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시론] 광복은 했지만, 청산은 끝났는가
― 죄를 대물림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되돌려 놓자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젊은 여배우의 집안 이야기가 세간의 화제가 됐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이야기였다. 고종 황제를 진료한 의사였다는 증조부의 이력도 소개됐다. 누가 들어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가문의 내력이다.
그런데 네티즌들이 그 증조부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증조부로 지목된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거론됐고, 처음에는 소속사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나는 그 소식을 접하면서 40년 가까이 묵은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뉴욕의 어느 아파트 벽에 걸려 있던 사진
1980년대 후반, 뉴욕에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 형님은 동양식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장사를 하다 보면 돈이 제때 돌지 않을 때가 있었고 갑자기 목돈이 필요한 일도 생겼다. 그럴 때마다 형님 내외는 '문 할머니'라고 부르는 노파에게 돈을 빌리곤 했다.
어느 날 형수가 말했다.
“서방님, 나 혼자 가기 무서우니까 같이 좀 가요.”
따라나섰다.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그저 그런 아파트였다. 대단한 부잣집도 아니었고 살림살이도 평범했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는 순간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벽 한쪽에 커다란 옛날 사진이 걸려 있었다. 고종 황제와 관복을 차려입은 대신 몇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크게 확대해 놓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집안 내력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진 속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 시아버지라며 꽤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가 알고 보니 그는 친일파의 거두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나라가 광복되자 도망치듯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미국에 숨어들었다고 했다. 광복된 땅에 머물다가는 누구에게 치도곤을 당할지 모른다는 계산이었다고 했다. 그 노파 말로는 그 때까지도 일본 정부로부터 연금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가지고 나온 돈과 연금 모은 돈으로 이자놀이를 하는, 그냥 평범한 할머니였다.
사진 속 고종의 얼굴을 보고 뜨아해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자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열심히, 아주 열심히 시아버지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건너방에서 듣고 있던 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엄마, 제발 그런 얘기 좀 그만해!”
시카고에서 개업의로 살고있는 둘째 딸이라고 했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어머니에게는 자랑스러운 집안의 역사였지만 딸에게는 남에게 떠벌리고 싶지 않은 역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또 다른 젊은 후손에게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가문의 영광은 전해졌는데, 가문의 치욕은 전해지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나는 여기서 한 사람의 배우를 탓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80여 년 동안 무엇을 기억했고, 무엇을 지워버렸는가.
죄는 상속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꺼내면 으레 돌아오는 말이 있다.
“조상이 친일했다고 자손에게까지 책임을 물으란 말이냐?”
물론 아니다.
아버지의 죄를 아들에게 묻고 증조부의 죄를 증손녀에게 묻는 사회라면 그것 역시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는 왜 죄의 상속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 이익의 상속에는 그토록 관대한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얻은 토지와 재산, 권력과 사회적 지위, 교육의 기회와 인맥은 자식에게 넘어가고 다시 손자에게 넘어갈 수 있었다.
반대로 나라를 되찾겠다고 재산을 팔고 학교를 버리고 만주로, 연해주로, 중국으로 떠난 사람들은 무엇을 자식에게 물려주었는가.
투옥과 고문, 가난과 단절이었다.
어떤 집안에는 친일의 대가가 자산이 되어 내려가고, 어떤 집안에는 독립운동의 대가가 가난이 되어 내려갔다.
그리고 몇 세대가 지나자 우리는 말한다.
“이제 옛날 이야기 그만하자.”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가.
출발선을 빼앗아 놓고 결승선에서 공정을 말하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아직 풀지 못한 사회정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친일파의 후손과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직장에서 일하며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나 한쪽의 출발선이 식민권력에 협력한 대가로 수십 미터 앞으로 당겨졌고, 다른 한쪽은 독립운동 때문에 몇십 미터 뒤로 밀려났는데 그 결과를 그대로 놓아둔 채,
“이제 모두 같은 국민이니 과거를 잊자.”
고 한다면 그것은 화해가 아니다.
출발선의 강탈을 그대로 둔 채 결승선에서 공정을 선언하는 것이다.
“반민특위라도 다시 만들자는 말이냐?”
그렇다면 나는 되묻고 싶다.
Why not?
물론 1948년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그대로 부활시켜 100년 전 사람들을 잡아들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반민특위가 좌절되면서 끝내지 못했던 국가의 책무를 지금의 방식으로 계속하자는 것이다.
누가 어떤 친일행위를 했는지 기록하자.
그 대가로 어떤 재산과 지위를 얻었는지 조사하자.
그 가운데 부당하게 취득된 재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법과 절차에 따라 바로잡자.
