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측은하다!'
오늘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대통령은 지지율이 왜 떨어졌는지 많이 고민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특정한 계기나 현안 때문인가 생각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합쳐 자신의 부족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배려가 부족했고, 섬세함이 부족했고, 소통이 부족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아픔과 반발을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애써 외면한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며, 결국 국민에 대한 존중심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돌아본다고 했습니다.
연임할 생각도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단순한 반성문으로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난 몇 달 동안 이 정권의 지지율을 무너뜨린 정치적 오판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대통령 자신도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고백처럼 들렸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김민석 대표와 무슨 밀약을 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연임을 염두에 두고 당권을 설계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법정이 아닙니다.
드러난 사실들을 연결하여 그 정치적 맥락을 묻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저는 그동안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 하락이 국정수행의 실패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경제가 무너졌습니까.
아닙니다.
6월 수출은 사상 처음 1,020억 달러를 넘어섰고 이후에도 7월 990억 달러, 8월 983억 달러 등, 기록적인 수출 흐름은 계속됐습니다.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 4만 달러 돌파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지지율은 오늘 37%까지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야당이 그 반사이익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한국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40%, 국민의힘은 27%였습니다.
그렇다면 물어야 합니다.
대통령을 떠난 사람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저는 그 가운데 상당수가 이재명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민주진보진영의 핵심 지지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경제성장률 몇 퍼센트 때문에 이재명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검찰개혁과 정치개혁을 요구했고, 지난 정부가 남긴 문제들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지지했던 정치세력이 내부의 권력투쟁 때문에 다시 갈라지는 모습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집권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당권을 둘러싼 갈등이 커졌고, 혁신당과의 통합 문제는 꼬였습니다. 조국을 둘러싼 갈등이 생겼으며 이제는 추미애와 박시영을 둘러싼 문제까지 새로운 전선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민석 대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이 김민석 한 사람에게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김민석이라는 정치적 현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이재명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판단은 과연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았는가.
저는 그것을 묻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대통령의 반성이 중요합니다.
만약 대통령이 지난 몇 달 동안의 정치적 선택 가운데 잘못된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반성은 말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잘못된 선택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그 선택으로 만들어진 정치구조 역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김민석 대표는 오늘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본 뒤 “대통령과 내내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대통령은 오늘 분열된 지지층을 향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친문도, 친노도, 친DJ도 모두 함께 민주주의와 개혁을 추구해 온 동지라며 서로에 대한 혐오와 멸칭을 멈추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집권당에서는 혁신당과의 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추미애 경기지사의 선거 컨설팅 문제까지 당 대표가 직접 들여다보겠다고 나섰습니다.
대통령은 통합을 말하는데 집권당에서는 또 다른 싸움거리가 만들어집니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저는 오늘의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지지율의 반등을 쉽게 낙관하지 못합니다.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지자 열 명을 데려오는 것보다 떠나간 지지자 열 명이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돌아오려는 사람들의 눈앞에 자신들이 떠났던 이유가 아직도 그대로 서 있다면 어떻게 돌아오겠습니까.
더 큰 문제는 시간이 대통령 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 국회 청문회에서는 대통령 주변 인물과 가족을 겨냥한 의혹 제기까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라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약해지면 야당의 공세는 더욱 집요해질 것입니다.
정치에서 레임덕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말이 이전처럼 먹히지 않기 시작하고, 관료들이 대통령보다 다음 권력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여당 정치인들이 저마다 자신의 살길을 찾아 움직이며, 무엇보다 대통령을 지켜주던 지지자들이 하나둘 침묵하기 시작할 때 레임덕의 그림자는 길어집니다.
그래서 지금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장 절실한 정치적 자산은 화려한 경제지표 하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강력하게 결집된 지지층입니다.
그런데 그 지지층이 돌아오는 데 장애가 되는 당내 갈등이 계속된다면 대통령 혼자 아무리 좋은 국정성과를 내더라도 그것이 정치적 동력으로 온전히 전환되기 어렵습니다.
저는 오늘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그 사실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답답했습니다.
문제를 깨달았다면 해법도 문제의 발생지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해법에는 대통령 혼자 결정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김민석입니다.
김민석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뒤로하고 대통령과 당의 통합을 위해 한발 물러설 수 있을까요.
저는 낙관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정치적 판단입니다. 그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는 앞으로 김민석 대표 자신의 행동이 증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오늘 대통령이 아무리 진솔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했더라도 내일부터 민주당 안에서 다시 조국을 공격하고, 추미애를 공격하고, 서로를 향해 총질하는 광경이 반복된다면 오늘의 기자회견은 며칠짜리 뉴스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은 오늘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봤습니다.
이제 집권당이 답할 차례입니다.
대통령이 손을 내밀었는데도 떠났던 지지자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말입니다.
어쩌면 이재명 대통령의 진짜 위기는 지지율 37%라는 숫자 자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자신은 이제 문제를 깨닫기 시작했는데, 그 문제를 함께 만들어온 정치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
저는 그것이 오늘 기자회견을 보고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뱀발(蛇足)
박현광 기자가 매불쇼에서 전한 바에 따르면, 이날 대통령을 지켜본 취재진 사이에서는 대통령이 ‘측은했다’는 심경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늘 자신에 찬 표정과 어조로 복잡한 현안을 쾌도난마처럼 풀어나가던 대통령의 모습은 이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웃음기를 지운 채 회견 내내 무거운 표정으로 서 있는 대통령을 바라보며 연민과 함께 우려가 밀려왔습니다.
이제부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약해졌다고 판단하면 야당은 대통령 주변에서 제기되는 갖가지 의혹을 국회와 언론의 무대로 끌어내려 할 것입니다. 정당한 검증은 당연히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의혹을 확대하고 정치적 약점을 공격하는 일 역시 거세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통령에게 매서운 비판을 가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오히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지지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비판한 이유는 대통령이 미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잘하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추구했던 개혁을 완수하고, 지난 정부에서 드러난 문제를 바로잡으며, 어렵게 출범시킨 정부를 성공시키라고 질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통령을 지지했던 시민들의 비판과, 대통령의 정치적 약화를 기회 삼아 공격하는 야당의 공세는 구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대통령도 그 차이를 알아야 하고 집권당 역시 알아야 합니다.
지지자들의 비판을 적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이 왜 떠났는지 듣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고치고, 다시 손을 잡아야 합니다.
대통령 역시 오늘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침울했던 표정을 털어내고 예전의 자신감과 추진력을 되찾아 국정을 쇄신해야 합니다. 인사가 잘못됐다면 고치고, 소통이 부족했다면 더 듣고, 개혁이 지체됐다면 국민에게 그 이유와 방향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집권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내부의 권력경쟁과 갈등이 국정동력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지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대통령은 오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습니다.
이제 대통령 주변과 집권당이 자신들의 부족함을 돌아볼 차례입니다.
대통령 혼자 반성한다고 정부가 다시 일어서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과 당, 그리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사람들이 다시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비로소 잃어버린 국정동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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