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회고록(回顧錄) - 독수리가 뜯어먹고 남긴 것


뉴욕 韓國事

2편 — 딱 5분, 내 밴이 증발했다

차 키는 내 혁대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차가 없었다.

1993년 어느 날, 맨해튼 Amsterdam Avenue 102가였다.

그곳에 있는 생선가게에서 아이스머신을 고쳐달라는 연락을 받고 갔다. 당시 나는 뉴욕 곳곳의 식당이나 델리, 그로서리를 돌아다니며 냉동·냉장 설비를 수리하는 한편 가게 신설공사도 하고 있었다.

그날 타고 간 차는 하늘색 Dodge 밴이었다.

차 안에는 Brooklyn Church Avenue의 야채가게 신설공사에 가져갈 자재가 가득 실려 있었다. 석고보드를 비롯한 각종 자재와 공구를 얼마나 많이 실었던지 밴의 뒷바퀴 쪽이 눈에 띄게 주저앉아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빈 차가 아니라는 것은 알 만했다.

생선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 모퉁이 아파트 계단 입구에는 동네 사람 대여섯 명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대부분 히스패닉 주민들이었다.

그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하나 있었다.

비번 경찰관이었다.

생선가게에 몇 번 드나들면서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어 서로 안면 정도는 있는 히스패닉 경찰관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앉아 있는 바로 옆에 밴을 세우고 생선가게로 들어갔다.

고장 난 아이스머신을 손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기껏해야 5분 남짓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차가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하늘색 Dodge 밴. 석고보드와 자재를 잔뜩 실어 뒤가 축 처져 있던 그 큰 차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주변부터 살폈다. 차문을 잠궜기 때문에 문을 열려면 유리창을 깼어야 했다.

그런데 유리파편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열쇠따기 전문 털이범 소행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또 있었다.

내가 가게에 들어가기 전부터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대여섯명쯤이었다는 것 밖에.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내 차 어떻게 됐어?”

돌아온 대답은 더 기가 막혔다.

“우리는 네 차를 본 적이 없어.”

본 적이 없다고?

불과 5분 전 나는 그들이 앉아 있는 바로 옆에 차를 세웠다. 

그것도 승용차처럼 조그만 차가 아니었다. 짐을 얼마나 실었던지 뒤가 주저앉은 커다란 Dodge 밴이었다.

더구나 그중에는 나와 안면이 있는 비번 경찰관까지 있었다. 

차에서 내려 비번 경찰관과 눈인사도 주고 받았었다.

그런데 아무도 내 차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지금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범행에 가담했다고 말할 증거는 없다.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의심일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도 그들은 거기 있었고, 5분 뒤 내가 나왔을 때도 거기 있었다.

그 사이에 차만 사라졌다.


5만 달러가 사라진 5분

더 붙잡고 물어봐야 소용없었다.

생선가게 주인에게 관할 경찰서가 어디냐고 물었다.

NYPD 24th Precinct. ***

차 키는 여전히 내 혁대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차 키를 가지고 걸어서 경찰서로 갔다.

기분이 참 묘했다.

자동차 열쇠라는 것은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물건인데, 그날 내 혁대에 매달린 차 키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쇳조각이었다.

차가 없으니까.

그런데 내 걱정은 차 한 대가 아니었다.

Church Avenue 야채가게 신설공사에 들어갈 자재만 약 3만5천 달러어치가 실려 있었다. 거기에 내가 먹고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던 각종 전문공구와 차량까지 계산하면 피해는 5만 달러를 훌쩍 넘었다.

1993년의 5만 달러다.

돈도 돈이지만 당장 공사가 문제였다.

공사할 자재가 몽땅 없어졌다.

연장도 없어졌다.

그렇다고 고객에게

“도둑맞았으니 공사를 못 하겠습니다.”

하고 끝낼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사업 하나가 휘청거릴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런데 경찰서에 가보니 분위기가 달랐다.

신고를 받던 경찰관에게는 그다지 놀라운 사건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뉴욕에서는 2분에 자동차 세 대가 도난당해.”

순간 맥이 탁 풀렸다.

‘그래서?’

내게는 5만 달러가 넘는 재산이 한순간에 날아간 끔찍한 사건인데, 경찰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공연히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경찰서까지 찾아와 호들갑을 떠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 경찰의 말에도 이유는 있었다

30여 년이 지나 이 글을 쓰면서 당시 통계를 찾아봤다.

놀랐다.

1993년 한 해 뉴욕시에서 신고된 자동차 절도는 무려 112,464건이었다.

하루 평균 약 308대.

그 가운데 96,809대가 거리에서 사라졌다. 

내 밴도 그 96,809대 가운데 한 대였던 셈이다.

다만 경찰관이 말했던 “2분에 3대”는 실제 통계와 맞지는 않는다. 실제 신고 건수를 시간으로 나누면 대략 4분 40초마다 한 대꼴이다.

하지만 그 숫자를 확인하고 나니 당시 경찰관이 왜 그렇게 심드렁했는지는 조금 이해가 갔다.

