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에 뜨던 달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다.
뉴욕의 밤하늘은 도시의 불빛에 바래어 달이 떠도 달빛이 내리지 않는다. 창밖을 내다보아도 건너편 아파트의 불빛과 가로등만 희끄무레할 뿐, 달빛이 마당을 적시던 고향의 밤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눈을 감으면 오히려 육십 년 저쪽의 달빛이 쏟아진다.
그 달빛 속에 하얗게 둥근 것이 하나 어른거린다. 보름달인가 하면 보름달이 아니고, 꽃인가 하면 꽃도 아닌 것이 밤새 내 詩想을 유혹하며 잠을 앗아간다.
초가지붕 위에서 여물어 가던 박덩이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서는 박넝쿨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초가 처마 밑 어디쯤 심어 놓았는지 어린 나는 알지 못했지만, 여름이 깊어지면 어느새 넝쿨이 처마를 붙잡고 올라가 지붕을 타고 있었다. 가느다란 덩굴손으로 볏짚 이엉을 움켜쥐고 한 뼘 한 뼘 기어올라가다가, 지붕마루를 넘고 옆집 쪽으로 슬그머니 길을 내기도 했다.
박넝쿨에게 초가지붕은 밭이면서 길이고 세상이었다.
그 넝쿨에 피는 박꽃은 수줍은 꽃이었다.
호박꽃이 한낮 땡볕 아래 노랗게 입을 벌리고 벌을 불러 모으는 동안에도 박꽃은 잠잠했다.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고, 저녁밥 짓는 연기가 굴뚝마다 피어올라 마을 골목에 낮게 깔리고, 어스름이 초가의 잿빛 이엉을 가만가만 어루만질 때쯤에야 하나둘 흰 입을 벙글었다.
낮의 꽃이 아니라 밤의 꽃이었다.
해가 지고도 한동안 남아 있던 서쪽 하늘의 붉은 기운이 사라지고 나면 박꽃의 흰빛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달빛이라도 밝은 밤이면 지붕을 기어가던 넝쿨 마디마디에 흰 꽃들이 둥둥 떠 있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운 아이의 눈에는 그것이 꽃이라기보다 지붕에 내려앉은 별무리 같았다.
그 시절 여름밤에는 집 안보다 마당이 좋았다. 낮 동안 달아올랐던 흙마당이 밤이 되면 서늘해지고, 멍석 한 장 펴놓으면 그것으로 훌륭한 잠자리가 되었다. 모기가 귓전을 맴돌고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풀벌레가 담 밑에서 울었다. 어른들은 하루 종일 밭일에 지친 몸을 부채질 몇 번 하다가 금세 잠이 들었지만, 아이에게 밤은 그렇게 쉽게 끝나는 시간이 아니었다.
등을 대고 누우면 하늘이 온통 내 것이었다.
은하수가 흐르고 별똥별 하나라도 떨어질라치면 눈으로 그 뒤를 쫓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초가지붕 위에 박꽃이 피어 있었다.
하늘에는 별이 피고 지붕에는 박꽃이 피었다.
아마 그때는 그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늘 있는 것이었으니까.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이름을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꽃이 지고 나면 지붕 위의 세월은 소리 없이 흘렀다.
어느 날 보면 꽃이 있던 자리에 손톱만 한 박이 매달려 있었다. 며칠 뒤에는 아이 주먹만 해지고, 다시 얼마 뒤에는 사발만 해졌다. 그러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올려다보면 어느새 두 팔로 안아야 할 만큼 커져 있었다.
박은 자라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밤새 얼마나 자랐는지 아침마다 재어볼 수도 없는 노릇인데, 분명 어제보다 커져 있었다. 아이가 잠든 사이에도 박은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름내 땡볕이 이엉을 달구고 소나기가 넝쿨을 후려치는 동안에도 박은 지붕 위에서 묵묵히 몸집을 불렸다. 볕을 받고 비를 맞고 바람을 견디면서, 처음에는 푸르던 껍질도 차츰 빛을 달리했다.