그리고 독립운동 때문에 재산과 교육기회와 삶의 기반을 잃은 가문에는 국가가 그에 합당한 예우와 보상을 하자.
그것이 연좌제인가?
아니다.
후손에게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남긴 불의를 국가가 바로잡는 것이다.
199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1995년 취재차 한국을 찾았을 때 민족문제연구소 이구홍 소장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친일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꺼내기 어려운 주제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사회도 조금씩 움직였다.
친일인명사전이 만들어졌고 친일재산 환수 작업도 이루어졌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뒤늦게나마 역사가 제자리를 찾아가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아니다.
80년이라는 세월은 친일의 흔적을 없애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을 기득권이라는 이름으로 굳혀 놓기에도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청산은 1945년보다 훨씬 어렵다.
친일파 개인은 이미 죽었다.
재산은 몇 차례 상속됐고 법인과 사업체로 변했으며, 사회적 지위와 인맥은 학벌과 직업과 명망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것을 건드리면 곧바로 이런 항변이 돌아온다.
“언제까지 친일 타령을 할 것이냐.”
나는 오히려 묻는다.
제대로 끝낸 적이 있었던가.
끝내지도 않은 일을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묻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광복절에 일장기가 걸리는 나라
몇 해 전 3·1절에 버젓이 일장기를 내건 사람이 나타났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허탈했다.
일제강점기를 직접 경험한 세대가 거의 사라져가면서 우리 사회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적 감각마저 함께 희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과거 방송을 할 때도 3·1절이나 광복절이면 특집방송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극일의 작은 실천으로 가능하면 일본 제품 대신 다른 나라 제품이나 국산품을 선택해 보자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항의전화가 왔다.
“내 돈으로 내가 물건을 사는데 왜 남의 사유재산에 간섭하느냐.”
맞는 말이다.
자기 돈으로 무엇을 살지는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나에게도 묻고 호소할 자유가 있다.
한국에서 만들지 못하는 물건이라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산품이나 미국산, 유럽산 등 얼마든지 대체품이 있다면 나는 한 번쯤 생각해 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지불한 돈은 단순히 물건값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이익이 되고 세금이 되고 그 나라의 경제력이 되고 국력이 된다.
그런 일본은 지금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역사교과서의 서술을 둘러싼 갈등을 되풀이하며,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공물 문제로 주변국의 상처를 건드린다.
그런데 피해를 입었던 우리에게만 묻는다.
“언제까지 과거를 이야기할 것이냐.”
나는 반대로 묻겠다.
그들은 언제 과거를 끝냈는가.
광복 81년, 이제는 '기억의 정의'를 세울 때다
올해로 광복 81년이다.
이제 친일청산을 단순히 친일파 몇 사람의 이름을 찾아내 욕하는 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그 후손에게 조상의 죄를 대신 사과하라고 강요하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훨씬 크다.
기록해야 한다.
누가 나라가 가장 어려울 때 무엇을 했는지.
누가 그 대가로 무엇을 얻었는지.
누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나라를 되찾으려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후손들에게 어떻게 이어졌는지.
감추지 말고 기록해야 한다.
부당하게 취득한 것이 확인된다면 바로잡고, 희생한 사람에게 국가가 갚지 못한 빚이 있다면 갚아야 한다.
그것이 사회정의다.
죄는 유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당한 이익은 상속될 수 있다.
명예도 상속된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기억마저 선택적으로 상속된다는 사실이다.
고종 황제와 함께 찍은 사진은 대대로 벽에 걸어놓으면서 그 사람이 일제강점기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지워버린다면, 몇 세대 뒤 후손에게 남는 것은 '훌륭한 증조할아버지'뿐이다.
그때 역사는 패배한다.
그래서 나는 광복절마다 과거를 이야기할 것이다.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냐”고 타박해도 좋다.
청산이 끝날 때까지다.
그리고 청산의 목적은 복수가 아니다.
친일파 후손을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자는 것도 아니다.
나라를 팔아 얻은 것이 애국의 대가보다 더 큰 유산이 되는 사회, 그런 역사를 감춘 집안이 오히려 명문가로 칭송받고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은 사람의 후손이 가난 속에서 잊히는 사회를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자는 것이다.
친일청산은 죽은 친일파에게 벌을 주자는 일이 아니다.
그들이 무너뜨린 정의를 살아 있는 대한민국 안에서 다시 세우자는 일이다.
광복은 1945년에 왔다.
그러나 정의까지 그날 함께 온 것은 아니었다.
광복 81년.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과연, 광복 이후의 숙제까지 끝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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