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능한 면장을 뽑은 것이 아니다
― 검찰개혁의 표류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묻는다
나는 요즘 정성호 전 법무부 장관을 생각하면 화부터 난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그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면서 줄곧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있다.
그는 국회 답변이나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런 취지의 말을 되풀이했다.
“검사라고 해서 모두 나쁜 사람은 아니다.”
대체 누가 검사 개개인이 선하냐 악하냐를 따지자고 검찰개혁을 시작했는가.
검찰개혁은 사람의 인품을 심판하는 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검찰이 수사와 기소라는 막강한 권한을 한 손에 쥐고, 그 권력이 조직논리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될 가능성이 너무 컸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검찰은 수사하고, 기소하고, 공판을 유지했다. 수사의 시작에서 끝까지 한 기관이 막대한 권한을 행사했다. 그 과정에서 조직 내부의 검사동일체 문화와 상명하복의 질서가 결합했고, 퇴직 뒤에는 전관특혜라는 기묘한 법조시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사·기소 분리라는 생각은 바로 이러한 권력집중을 깨뜨리자는 데서 출발했다.
그런데 우리는 혹시 여기서 또 하나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닐까.
검찰에서 수사권을 빼앗아 다른 기관에 넘기기만 하면 검찰개혁이 완성되는 것처럼 생각한 것은 아닐까.
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검찰청이라는 간판을 없애도 그 조직의 문화와 인맥과 권력행사 방식이 새로운 기관으로 그대로 옮겨간다면 그것을 어떻게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간판을 바꾸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개혁이다.
그래서 수사·기소 분리와 함께 반드시 했어야 할 일이 있었다.
검사동일체의 잔재를 실질적으로 해체하고, 전관특혜의 고리를 끊고, 고의적으로 법을 왜곡하는 판·검사에게는 실제로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법왜곡죄를 만든다면 이름만 거창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증거를 고의로 감추거나 왜곡하고, 명백한 위법을 알면서도 사람을 잡아넣기 위해 국가권력을 사용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가배상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피해자에게 국민 세금으로 배상금을 지급하고 정작 위법행위의 당사자에게 아무 책임도 묻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책임제도인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확인됐다면 구상권 문제를 반드시 심사하고, 중대한 위법행위에 대한 조사와 징계가 시작된 공직자가 사표 한 장 던지고 전관변호사로 빠져나가는 길도 차단해야 한다.
판·검사의 독립은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독립과 무책임은 전혀 다른 말이다.
판단이 틀렸다는 이유로 처벌해서는 안 되지만, 법을 알면서도 고의로 왜곡하고 국가권력을 악용했다면 그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져야 한다.
탄핵 역시 정치적 보복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판·검사를 국민의 이름으로 책임지게 할 수 있는 실효적인 최후의 장치여야 한다.
결국 검찰개혁의 본질은 간단하다.
누가 수사권을 가지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면 반드시 책임진다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10월 2일 새로운 형사사법체계의 출범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도 인력과 조직, 업무분장과 사건이관을 둘러싼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 와서 검찰개혁의 근본 방향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 묻게 된다.
정성호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나는 정성호가 검찰개혁의 본질을 끊임없이 흐렸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신의 소신으로 그랬다면 법무부 장관으로서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이 엄중하다.
그러나 내 의심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통령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법무부 장관이 국가의 핵심 개혁과제를 이렇게 오랫동안 끌고 갈 수 있었을까.
온갖 국정 현안을 직접 챙기고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는 대통령이 유독 검찰개혁에서만 정성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바라보고 있었을까.
나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제 질문은 정성호에게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옮겨간다.
정성호의 독단이었는가. 아니면 대통령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는가.
혹시 중도와 보수층의 일부라도 끌어안기 위해 검찰개혁의 속도와 강도를 의도적으로 낮추려 했던 것은 아닌가.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단정할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단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제 이 의문에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
정성호가 떠난 뒤에도 같은 방향이 계속된다면 국민은 자연스럽게 판단할 것이다.
정성호 개인의 생각이 아니었다고.
그리고 바로 이 문제가 앞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잃어버린 지지를 회복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의 밑바닥에는 검찰개혁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왜 탄생했는가.
나는 남태령 고갯길을 생각한다.
내란의 위기 앞에서 추위와 눈을 맞아가며 밤을 지새웠던 시민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무엇을 바랐겠는가.
벼슬 한 자리 얻으려고 그랬겠는가.
어느 정치인을 평생 떠받들려고 그랬겠는가.
아니다.
무너질지도 모르는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지키겠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 우국충정이 이 정부를 탄생시킨 가장 깊은 뿌리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됐다.
그것을 국정철학의 맨 앞자리에 새겨놓았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요즘 이 정부를 보면서 자꾸만 유능한 면장(面長)이 떠오른다.
민원 잘 해결하고, 사업 잘 따오고, 길 잘 닦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성과를 챙기는 부지런한 면장 말이다.
물론 대통령도 일을 잘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면장을 뽑으려고 대통령 선거를 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행정에는 능력이 필요하지만 정치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왜 그 일을 하는지가 보이지 않으면 국정은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 철학을 잃은 권력은 결국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들부터 잃는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다시 묻고 싶다.
남태령에서 눈을 맞았던 그 시민들을 기억하는가.
그들이 왜 그곳에 있었는지를 기억하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왜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유능한 면장을 뽑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 시대의 상처를 정리하고, 무너진 국가기관을 바로 세우고, 권력이 다시는 국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만들 대통령을 뽑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시간은 많지 않다.
이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
우리가 왜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를 기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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