견디는 것들만이 여무는 법이다.
씨앗이 그렇고 열매가 그렇듯 사람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박도 한여름의 볕과 장맛비와 태풍 끝자락의 바람까지 제 몸에 다 받아 넣고서야 가을 문턱에 저리 희고 둥글게 앉을 수 있었다.
처서가 지나 밤바람이 선득해지기 시작하면 박은 정말 달을 닮았다.
하늘에 달 하나,
지붕에 달 하나.
마당에 누워 하늘의 달과 지붕의 달을 번갈아 바라보노라면 어느 것이 참달인지 아이는 짐짓 헷갈리는 척하였다.
하늘의 달은 구름 속으로 숨기도 하고 산 너머로 가버리기도 했지만, 지붕의 달은 아침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하늘의 달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만질 수 없었지만, 지붕의 달은 마음만 먹으면 이엉을 타고 올라가 두 팔로 안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아이의 셈으로는 지붕의 달이 오히려 더 미더운 달이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하늘의 달은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해주는 일이 없었지만 지붕의 달은 달랐다.
저 달 하나가 겨울이면 바가지가 되고, 물을 뜨는 그릇이 되고, 쌀독 속에서 쌀을 푸는 그릇이 되고, 장독의 된장을 덜어내는 그릇이 된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달이었고 어머니에게는 살림살이였던 셈이다.
이윽고 박을 타는 날이 온다.
지붕에서 내려온 박은 가까이서 보면 달과는 사뭇 달랐다. 여기저기 얼룩도 있고, 햇볕을 많이 받은 곳과 덜 받은 곳의 빛깔도 조금씩 달랐다. 그래도 어린 눈에는 그 큰 박을 가르는 일이 여간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톱날이 박의 허리에 닿는다.
스걱, 스걱.
마른 껍질을 파고드는 소리가 나고, 톱이 조금씩 깊어질 때마다 아이는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들여다보고 싶어 목을 빼었다.
마침내 박이 두 쪽으로 갈라지면 속살은 놀랄 만큼 희었다.
흥부네 박처럼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일은 없었다. 도깨비가 튀어나오는 일도 없었다. 그저 허연 속살과 씨앗이 가득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손에 들어가면 그 평범한 박 속에서도 먹을 것이 나왔다.
어머니는 반으로 갈린 박을 가마솥에 쪄서 숟가락으로 속을 긁어내셨다. 바가지를 만들자면 어차피 들어내야 할 속이었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어머니 손에서 그것이 그냥 버려지는 법은 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박속을 긁어내어 기름간장에 조물조물 무쳤다.
그것이 박속나물이었다.
심심하고 보들보들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대단한 별미도 아니었다. 고기도 들어가지 않았고 화려한 양념도 없었다. 그저 박속에 간장 조금, 기름 조금 들어간 소박한 나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 맛이 육십 년을 건너와 아직 혀끝에 남아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것은 박속나물의 맛만이 아닐 것이다.
가마솥에서 올라오던 김과 부엌의 냄새, 저녁밥을 차리던 어머니의 등, 숟가락이 놋그릇에 부딪히던 소리, 하루 일을 마치고 식구들이 둘러앉던 밥상까지 한데 섞여서 하나의 맛으로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혀가 기억하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던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속을 다 내어준 박은 다시 제 몫의 일을 준비했다.
깨끗이 긁힌 박껍질은 처마 밑이나 그늘진 곳에 엎어져 말랐다. 처음에는 눅눅하던 것이 며칠이 지나고 또 며칠이 지나면 단단해졌다. 그러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박이 아니었다.
바가지였다.
샘물을 뜨고,
쌀독에서 쌀을 푸고,
장독에서 된장을 덜고,
콩이며 보리며 곡식을 퍼 담던 살림살이가 되었다.
지금처럼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사다 쓰는 세상이 아니었다. 집에서 기른 것이 그릇이 되고, 밭에서 난 것이 밥이 되고, 다 쓰고 난 것은 또 다른 쓰임을 얻었다. 버리는 것보다 다시 쓰는 것이 먼저였고, 물건 하나에도 사람 손길과 한 해의 계절이 배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다.
