 오만과 무능과 내분으로 국민을 실망시켜 결국 정권을 내주었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죄와 별개의 책임이다.

불을 지른 사람에게 방화의 책임이 있다면 소방차와 소화기를 맡겨놓았더니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불을 끄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것은 양비론이 아니다.

책임의 종류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에 더 많은 말을 하려고 한다.

국민의힘이 어떤 정당인지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민주당이 다시 그들에게 나라를 넘겨줄 정당인가 아닌가이다.


전당대회에서 내가 본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를 지켜보며 나는 심각한 불쾌감과 불안감을 느꼈다.

정책을 놓고 싸운 것이 아니다.

김민석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반명', '분열주의', '신천지'라는 말을 반복했다. 급기야 정청래 후보가 이를 두고 “반명·분열주의·신천지 3자 비밀연합을 깨는 것이 이번 경선의 본질이라고 했다”며 공개적으로 근거를 요구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정청래는 김민석이 근거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아직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나는 묻는다.

그 증거는 어디 있는가.

정청래가 언제 이재명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는가.

이재명 정부를 무너뜨리자고 한 적이 있는가.

정부의 성공을 방해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는가.

유시민이 대통령을 비판했을 때 정청래가 즉시 “유시민 나빠”라고 외치지 않았으니 반명이라는 논리라면, 그것은 내가 평생 혐오해 온 극단주의자들의 충성심 검사와 무엇이 다른가.

“광화문에 나가 김정은을 욕하지 못하면 빨갱이다.”

그 촌스러운 궤변과 구조가 같다.

누군가를 욕하지 않았으니 너도 같은 편이다.

이런 정치가 민주주의인가.

더구나 김민석은 전당대회에서 실제로 정청래를 ‘반명’으로 몰아세웠고 양측은 신천지 문제까지 놓고 거칠게 충돌했다.

근거가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내놓아라.

근거가 없었다면 사과하라.

선거 때는 상대방의 정치생명이 걸린 의혹을 던져놓고 선거가 끝났으니 화합하자며 입을 닫는 것이야말로 민주정당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정치다.


대통령의 이름을 누가 선거운동에 사용했는가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명심'이었다.

집권여당 당원들이 대통령과 잘 협력할 대표를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 질문이

김민석은 이재명과 협력할 사람이고 정청래는 그렇지 않은 사람

이라는 선택지로 변했는가.

대통령과 협력한다는 것과 대통령에게 충성한다는 것은 다르다.

더구나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은 반역이 아니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의중이 특정 후보에게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반복됐고 상대 후보에게 '반명'이라는 딱지까지 붙었다면 대통령실 역시 완전히 남의 일처럼 바라볼 수만은 없다.

한마디면 됐다.

“어느 후보도 대통령의 후보가 아니다. 당대표는 당원이 결정한다.”

왜 그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았는가.

나는 그래서 대통령에게도 묻는다.

당신의 이름이 당내 권력을 얻기 위한 보증수표처럼 사용되는 것을 정말 몰랐는가.


호남 57.54%,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묻는다

그리고 호남 경선이 있었다.

김민석 57.54%, 정청래 32.65%.

김민석은 호남 권리당원 경선에서 13만9,307표를 얻었다.

나는 호남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지라는, 그 곳 출신 정치가들의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다. 항상 그들의 선택을 존경해왔다.

그러나 “그런 호남 사람들이 그럴 리 없다”는 이유만으로 선거 결과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내가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정을 의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선거의 선거인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묻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2025년 8월 광주와 전남에서 각각 약 15만 장, 합계 30만 장의 신규 당원 가입신청서가 한꺼번에 접수됐다.

당시 호남 전체 권리당원이 약 36만5천 명이었다.

광주·전남 두 곳에서만 기존 호남 권리당원 전체에 육박하는 신규가입 신청이 들어온 것이다. 당시 보도에서조차 이를 지방선거를 앞둔 조직표 확보 경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그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이 실제 권리당원이 되었는가.

누가 모집했는가.

당비는 누가 냈는가.

이번 전당대회 선거인단에는 몇 명이 포함됐는가.

특정 국회의원·지방의원·캠프 조직과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는가.

나는 김민석이 그들을 조직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조사하자는 것이다.

그 30만 명을 심사했더니 약 13만 명, 40%가 넘는 신청자가 부적격 처리됐다. 주소 불일치, 실명인증 실패, 주민번호 오류, 필수항목 허위기재 등이 발견됐고, 약 17만 명만 일반당원 자격을 얻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는 이유로 김민석의 승리를 뒤집자는 것도 아니다.

호남 당원을 모욕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호남 당원의 한 표가 정말 한 사람의 자유로운 한 표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조사하자는 것이다.


17표짜리 사람과 1표짜리 사람이 존재했던 정당

이번 전당대회에서 내가 높이 평가하는 변화도 있다.

정청래가 밀어붙인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다.

이번 전당대회는 152만 명이 넘는 권리당원에게 대의원과 같은 표 가치를 인정하는 1인1표제가 처음 적용된 선거였다.

