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에서부터 무슨 꿍꿍이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제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답해야 한다

― 지지층의 균열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어제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이 나왔다.

나는 그 인터뷰를 두 번 봤다.

정부 정책을 설명하고 청와대와 집권당 사이의 소통을 이야기하기 위해 정무수석을 불러놓은 평범한 인터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 눈에는 거의 취조에 가까웠다.

질문 하나하나가 지난 몇 달 동안 민주당 주변을 떠돌던 소문과 의혹의 봉인을 뜯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 인터뷰를 보면서 오히려 의문이 더 커졌다.


“강득구와 무슨 문자를 주고받았는지는 묻지 않겠다”

가장 먼저 귀에 꽂힌 것은 김어준의 이 말이었다.

강득구와 무슨 문자를 주고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나는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

문자?

그동안 강득구를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던가.

대통령의 뜻이 어떻다느니, 합당이 어떻다느니 하며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받은 듯한 이야기가 나왔다가 번복되고 해명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문자’라는 말까지 나온다.

김어준은 더 묻지 않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내가 본 홍익표의 표정은 상당히 당혹스러워 보였다.

물론 표정은 증거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문자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을 지어낼 생각도 없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그 문자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왜 김어준은 굳이 “묻지 않겠다”고 말했는가.

묻지 않겠다는 말 때문에 오히려 더 묻고 싶어졌다.


정청래는 도대체 왜 그렇게 미움을 받는가

내가 더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다.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 정청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왜 싫어하는가.

정청래에게 당대표가 되어서는 안 될 만큼 심각한 품격의 문제가 있는가.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가.

정치지도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가.

같이 의정활동을 해본 의원들만 아는 문제가 있는가.

그렇다면 당원들에게 말하라.

당원들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당원들은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정청래에게 표를 몰아줬다. 반면 상당수 의원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국회의원에게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 당대표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당원과 의원들의 판단이 그토록 크게 갈렸다면 민주정당이라면 그 이유가 공개적으로 토론되어야 했다.

그런데 설명은 없고 소문만 무성했다.

‘명심’이 누구에게 있다는 둥, 대통령은 정청래를 싫어한다는 둥, ‘존엄’의 뜻이 어떻다는 둥….

나는 여기서 화가 난다.

대한민국 민주정당에서 대통령의 뜻은 왜 대통령의 입이 아니라 온갖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나오는가.


그놈의 ‘존엄’은 왜 남의 입을 통해서만 말하는가

어제 홍익표는 대통령이 정청래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부인했다.

대통령이 “내가 싫어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해진다.

그동안 떠돌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대통령이 정말 정청래를 싫어하지 않았다면 누가 대통령의 마음을 대신 읽어 당내에 퍼뜨린 것인가.

그것도 당대표를 지낸 송영길의 입에서 나온 말인데, 항차 당대표를 지낸 자가 없는 말을 지어냈다는 말인가?

없는 ‘명심’을 만들어 팔고 대통령의 권위를 이용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나는 강득구 문제도 같은 시각에서 본다.

대통령이 하지 않은 말을 대통령의 뜻인 양 팔았다면 감찰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반대로 실제 전달받은 내용이 있었다면 무엇을 전달받았는지 밝혀야 한다.

이언주를 둘러싼 논란도, 전당대회 과정에서 쏟아졌던 온갖 ‘명심’ 논란도 마찬가지다.

모두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만 났다는 말인가.


“너희도 욕했잖아”가 어떻게 수습책인가

나는 ‘문조털래유’ 같은 모욕적인 표현이 민주진영 안에서 유통되는 것을 처음 봤을 때 경악했다.

누가 최초로 만들었고 어떤 경로로 확산됐는지는 정확히 밝혀야 한다.

그런데 그 문제를 제기하면 반대편에서도 ‘한강 어쩌고 저쩌고......’ 같은 말을 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반론이 나온다.

그게 무슨 해결책인가.

저쪽에서 잘못했으면 저쪽의 잘못도 따로 책임을 물으면 된다.

한쪽의 잘못이 다른 쪽의 잘못을 면책해주지 않는다.

“너희도 그랬잖아.”

이 한마디로 수개월 동안 쌓인 증오와 불신을 퉁치겠다는 것인가.

그런 방식으로 어떻게 갈라진 지지자들을 다시 모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장 큰 책임을 묻는다

여기서 나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이 모든 사태를 몇몇 의원과 극성 지지자들의 싸움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사태의 정치적 출발점과 최종적인 수습 책임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있다고 본다.

이것은 확인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나의 정치적 판단이다.

대통령의 이름이 당권경쟁에 끊임없이 등장했다.

‘명심’이 돌아다녔다.

‘존엄’이 돌아다녔다.

대통령이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싫어한다는 말까지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당원들은 서로 원수가 되어갔다.

그 모든 것을 대통령이 전혀 몰랐다고 나는 믿기 어렵다.

알았다면 왜 일찍 정리하지 않았는가.

“내 이름 팔지 마라.”

그 한마디면 상당 부분 정리될 일이 아니었는가.