맨해튼의 봄날 땅속에 묻힌 작은 씨앗 하나가 넝쿨이 되고, 넝쿨이 지붕을 오르고, 어스름 속에서 흰 꽃을 피우고, 꽃이 진 자리에 달덩이 같은 박이 열리고, 그 박의 속은 가족의 반찬이 되고 껍질은 몇 해씩 쓰는 바가지가 되었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다.
흥부네 박에서는 금은보화가 쏟아졌다지만 우리네 박에서 나온 것은 어머니의 박속나물 한 접시와 바가지 몇 짝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 와 헤아려 보면 그것이 금은보화보다 못할 것도 없었다.
금은보화는 쓰고 나면 없어지지만, 그날 저녁상에 올랐던 박속나물 한 접시는 육십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많던 바가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우물가에서 물을 뜨던 바가지도, 쌀독 속에 반쯤 묻혀 있던 바가지도, 장독대 한쪽에 엎어져 있던 바가지도 이제는 하나 남아 있지 않다. 초가지붕도 없어지고 박넝쿨도 없어지고, 저녁이면 굴뚝마다 밥 짓는 연기가 오르던 마을 풍경도 사라졌다.
어머니도 계시지 않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없어진 것들이 나이가 들수록 더 또렷해진다.
젊어서는 앞만 보고 사느라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밥벌이의 세월이 길었고, 만리타향의 세월은 더 길었다. 낯선 나라에 와서 먹고살고 자식 키우고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면 박꽃이 몇 시에 피었는지, 초가지붕 위 박이 얼마나 희었는지 따위는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나이가 들면 서정도 마르는 줄 알았다.
세월에 씻기고 닳아서 내 안의 그런 것들은 진작 바스러졌으려니 하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디 깊은 곳에 씨앗처럼 묻혀 있었던 모양이다.
젊은 날에는 싹을 틔울 겨를조차 없던 기억들이 이제 와 하나둘 흙을 밀고 올라온다. 가을 문턱만 되면 여문 씨앗이 말을 걸고, 육십 년 전의 박꽃이 눈앞에서 다시 벙근다.
어머니가 박속을 긁던 숟가락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어쩌면 사람도 박과 비슷한지 모르겠다.
한여름 같은 젊은 날에는 볕을 견디고 비를 맞으며 그저 몸집을 불리느라 바쁘다. 무엇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러다 인생의 처서가 지나 밤바람이 선득해질 즈음에야 비로소 제 안에 무엇이 여물어 있었는지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박꽃이 한낮을 마다하고 어스름에야 피는 꽃이듯,
서정이라는 것도 인생의 저녁에 이르러서야 흰빛으로 피는 꽃인가 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잠들지 못하는 밤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잠이 오지 않으면 눈을 감는다.
그러면 뉴욕의 아파트 천장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향집 초가지붕이 나타난다. 지붕을 타고 오른 넝쿨에는 흰 박꽃이 피어 있고, 풀벌레 우는 마당에는 어린 내가 멍석 위에 누워 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떴다.
그리고 그 아래,
초가지붕 위에도 달 하나가 떠 있다.
하나는 하늘에서 기울고,
하나는 지붕에서 여문다.
나는 어느새 늙었는데 그날 밤의 아이는 아직도 그 자리에 누워 두 개의 달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그 아이에게 가만히 묻고 싶다.
“얘야, 너는 저 달을 오래 기억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느냐.”
아이는 아마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지붕 위의 박을 쳐다보다가 씩 웃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으니까.
한낱 박 한 덩이가 육십 년 뒤 만리타향의 어느 잠 못 이루는 밤에 다시 떠올라, 늙은 아이의 가슴을 이토록 환하게 비출 줄을.
오늘 밤도 잠은 그른 모양이다.
괜찮다.
내 마음의 지붕 위에서
달 하나가 또 여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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