과거에는 대의원 한 표의 가치가 권리당원 한 표보다 압도적으로 컸다. 정청래가 추진한 개혁은 그 차이를 사실상 없앴다.

나는 이것을 단순한 당헌 개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당의 주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국회의원이 벼슬인가.

시의원이 국회의원의 부하인가.

왜 지방의원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 국회의원님 지역구 시의원 아무개 입니다”라고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가.

국회의원이 지방의원의 공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지방의원이 다시 대의원이 되어 일반 당원보다 훨씬 무거운 표를 행사한다면 그것을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정청래가 그 구조의 한 축을 깨뜨렸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질문이 남는다.

공천권은 언제 당원에게 돌려줄 것인가.

1인1표만 만들어놓고 국회의원이 지방의원과 다음 총선 후보의 정치생명을 쥐고 있다면 혁명은 절반밖에 끝나지 않았다.


왜 국회의원들은 정청래를 그렇게 싫어하는가

나는 이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청래가 완벽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이 거칠 때도 있고 실수도 한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사회가 보여주는 정청래에 대한 거부감은 단순한 개인적 호불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나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한다.

정청래의 힘이 국회의원에게서 나오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당원에게서 직접 힘을 얻는 대표는 의원들에게 불편하다.

더구나 그 대표가 대의원의 특권적 표 가치를 없애고 권리당원에게 권력을 돌려줬다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정청래를 둘러싼 갈등의 본질은 친명이냐 반명이냐가 아니다.

국회의원의 민주당이냐, 당원의 민주당이냐.

이 싸움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청래에게도 어려운 숙제가 남는다.

당원들을 동원해 의원들을 굴복시키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또 다른 패권이 된다.

의원들이 당원을 두려워하되 소신껏 일할 수 있고, 당원은 의원의 부하가 아니면서도 의원의 의정활동을 존중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당원주권이다.


합당을 막은 명분 뒤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도 나는 거창한 이념투쟁으로 보지 않는다.

정치공학이다.

혁신당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다음 총선에서도 모두 비례대표로 출마할 수는 없다.

합당하면 지역구로 가야 한다.

그러면 기존 민주당 현역의원 가운데 누군가는 자기 지역구에서 혁신당 출신 정치인과 공천장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합당 반대가 정말 당의 미래만을 걱정해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지역구와 공천장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당연히 따져봐야 한다.

정치는 명분으로 말하지만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인이 자신의 공천을 걱정하는 것 자체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당과 대통령과 민주주의를 위한 결단처럼 포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뉴스공장이 필요할 때는 드나들고, 불편해지니 문제인가

그리고 나는 최근 민주당 일부에서 나타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매불쇼 등을 대하는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다.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인들은 그 방송에 얼굴 한 번 더 비추려고 줄을 섰다.

왜 그랬는가.

그곳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어려울 때도 떠나지 않고 뉴스를 듣고, 돈을 내고, 투표장에 나가고, 주변 사람을 설득했던 지지자들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방송이 당 지도부에게 불편한 말을 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유튜브 정치가 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김민석 대표는 취임 직후 당의 모든 뉴스를 담을 기본 플랫폼으로 민주당TV를 만들겠다고 지시했다.

만들어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착각하지는 말라.

당이 만든 방송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공론장은 다르다.

기관방송은 만들 수 있다.

신뢰는 명령으로 만들 수 없다.

더구나 뉴스공장이 자기편일 때는 이용하고 자신을 비판하자 그 영향력을 문제 삼는다면 국민이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나는 그것을 표리부동이라고 부른다.


공소를 취소한다고?

더 위험한 문제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기소가 조작됐다고 생각한다면 밝히면 된다.

수사하라.

증거를 공개하라.

조작한 검사가 있다면 책임을 물어라.

나는 그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정치권이 앞장서 대통령 사건의 공소취소를 이야기하는가.

대통령 스스로 무죄라고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더더욱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런데 집권한 뒤 여당이 대통령 사건을 없애는 모습으로 비친다면 국민에게 어떤 인상을 주겠는가.

“죄가 없어서 무죄가 된 것인가, 권력을 잡아서 사건이 없어지는 것인가.”

그 의심 하나가 생기는 순간 개혁의 도덕적 명분은 치명상을 입는다.

혹시 정말 아무 죄가 없다면 공연히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사건 가운데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라도 숨어 있다면 그때 공소취소는 부스럼이 아니라 정권의 뼛속까지 파고드는 악성종양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이 가만히 있겠는가.

극우세력이 가만히 있겠는가.

아니다.

그들보다 먼저 나 같은 사람들이 화를 낼 것이다.

나는 민주당 사람이기 전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차악을 찍어야 하는가

정치하는 사람 가운데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인간이 하는 일이니 완벽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서 우리는 때때로 차악을 선택한다.

조금 덜 부패한 사람.

조금 덜 위험한 사람.

조금 더 국민을 두려워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표를 준다.

그러나 이것을 정치인이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저놈보다 덜 더러우니 나를 찍어라.”

그것이 언제까지 통할 것 같은가.

국민은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차악이 스스로 최선인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하는 순간 국민은 투표장을 떠난다.

