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을 위한 마지막 변명
― 지금 필요한 것은 해명이 아니라 결단입니다
요즘 이재명 대통령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집권 초기의 이재명 대통령은 참으로 재기발랄했습니다. 관료집단을 장악하는 솜씨가 노련했고, 국무회의에서 현안의 허점을 즉석에서 짚어내며 담당 관료에게 되묻는 모습에서는 오랫동안 행정 현장을 경험한 사람 특유의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국민이 느끼는 효능감도 컸습니다. 답답했던 문제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고, 관료들이 긴장하고, 정부가 정말 일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영생하소서’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 과장된 표현 속에는 진심이 들어 있었습니다.
“제발 이대로만 해주십시오.”
그런 대통령이 요즘은 많이 달라 보입니다.
그 당당하던 사람이 속절없이 떨어지는 지지율 앞에서 예전의 기세를 잃은 듯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대통령을 매섭게 비판했던 저조차 가슴 한구석이 찡해집니다.
돌이켜보면 대통령에게도 잘못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경망스럽게 비치는 언행도 있었고, 지나친 자신감이 교만처럼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핵심 지지층이 무엇을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는지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이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 하락에서 가장 심각하게 보아야 할 것이 바로 핵심 지지층의 이탈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도 어렵습니다. 부동산 문제도 있습니다. 외교와 파병을 둘러싼 논란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들이 지금의 사태를 설명하는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지층이 대통령을 굳게 신뢰하고 있을 때에도 경제 문제는 있었고 부동산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들이 정권 전체를 흔들지 못했던 것은 대통령을 끝까지 떠받치던 단단한 지지층이 정치적 방파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방파제에 지금 금이 갔습니다.
그들은 왜 떠났습니까
저는 그 이유의 중심에 검찰개혁이 있다고 봅니다.
계엄과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의 일상은 흐트러졌습니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그 혼란을 조속히 제자리로 돌려놓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책임을 법과 절차에 따라 규명하고 제도를 바로 세우는 것이 이 정부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혁은 지지부진했습니다.
대통령은 개혁이라는 것이 개혁의 대상이 저항하지 않도록 조용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의 생각을 여러 차례 밝혀왔습니다.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것도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개혁의 대상이 반발하지 않을 만큼만 하는 개혁이 과연 개혁일 수 있습니까?
환골탈태에는 아픔이 따릅니다.
잘못된 제도를 뜯어고치면서 그 제도로 권한과 기득권을 누렸던 모든 사람이 만족하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법과 절차는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저항을 두려워하여 개혁의 본질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십니까.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열망을 믿으십시오.
대통령 혼자 기자회견장에 세운다고 해결될 문제입니까
그래서 저는 이번 기자회견만으로 지지율이 쉽게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 때문에 생긴 위기라면 말로 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여 동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쌓인 불신이라면 기자회견에서 백 마디를 잘한다고 해결되기는 어렵습니다.
부동산 정책을 설명하고 경제지표를 이야기하고 외교 문제를 해명하고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능숙하게 답한다고 해서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겠습니까.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나를 가장 열렬하게 지지했던 사람들이 왜 떠났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동안의 판단과 언행에 경솔함이나 오판이 있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지체된 개혁을 어떻게 완수할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왜 이제야 TF입니까
저는 그 책임에서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더욱 뼈아프게 보는 것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흔들리고 이른바 코어, 즉 핵심 지지층의 이탈이 두드러지던 시기와 김민석 대표가 전당대회에 뛰어들어 당권 경쟁이 격화된 시기가 겹쳐 보인다는 점입니다.
물론 두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그 시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민석 대표는 전당대회 초반부터 신천지 문제와 ‘반명·분열주의’를 강하게 제기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묻고 싶습니다.
그토록 중대한 문제였다면 왜 당대표가 된 뒤에는 그 문제의 실체와 처리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당원들이 납득할 만큼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까.
당시 논란은 자칫 민주당 자신에게까지 정교분리와 위헌정당 논란의 불씨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습니다. 당내 경쟁자들 사이에서는 당정 협의와 검찰개혁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까지 벌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청래 전 대표를 비롯한 당내 인사들과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총리 시절 검찰개혁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정치적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린 것은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의심하는 당원들이 있다면 이제는 그 의심에도 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검찰개혁이 이 정부와 민주당의 그토록 중대한 과제였다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에야 다시 TF를 앞세울 일이었습니까.
정부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을 때 개혁의 방향이 잘못되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대통령에게 직언했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개혁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설득했어야 합니다.
개혁을 추진할 정치적 동력이 약해지고 있었다면 당과 협력해 그 동력을 만들어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집권당을 이끌겠다는 지도자가 져야 할 책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성호 전 법무부 장관의 책임 역시 따져보아야 합니다.
보완수사권을 비롯한 검찰개혁의 구체적인 방향을 놓고 그가 제기한 우려에는 그 나름의 논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제도 설계와 다른 방향으로 갈 경우 사법체계가 심각한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이 정치권에서 전해질 정도였다면, 과연 그것이 개혁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충정이었는지, 아니면 기존 검찰제도의 논리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판단이었는지도 이제는 냉정하게 평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책임정치를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화합의 장이어야 했던 전당대회
제가 김민석 대표에게 묻고 싶은 더 큰 책임은 따로 있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무엇을 위한 자리였습니까.