그에게 내 사건은 그날 뉴욕 어디에선가 사라진 300여 대 가운데 한 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그 300대 가운데 내 차는 단 한 대였다.

경찰통계에는 ‘Motor Vehicle Theft 1’이라고 기록됐겠지만, 그 차에는 내 사업이 실려 있었다.

이 차이가 피해자와 경찰이 바라보는 범죄의 거리였는지도 모른다.

더 놀라운 것은 그해 24th Precinct 자체에서도 차량절도, 즉 G.L.A.(Grand Larceny Auto)가 990건 기록됐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당시 경찰관에게 자동차 한 대 없어졌다는 신고가 얼마나 일상적인 일이었을지 짐작은 간다.

그렇다고 내 5만 달러가 일상적인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나도 거의 포기했다.

하는 수 없이 처치애비뉴 신설 가게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중도금 5만불을 당겨 차와 연장과 자재를 다시 준비해서 공사를 마쳤다. 한 달 남짓 헛수고를 한 셈이 되었다.


도난당한 지 37일째 되던 날

경찰에게 연락이 왔다.

차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순간 반가웠다.

솔직히 차가 온전할 거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차를 찾았다니 어느 정도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알려준 곳은 브롱스의 어느 공터였다.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차를 찾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마주한 것은,

내 차의 시체였다.

마치 자연다큐멘터리에서 독수리들이 죽은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고 남긴 뼈를 보는 것 같았다.

문짝부터 없어졌다.

바퀴도 몽땅 빼갔다.

미션도 떼어갔다.

차체는 벽돌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었다.

본네트는 활짝 열려 있었다.

엔진마저 들어내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다. 그것까지 떼어가려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포기하고 버린 모양이었다.

내가 알던 하늘색 Dodge 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에는 화가 치밀었다.

분노가 이글거렸다.

내가 땀 흘려 마련한 차였다.

그 안에 실려 있던 자재도 내 돈이었고, 연장 하나하나도 내가 일해서 마련한 것이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것을 훔쳐다가 필요한 것을 하나씩 떼어 팔고, 마지막 남은 뼈다귀를 쓰레기처럼 공터에 내던져놓았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했다.

화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 하나 없는 브롱스 공터에서 벽돌 위에 올라앉은 내 차를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마음이 텅 비었다.

분노보다 허탈함이 밀려왔다.

마치 텅 빈 내 지갑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엉뚱하게 경찰에게 화가 났다.

‘이런 걸 찾았다고 나한테 연락한 거야?’

‘이걸 나더러 어쩌라고?’

굴러갈 수도 없는 차였다.

문짝도 없고 바퀴도 없고 미션도 없는 쇳덩어리를 놓고 경찰은 내 차를 **“찾았다”**고 했다.

차라리 못 찾았다고 했으면 기억 속에라도 자동차로 남아 있었을 텐데.

37일 만에 찾아가 확인한 내 차는 이미 자동차가 아니었다.


내가 가져온 것은 번호판뿐이었다

그날 내가 브롱스에서 가지고 돌아온 것은 차가 아니었다.

번호판뿐이었다.

번호판을 떼었다.

그리고 벽돌 위에 올라앉은 차를 그대로 두고 돌아섰다.

기억으로는 나중에 내가 살던 곳의 DMV에 가서 번호판을 반납하고 차량을 정리하는 절차를 밟았던 것 같다.

그렇게 끝났다.

5분 만에 사라진 차를 37일 만에 다시 만났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있었다.

번호판 두 장.

37일 만에 돌아온 내 Dodge 밴은 그렇게 번호판 두 장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참 희한한 세월이었다.

자동차 한 대를 통째로 훔쳐가는 데 5분이면 충분했다.

길가에 사람들이 앉아 있어도 소용없었다.

그중에 경찰관이 하나 끼어 있어도 소용없었다.

차 키를 내가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피해액이 5만 달러가 넘어도, 하루 300대 넘는 자동차가 사라지던 도시에서는 그것마저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그때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범죄통계에는 모든 피해가 숫자 1로 기록된다.

5달러짜리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의 절망도, 생업을 싣고 다니던 차를 잃어버린 사람의 절망도 통계표에서는 결국 숫자 하나다.

그러나 피해자의 인생에서는 그렇지 않다.

내 밴을 훔쳐간 놈들은 5분이면 됐다.

나는 그 5분의 값을 몇 년 동안 벌어서 마련했었다.

그리고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2년 뒤인 1995년.

이번에는 남의 동네도 아니었다.

내 집 드라이브웨이에서 또 한 대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날은 더욱 기가 막혔다.

나는 꿈속에서 내 차를 훔쳐가는 도둑을 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 밖으로 뛰어나갔다.

꿈에서 보던 바로 그 일이 내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 뉴욕 韓國事 3편〈꿈에서 차를 잃고 똑같은 현몽을 하다〉로 이어집니다.**


*** 지금도 24경찰서는 Manhattan Valley를 관할하고 있으며 West 100th Street에 있다.  - 뉴욕시 정부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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