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사를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자주 대통령의 자식들이 역사의 본문에 등장합니다.
이승만에게는 친아들은 아니었지만 이기붕의 장남으로서 양자가 된 이강석이 있었습니다.
박정희에게는 박지만·박근혜·박근령이 있었고, 전두환에게는 전재국·전재용·전재만이 있었습니다. 노태우에게는 노재헌·노소영, 김영삼에게는 김현철, 김대중에게는 김홍일·김홍업·김홍걸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노무현에게는 노건호·노정연, 이명박에게는 이시형, 문재인에게는 문준용이 있었고, 지금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이동호를 비롯한 두 아들이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는 자녀가 없습니다.
이름들을 차례로 적어놓고 보니 마음이 묘해집니다.
물론 이들을 한 줄에 세워 모두 문제가 있었던 사람처럼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도 있고, 정치적·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던 사람도 있고, 단지 대통령의 자녀라는 이유로 혹독한 검증과 공격을 받은 경우도 있으며, 별다른 공적 문제 없이 살아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의 삶을 아버지의 성적표처럼 채점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닙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조금 다른 것입니다.
왜 대한민국에서 최고 권력자의 가족이라는 자리는 그토록 자주 권력과 논란의 접경지가 되었을까.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이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과연 자기 자신과 자기 집안을 먼저 얼마나 엄격하게 다스렸을까.
修身齊家, 그리고 그다음의 治國
옛사람들은 순서를 참 무섭게 정해 놓았습니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
천하부터 말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자신을 닦으라고 했습니다.
그다음 자기 집안을 가지런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야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논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또 하나의 옛말을 붙여보고 싶습니다.
得寵思辱.(득총사욕)
영광과 총애를 얻었을 때 그 뒤에 따라올 욕됨을 생각하라는 경계입니다.
남 앞에 나서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며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라면 더욱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권력을 얻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그 권력이 나를 어떻게 변하게 할 것인지, 내 배우자와 자식과 형제들을 어떻게 변하게 할 것인지부터 두려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혹을 견딜 수 있는가.
내 가족이 내 이름을 팔고 다니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내 자식이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신용장처럼 쓰려 한다면 단호하게 끊어낼 수 있는가.
내 형제가 내 권위를 등에 업고 공무원에게 전화한다면 남보다 더 엄하게 내칠 수 있는가.
그런 자기검열을 먼저 거친 뒤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들 때문에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2002년 차남 김홍업과 삼남 김홍걸 문제가 결국 구속으로 이어지자 김 대통령은 국민 앞에 직접 섰습니다.
그는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꼈다고 했고, 결국 자신의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국민에게 사과했습니다. 자식들은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받게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오래도록 착잡했습니다.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투옥되고, 연금되고, 망명하고, 죽음의 위협까지 받으며 살았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성장 과정 역시 평범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정치 때문에 가족이 감당해야 했던 두려움과 상처가 있었을 것이고, 아버지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로서의 미안함 때문에 자식에게 엄격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 모든 고난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자식들이 오히려 먼저 생각했어야 했던 것일까요.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살아 얻은 이름만큼은 내가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크다고 제가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결말이 너무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시장은 달랐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재명 대통령의 성남시장 시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2011년 성남시장 집무실 천장에는 CCTV가 달렸습니다.
그것도 시장 자신이 설치를 지시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 시장은 시장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귀엣말을 하고, 압력을 넣고, 돈 봉투를 건네려 하기 때문에 그것을 막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CCTV를 설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보도에는 한 민원인이 돈 봉투를 꺼냈다가 이 시장이 CCTV를 가리키자 다시 집어넣었다는 일화까지 나옵니다. 이후 논란이 있었지만 당시 설치 담당자는 2023년 해당 CCTV가 실제 작동하는 장비였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초기 보도와 달리 녹음 기능은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때의 이재명을 기억합니다.
‘나도 믿지 마라. 나를 감시하라.’
제가 받아들인 메시지는 그것이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결백을 말로 주장하는 대신 자기 머리 위에 카메라를 달아버린 것입니다.
더 인상적인 것은 친형 이재선 씨와의 갈등을 둘러싼 일이었습니다.
이재명 당시 시장은 훗날 그 갈등의 발단에 대해 친형이 ‘시장 친형’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시정과 인사에 관여하고 이권에 개입하려 했으며, 자신이 이를 차단하면서 관계가 악화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 과정에서 형수에게 폭언한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사과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재명 당시 시장 측의 설명입니다. 고 이재선 씨는 생전에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 시정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부인했습니다. 따라서 그 오래된 가족사를 어느 한쪽의 설명만으로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 시절 이재명이 대중에게 내세웠던 원칙은 매우 단호했습니다.
친인척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겠다.
내 주변에서부터 권력의 사유화를 막겠다.
그리고 나 자신도 감시받겠다.
