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국사(韓國事)
1편 — 도둑놈들이 보내온 생일선물
1988년 음력 10월 그믐께였다.
정확한 양력 날짜보다 음력으로 기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날이 내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기분을 잡쳤다.
아직 한창 자고 있는데 형이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 일하러 나가는 사람이 자는 사람 생각도 안 하고 왜 저렇게 요란인가 싶어 짜증스럽게 눈을 떴다.
그런데 형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야, 네 차 문이 활짝 열려 있더라.”
잠이 확 달아났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엘머스트 병원 앞의 한 아파트였다. 한국 사람이라고 해봐야 다섯 가구 정도였고 여러 이민자들이 뒤섞여 살던 곳이었다.
눈곱만 대충 떼고 헝클어진 머리 그대로 아파트 뒤편으로 뛰어갔다.
멀리서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게 보였다.
차 문이 벌어져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가관이었다.
화물칸 문에 채워놓은 맹꽁이자물쇠는 밤새 망치세례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 두꺼운 쇳덩어리 표면이 움푹움푹 패여 곰보가 되어 있었다.
자물쇠만 당한 것이 아니었다.
문짝 사이에 쇠지렛대를 집어넣고 억지로 벌렸는지 철판은 움푹 찌그러졌고, 힌지는 박살이 나 있었다.
그리고 화물칸을 들여다봤다.
깨끗했다.
기가 막히게 깨끗했다.
내가 작정하고 대청소를 해도 그렇게 말끔하게 비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냉동·냉장 일을 하면서 하나씩 사 모은 연장들이 몽땅 사라졌다. 그 시절의 내게 공구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을 들고 가게 냉장고도 고치고, 워크인 박스도 손보고, 아이스머신도 고쳐 돈을 벌었다.
말 그대로 내 밥벌이 도구였다.
그런데 그것만 가져간 것도 아니었다.
차 안에서 공구나 부품을 쉽게 꺼내 쓸 수 있도록 내가 치수를 재고 공들여 예쁘게 짜놓았던 선반까지 몽땅 뜯어갔다.
허탈해서 한동안 텅 빈 화물칸만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생일선물 치고는 참 거창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도둑님 오신 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돈보다 더 이해되지 않는 것이 생겼다.
소리였다.
작은 자물쇠 하나 툭 끊어놓고 물건 몇 개 집어간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채워놓은 맹꽁이자물쇠가 곰보가 될 정도로 망치로 내려쳤다. 쇠지렛대로 철문을 제꼈다. 힌지를 박살냈다. 화물칸에 있던 공구들을 꺼냈다. 그것도 모자라 차 안에 고정해놓은 선반까지 뜯어갔다.
한두 사람이 몇 초 만에 하고 달아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40여 가구가 모여 살던 바로 뒤편 아파트에서 한밤중에 벌어졌다.
아무도 듣지 못했을까.
아무도 창문 한번 열어보지 않았을까.
누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정말 아무도 몰랐을까.
나는 당시 그 아파트 주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했거나 적어도 알고도 모른 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했다. 물론 지금까지 증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 누구를 범인이라고 지목할 수는 없다.
하지만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한 가지 의문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게 시끄러운 도둑질을 정말 아무도 듣지 못했을까? 게다가 아파트 건너편은 개인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다.
수시로 경찰차가 순찰을 도는 동네인데......., !!
차보다 공구가 더 아까웠다
자동차를 가지고 장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차는 그저 이동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당시 내게 차는 그렇지 않았다.
차가 곧 작업장이었고 창고였으며 밥벌이의 절반이었다.
전화를 받으면 그 차를 몰고 현장으로 갔다. 냉장고가 섰다고 하면 공구를 꺼내 고쳤고, 가게를 새로 만든다고 하면 자재를 싣고 갔다.
그러니 차를 털렸다는 것은 카세트나 지갑 몇 개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날 일을 하려면 다시 공구가 필요했다.
도둑은 내 공구를 가져갔지만 그렇다고 내 고객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어젯밤에 도둑맞았으니 한동안 장사 못 합니다.”
내 가게 물건이 상하는 마당에 내 속사정 들어주고 기다려 줄 거래처가 있겠는가?
빚을 내서라도 다시 사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도둑맞았으니, 다시 돈을 쓰고 나서야 돈을 벌 수 있었다.
그것이 자영업자가 당하는 절도의 무서운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날은 몰랐다.
그 생일날 아침 텅 빈 화물칸을 바라본 일이 앞으로 뉴욕에서 내가 겪게 될 수많은 절도 사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리라는 것을.
이후 30여 년 동안 컨트랙팅 비즈니스를 하면서 차를 통째로 세 번 도둑맞았다.
차창을 깨고 털어간 것, 문짝을 부수고 공구를 가져간 것까지 합치면 열다섯 번도 넘는다.
어떤 차는 불과 몇 분 사이에 사라졌다.
어떤 차는 내가 맨발로 뛰어나가 눈앞에서 쫓아갔지만 잡지 못했다.
한번은 현장에서 도둑맞은 내 공구를 맨해튼 길거리에서 팔고 있는 사람을 내 눈으로 발견해 경찰까지 불렀다.
공사를 끝내고 주인에게 열쇠를 넘겨주려던 날 아침, 새로 설치한 셔터가 밤새 그래피티로 범벅이 되어 멀쩡한 새 셔터를 내 돈으로 다시 뜯어내고 교체한 적도 있다.
그렇게 몇 번, 몇십 번을 당하고 나니 나중에는 화를 내는 것도 지쳤다.
그래서 가끔 누가 그 동안 돈 벌어서 다 뭐했느냐고 물으면 이런 자조(自嘲)를 했다.
“뉴욕에서 장사하려면 나 혼자 먹고살 수 있어? 도둑놈들하고도 사이좋게 나눠 먹고 살아야지.”
웃으면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빨 드러내고 깔깔거린다고 속이 시원할 리가 있겠는가!
재료비가 있었다.
인건비가 있었다.
자동차 유지비가 있었다.
보험료와 세금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을 다투는 응급콜에 연장이 없어 즉시 가주지 못해 경쟁업자에게 옮겨간 거래처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내 장부에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또 하나의 비용이 있었다.
도둑님들 몫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흔히 경범죄, 혹은 작은 재산범죄라고 부른다. 수 천불, 많으면 몇 만불 쯤이라고 행정적으로는 그렇게 분류되어진다.
살인도 아니고 강도도 아니니 그렇게 분류하는 이유는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묻고 싶다.
누구에게 작은 범죄인가?
500달러짜리 공구 하나가 없어져도 다음 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500달러로 끝나지 않는다. 차를 도둑맞으면 자동차 한 대의 값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안의 공구와 자재, 약속한 공사, 잃어버린 하루와 거래처의 신뢰까지 함께 흔들린다.
그리고 범인은 사라진다.
남은 사람은 다시 돈을 벌어 공구를 사고, 차를 고치고, 깨진 것을 원상복구하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범죄는 도둑이 저지르는데, 그 범죄의 계산서는 피해자에게 날아온다.
1988년 생일날 아침.
나는 아파트 뒤편에 서서 텅 비어버린 화물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앞으로 내게 얼마나 많은 ‘생일선물’을 준비해두고 있었는지를.
그 날 이후로 난 그 동네에서 봤음직한 생김새를 한 사람들, 특히 'cable'을 '까불래'라고 읽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엔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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