바로 그것이 지금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

민주당 지지자가 국민의힘으로 가지 않아도 민주당은 질 수 있다.

그냥 투표장에 가지 않으면 된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나는 이재명 정부가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반대다.

성공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더욱 엄격하게 말한다.

윤석열보다 잘한다고 만족하지 말라.

박근혜보다 국무회의를 잘한다고 자랑하지 말라.

비교할 사람과 비교하라.

국무회의를 생중계하고 장관들에게 질문하며 국정을 직접 챙기는 모습은 처음에는 신선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마이크를 너무 오래 잡고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장관이 해야 할 진행까지 직접 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유능함은 과잉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결정을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더욱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을 놓아주라.

당대표 선거에서 대통령의 이름을 팔지 못하게 하라.

누구도 '명심'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라.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적으로 만들지 말라.

유시민이 비판하면 들어라.

김어준이 비판하면 들어라.

매불쇼에서 욕하면 왜 욕하는지 들어라.

그 사람들이 언제부터 대통령의 신하였는가.

그들은 대통령을 만든 국민의 일부다.


김민석에게

그리고 김민석 대표에게 묻는다.

정청래가 반명이라는 증거를 내놓아라.

신천지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근거를 내놓아라.

전당대회 기간 내내 그렇게 큰소리를 쳤다면 선거가 끝났다고 없어지는 말이 아니다.

근거가 없다면 사과하라.

당대표가 됐으니 이제 덮자는 말은 하지 말라.

당신이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말할수록 나는 오히려 대통령이 걱정된다.

대통령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통령 주변에 충성하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남겨두는 것이다.

권력자의 귀에서 불편한 말이 사라지는 순간 권력은 썩기 시작한다.

역사가 수도 없이 증명했다.


D-600

600일 남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너무나 짧다.

나는 오늘부터 이 시간을 세려고 한다.

국민의힘이 무슨 잘못을 하는지만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얼마나 민주당다워지는지도 기록할 것이다.

검찰개혁을 하는가.

사법개혁을 하는가.

당원에게 권력을 돌려주는가.

공천권을 민주화하는가.

자기편의 잘못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가.

대통령이 당 위에 군림하지 않는가.

당대표가 대통령의 이름을 권력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국회의원이 지방의원을 부하처럼 거느리지 않는가.

당 지도부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과 유튜브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가.

나는 보수가 두려워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다시 나라를 넘겨줄 사람들이 두려워서 쓴다.

600일 뒤 또다시 국민 앞에 나와

“저들이 집권하면 큰일 납니다. 그러니 우리를 찍어주십시오.”

라고 말하지 말라.

우리는 이미 그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민주진보 진영에 상대적으로 유능하고 덜 부패한 인재가 아무리 많아도 보통선거 마당에선 번번히 보수진영에게 패했다.

보수진영에서 박근혜나 윤석열 같은 대통령이 나와, 보수진영이 보기에도 도저히 그냥 두기가  부끄러울 정도가 돼서 탄핵을 당했을 때만 정권이양이 됐다.

만일, 자기 아들에게 넘겨준 다스를 끝끝내 본인 것이 아니라고 발뺌하던 이명박 정도만 나라를 이끌어도 다음 정권은 정치지형상 보수 집단에게 넘어가게 돼있다.

이미 운동장이 가만히 서있기도 힘들게 기울어져 있지 않은가? 

영호남 유권자 비율이 2.5 대 1이다. 게다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오던 충청권 유권자들의 정서도 6 대 4 정도 보수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런 선거구도에서 정권 재창출을 하려면 특출난 인재가 나서든지 직전 대통령의 영도력이 태평성대를 이뤄도 쉽지 않은 게임이다.

윤석열의 '뻘짓'이 언제까지 약효가 있을 것 같은가? 벌써 '아직도 계엄 내란 타령이냐'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내란청산이 반도 끝나지 않았음에도......

그러니 이번에는 당신들이 유권자 앞에서 증명하라.

당신들이 왜 표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당신들이 왜 개혁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당신들이 왜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당신들이 정말 국민을 주인으로 생각하는지를.

보수가 나쁘다는 사실은 민주당이 옳다는 증명이 아니다.

상대가 더 더럽다는 사실도 내가 깨끗하다는 증명이 아니다.

정치는 상대방의 추악함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자기가 옳은 일을 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유권자들은 600일 뒤 차악을 고르기 위해 투표장에 가고 싶지 않다.

더 나쁜 놈을 막기 위해 덜 나쁜 놈에게 표를 주고 싶지도 않다.

내 한 표가 아깝지 않은 사람에게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민주당은 지금부터 선택하라.

당원의 정당이 될 것인가.
국회의원의 정당으로 돌아갈 것인가.

비판하는 사람을 품을 것인가.
충성을 요구하는 정당이 될 것인가.

개혁으로 국민을 설득할 것인가.
공포로 표를 구걸할 것인가.

시간은 600일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다 지나간 뒤에는 변명할 시간이 없다.

그날 심판하는 사람은 대통령도, 당대표도, 국회의원도 아니다.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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