그래서 저는 그 시절의 이재명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더 아쉽습니다
그 사람이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성남시장과 대통령의 권력은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시장실로 들어오던 돈 봉투를 경계해야 했던 사람이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권한과 가장 넓은 인사권을 가진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당연히 기대하게 됩니다.
성남시장 시절보다 열 배, 백 배 더 엄격해진 자기검열을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문득 묻게 됩니다.
그때 시장실 천장에 CCTV를 달던 그 추상같던 청렴과 투명의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대통령이 부패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게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반대입니다.
저는 그 시절 이재명이 보여주었던 자기통제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에 지금 대통령에게도 그와 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 높은 기준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기대와 오늘의 모습 사이에서 간혹 거리가 느껴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에게는 자신의 결백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배우자와 자식, 형제와 측근이 대통령의 이름을 이용할 수 없도록 제도와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의혹이 생겼을 때도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의심할 여지까지 줄이는 것이 권력자의 자기관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자식도 결국 자기 인생을 삽니다
그렇다고 자식의 허물을 무조건 부모에게 돌릴 생각은 없습니다.
성인이 된 자식은 독립된 인간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훌륭해도 자식이 잘못될 수 있고, 부모에게 허물이 많다고 자식까지 잘못되는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의 자식이라고 성인군자가 되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디까지가 부모의 책임이고 어디서부터 자식 자신의 책임인가.
저는 명쾌한 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에게는 보통 부모보다 한 가지 책임이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얻은 공적 권력이 가족에게 사적 권력으로 상속되지 않도록 막을 책임입니다.
돈을 물려주는 것과 권력을 물려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대통령의 이름은 돈보다 훨씬 강력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전화 한 통이 달라지고, 식당의 자리가 달라지고, 사업가의 태도가 달라지고, 공무원의 허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자기 가족에게 더 냉정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권력으로부터 떼어놓으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자식들을 훑어보고 나니
우리 현대사는 짧습니다.
대통령 숫자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역사에서 대통령 가족의 이름이 정치적 논란과 사법 사건에 등장한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의 구속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자녀들을 한데 묶어 손가락질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아쉽습니다.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대통령의 자식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평생 절제와 봉사로 감당하여 국민에게 널리 기억되는 사례가 왜 이토록 드문가 하는 아쉬움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대통령을 뽑을 때 너무 많은 것을 물으면서도 가장 오래된 질문 하나를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정책을 펼칠 것인가.
경제를 얼마나 성장시킬 것인가.
외교를 얼마나 잘할 것인가.
개혁을 얼마나 밀어붙일 것인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입니까.
그리고,
당신의 권력이 당신 가족의 권력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까.
修身 다음에 齊家가 있고 그 뒤에야 治國이 있다는 말은 봉건시대의 낡은 가족윤리가 아니라, 권력의 시작점에 관한 경고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
이 글을 쓰게 된 데에는 요즘 국회에서 벌어지는 풍경도 한몫했습니다.
대통령 아들의 이름이 다시 국회에서 등장했습니다.
9월 18일 특별감찰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야당 의원이 대통령 아들과 중국 국적 코인업자가 함께 찍었다는 사진을 제시하며 관련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반면 여당 의원은 그 사진이 과거 특정 매체에서 공개한 것이라며 문제 제기의 신빙성을 반박했습니다. 현재로서는 국회에서 의혹과 반론이 맞서고 있는 사안이지, 의혹이 사실로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의 골프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야당 중진들과 골프 회동을 제안했고 실제 일부 중진들과 골프 회동을 가진 사실은 보도됐습니다. 다만 제가 확인한 신뢰할 만한 자료만으로는 대통령 가족이 특별경호 속에 특정 골프장을 이용했다는 별도의 주장을 사실로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의혹은 의혹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말했다고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언론에 보도됐다고 진실로 확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런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도 대통령 가족의 이름이 또다시 정치권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가족사를 처음부터 한번 훑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끝내 이런 씁쓸한 질문 하나가 남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자기 가족에게는 더욱 엄격한 통치자를 가질 팔자가 정녕 못 되는 것인가.
성남시장실 천장에 스스로 CCTV를 달았던 그 사람이 지금 대통령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직 기대를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대통령 자신이 그 시절의 이재명에게 한번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대통령에게 요구했을 기준을 지키고 있는가.”
제가 대통령의 자식들을 한 사람씩 되짚어본 까닭은 누구의 자식을 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이미 대통령이 된 사람에게 다시 한번 이 오래된 아홉 글자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천하를 걱정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나라를 다스리기 전에 가장 가까운 곳부터 바로 세우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권력의 정상에 오른 순간에는 한마디를 더 새겨두었으면 합니다.
得寵思辱.
영광이 가장 클 때,
그 영광으로 인해 자신과 가족이 입게 될 욕됨을 먼저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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