대통령의 뜻을 거짓으로 팔았다면 책임을 물었어야 하고, 실제 대통령의 뜻이었다면 대통령이 직접 설명했어야 한다.

둘 중 어느 쪽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나는 이재명 대통령의 암묵적 용인 여부를 묻는 것이다.

용인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의 이름이 그렇게 오랫동안 당내 권력투쟁의 무기로 사용됐는데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면,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왜들 싸우느냐”고 짜증낼 일이 아니었다

지난 6월 이 대통령은 당내 싸움을 두고 서로 원수처럼 싸우지 말라는 취지로 강하게 질책했다.

당시 대통령 자신도 선거 이후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문제를 언급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몹시 실망했다.

내 눈에는 대통령의 표정에서 당내 분란에 대한 짜증과 불쾌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것 역시 나의 인상이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묻고 싶었다.

왜 싸우느냐고 지지자들에게 화낼 것이 아니라, 왜 싸우게 되었는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싸움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원과 의원들의 선택이 갈라졌다.

대통령의 뜻을 둘러싼 말들이 난무했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의중을 이야기했다.

모욕적인 별명과 언어폭력이 판을 쳤다.

그것을 방치한 뒤 양쪽을 향해 “왜 싸우느냐”고 하면 갈등이 사라지는가.

그것은 정치가 아니다.


검찰개혁에서도 똑같은 의문이 생긴다

나는 검찰개혁을 바라보면서도 비슷한 불신을 느낀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남겨야 한다고 대통령이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말하면 된다.

국민 앞에 서서,

“나는 검찰개혁에는 찬성하지만 검사의 보완수사권은 존치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고 말하고 국민을 설득하면 된다.

대통령에게는 자신의 철학을 설명할 권리도 있고 책임도 있다.

그런데 말과 제도, 그리고 인사 사이에서 서로 다른 신호가 읽히기 시작하면 지지자들은 의심하기 시작한다.

특히 검찰개혁을 절박한 과제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인사는 말보다 훨씬 강한 메시지다.

개혁을 외치면서 실제 인사를 통해 검찰주의적 사고를 가진 인물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지지자들은 묻게 된다.

대통령의 진짜 생각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통령이 직접 답해야 한다.


행정능력과 정치력은 다르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의 행정능력까지 부정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행정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행정능력과 정치력은 같은 것이 아니다.

정책을 만들고 공무원 조직을 움직이고 회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것만이 대통령의 능력은 아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정치연합이 왜 갈라졌는지 알아내는 것.

상처받은 지지자에게 설명하는 것.

자기편이 잘못했다면 자기편에게 책임을 묻는 것.

그리고 서로 등을 돌린 사람들을 다시 한자리에 앉히는 것.

그것도 대통령의 능력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청와대도 이제 문제를 인정했다

어제 홍익표의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들은 것은 어쩌면 이것이었다.

청와대는 전당대회가 끝나면 지지층의 균열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그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고 했다.

드디어 문제의 실체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진단이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지지층이 갈라졌다는 것은 결과다.

원인은 무엇인가.

왜 갈라졌는가.

누가 대통령의 뜻을 팔았는가.

대통령의 진짜 뜻은 무엇이었는가.

정청래에게 정말 당원들이 모르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가.

없었다면 왜 그토록 많은 당내 인사들이 그를 배척했는가.

모욕과 혐오의 언어를 누가 키웠고, 지도부는 왜 방치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고 “이제 전당대회도 끝났으니 화합하자”고 해봐야 상처가 아물 리 없다.


이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이재명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직접 나서라.

홍익표에게 대신 말하게 하지 말고, 측근들에게 대통령의 뜻을 해석하게 하지 말고, 대통령 본인의 입으로 말하라.

정청래에 대한 생각도 말하고, 당내 갈등에 대한 판단도 말하고, 검찰개혁에 대한 자신의 원칙도 분명히 밝히라.

잘못 판단한 것이 있다면 인정하면 된다.

대통령의 뜻을 왜곡해서 팔고 다닌 사람이 있다면 책임을 물으면 된다.

지지자들의 오해라면 대통령이 직접 풀면 된다.

그러나 침묵하면서 통합만 주문해서는 안 된다.

오늘 홍익표는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늦었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히 지지율 몇 퍼센트를 회복하기 위한 이벤트여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에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는지를 듣는 자리여야 한다.


나는 미국에 산다.

그러니 한국에서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내 일상이 직접 달라지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걱정이 된다.

윤석열을 그리워하는 세력까지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민주진영이 이렇게 스스로 갈라져 다음 정권을 다시 내준다면 한국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겪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답답하다.

윤석열 집권 시기는 미주 동포들에게도 수치스러운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한다.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매듭을 풀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이재명 대통령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매듭의 한가운데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국민과 싸우는 정치인이 가장 어리석다고 말해온 정치인이라면 이제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과 싸우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지지자들에게 “그만 싸우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대통령 자신이 답해야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갈라졌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통령의 솔직한 대답에서부터 통합은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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