선거가 끝난 뒤 경쟁자들이 손을 잡고, 갈라졌던 당원들이 다시 하나가 되어 집권당의 힘을 모으는 화합의 장이 되었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전당대회는 시작부터 신천지 논란과 ‘반명·분열주의’ 공방에 휩싸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지자들은 서로를 향해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조국·김어준·정청래·유시민을 한데 묶어 조롱하는 ‘문조털래유’ 같은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혐오의 언어가 쏟아졌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이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입니다.
한 식구였던 사람들이 서로를 적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전당대회는 끝났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대표가 되려는 정치인이 그 분열을 막지 못했다면 그 자체로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더구나 선거 과정에서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까지 받는다면,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김민석 대표에게 묻는 가장 큰 정치적 책임은 바로 이것입니다.
화합의 장이 되어야 할 전당대회를 왜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는 싸움판으로 만들어버렸습니까.
민티07이 보여준 이상한 풍경
민티07을 둘러싼 논란도 저는 같은 맥락에서 봅니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언론 지형이 과연 건강한 민주사회의 모습인지 저는 묻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주요 레거시미디어의 보도 지형이 민주진보 진영에 우호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뉴스공장이나 매불쇼 같은 대안적 시사방송이 없었다면 민주진보 진영의 목소리가 지금처럼 전달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총선과 대선을 거치는 동안 이들 방송이 민주진보 진영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정치적 의제를 전달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들을 ‘여론을 호도하는 세력’ 정도로 몰아세운다면 오랫동안 그 방송을 지켜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저는 김민석 대표가 겸공이나 매불쇼를 죽이기 위해 민티07을 만들었다고 단정할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속마음까지 사실처럼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의도 못지않게 결과도 중요합니다.
민주당 공식방송이 출범했는데 왜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환영하기보다 경계했습니까.
왜 같은 시간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는 오히려 20만 명 안팎의 사람들이 몰렸습니까.
왜 거액의 슈퍼챗이 쏟아졌습니까.
저는 그것을 단순한 방송 프로그램의 경쟁으로 보지 않습니다.
신뢰의 문제라고 봅니다.
민티07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더 중요한 것은, 왜 집권당의 공식 미디어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기존 민주진보 성향 미디어와 지지층 사이에 또 하나의 전선이 만들어졌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상처 입고 갈라진 사람들에게 또다시 ‘누구 편이냐’를 묻게 만드는 정치라면 그 결과에 대해서도 지도부가 책임 있게 돌아봐야 합니다.
여론조사 숫자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여론조사 숫자에는 잡히지 않는 민심이 있습니다.
숫자는 누구를 선택했는지는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에 얼마나 뜨거운 신뢰가 실려 있는지, 얼마나 깊은 배신감과 실망이 쌓여 있는지까지 온전히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정치에는 그런 이심전심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 정당을 지켜본 사람들은 숫자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저는 지금 민주당에서 그 공기의 변화를 느낍니다.
김민석 대표에게 묻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당대표가 되었습니다.
이제 무엇을 얻으려 하십니까.
더 큰 정치적 꿈이 있다면 그것 또한 정치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더 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능력은 자기편을 많이 만드는 기술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등을 돌린 사람까지 다시 품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지장도 용장도 결국 사람을 모아야 합니다.
자기편만으로 나라를 이끌 수는 없습니다.
지금 민주당에 가장 부족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라진 사람들에게는 다시 돌아올 명분이 필요합니다.
등을 돌린 지지자들에게는 마음을 돌릴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도부를 둘러싼 갈등이 하루 더 계속될 때마다 그 시간과 공간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김민석 대표가 버틸수록 되돌아올 시간과 공간을 모두 탕진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책임과 역할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당대표 자리가 로망이었다면 그 자리의 영광뿐 아니라 그 자리가 요구하는 책임까지 로망이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다고 말했던 민주당을 위해 무엇이 진정한 선당후사인지 스스로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이재명이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실패하기를 바라서 그동안 그토록 매섭게 비판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공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대통령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욱 착잡합니다.
집권 초기 그토록 당차고 재기발랄했던 사람, 관료들을 긴장시키며 국민에게 짜릿한 행정의 효능감을 보여주었던 사람이 지지율 하락 앞에서 의기소침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 한켠이 찡합니다.
그러나 안쓰럽다고 잘못을 잘했다고 말해줄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닙니다.
결단입니다.
지난 1년여 동안 무엇이 잘못됐는지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혁의 방향을 분명하게 밝히고,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을 다시 믿었으면 합니다.
저는 아직도 핵심 지지층의 신뢰를 되찾는다면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시 크게 회복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경제와 민생을 소홀히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정치적 방파제를 먼저 복원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방파제가 다시 굳건해져야 개혁도 할 수 있고 국정도 안정시킬 수 있으며, 계엄과 내란 사태로 흐트러진 국가의 일상을 법과 절차에 따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도 힘 있게 추진할 수 있습니다.
18일 기자회견에서 제가 듣고 싶은 것은 화려한 해명이 아닙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고치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행동으로 증명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이 정신을 차리기를 바랐지, 무너지기를 바란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다시 일어서십시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의 열망을 믿으십시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