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 한동훈에게 댓거리하다가 관종이 된 김민석

 


          시어머니 욕하다 시어머니를 닮았다

                           ― 대통령까지 내려온 SNS 조리돌림 정치

요즘 민주진보진영의 SNS를 들여다보다 보면 가끔 섬뜩할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그토록 혐오했던 풍경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름을 비틀어 멸칭을 만들고, 생각이 다르면 배신자로 몰고, 여러 사람을 한 묶음으로 엮어 조리돌림합니다. 논리로 반박하기보다 별명을 붙이고, 별명 하나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합니다.

‘문조털래유’.

문재인·조국·김어준·정청래·유시민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만든 말입니다.

이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최한욱이라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처음에는 ‘문조털래’였고 나중에 유시민의 ‘유’가 붙었습니다. 최한욱 본인은 비하하려고 만든 말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정치 공간에서 이 말은 점차 이들을 하나의 정치적 집단처럼 묶어 공격하고 조롱하는 언어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털천지’, ‘멍청래’ 같은 표현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를 따지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습니까?

과거 민주진보진영 사람들이 일베를 비판했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문화 아니었습니까.

사람을 논리로 상대하지 않고 조롱으로 무너뜨리는 문화, 상대의 이름을 비틀어 멸칭을 만들고 집단적으로 소비하는 문화, 한 사람을 표적으로 정하면 수많은 사람이 몰려가 조리돌림하는 문화.

그것을 그렇게 혐오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똑같은 방법으로 자기 진영 안의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시어머니 욕하면서 시어머니 닮는다더니, 혹시 우리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이것을 곧바로 “일베가 민주진보진영에 침투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더 무서운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베가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베식 정치문화의 문법을 스스로 배운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쓰던 무기를 빼앗아 상대에게 휘두르다 보니 어느새 말투도 닮고, 사고방식도 닮고, 사람을 적과 동지로 나누는 방법까지 닮아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대통령까지 나선 ‘멸칭 정치’ 중단

급기야 이 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지지자들에게 누군가를 멸칭하거나 혐오하고 증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친문이고 친노이며 친김대중이고 이재명의 동지들이라고.

저는 그 말을 반갑게 들었습니다.

대통령도 이제 민주진보진영 내부에서 벌어지는 적대와 증오의 언어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통령이 X에서 한 지지자의 글을 자신의 계정으로 옮겼습니다.

그 글은 대통령의 개혁 성과를 죽 정리한 칭찬글이었습니다.

대통령은 거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위로가 많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글을 쓴 계정의 과거 게시물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정에서는 과거 ‘문조털래유’, ‘털천지의 유실물’, ‘멍청래’ 같은 표현들이 사용됐던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습니다. 이후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까지 이 일을 자신의 SNS에서 거론하며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몇 시간 전 기자회견에서 멸칭과 혐오를 그만두자고 했던 대통령이 공교롭게도 바로 그런 언어를 사용해 온 계정의 글을 공유한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반드시 구분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그 사람의 과거 글을 알고 공유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대통령 역시 나중에 누군가의 글 하나를 인용하면서 작성자의 과거 게시물까지 모두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저 역시 대통령이 ‘문조털래유’라는 표현에 동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오히려 다른 의문이 남았습니다.

대통령은 왜 그 글을 굳이 자신의 계정으로 옮겼을까요?

그것도 자신의 업적을 정리하여 칭찬한 이름 모를 지지자의 글을 말입니다.

대통령은 무엇이 그리 외로웠던 것일까

이 대목에서 저는 조금 씁쓸해집니다.

대통령은 무엇이 그리 외로웠던 것일까요.

자신의 개혁 성과를 하나하나 정리해 준 이름 모를 지지자의 글에서 “위로”를 받아야 할 만큼 말입니다.

대통령도 대통령 이전에 희로애락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이긴 합니다.

칭찬받으면 기분 좋고, 비판받으면 속상할 것입니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마음이 무겁고, 자신이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는데 국민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끼면 서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인간적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SNS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인 이재명과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입니다.

개인 이재명의 클릭 한 번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정치적 메시지가 됩니다.

평범한 사람이 이름 모를 누군가의 게시물을 공유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대통령이 공유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언론이 들여다봅니다. 정치권이 반응합니다. 글쓴이의 과거가 뒤집힙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가 무엇이었느냐는 해석이 붙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게시물은 삭제됐고, 대통령은 다시 장문의 글을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지자들에게 “여러분이 바로 이재명이고 여러분이 바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대통령 자신에게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대통령 역시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김민석 대표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며칠 전 저는 김민석 대표의 SNS에 댓글 하나를 달았습니다.

한동훈 의원이 거친 표현으로 김민석 대표를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이빨을 뽑겠다’느니 하는, 정치 지도자의 언어라고 보기 민망한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김민석 대표가 직접 자신의 SNS를 통해 맞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영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한동훈이 어그로와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데 왜 거대 여당 대표가 개인적으로 상대해 주느냐고.

당에는 대변인이 있고 공보 조직이 있습니다. 허위사실이면 바로잡고, 정치적 공격이면 당의 공식 논평으로 대응하고, 법을 위반했으면 법적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그런데 집권여당 대표가 직접 SNS 링 위로 내려가 한동훈과 말싸움을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동훈이 다시 맞글을 올리면 또 대꾸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실제로 다시 한동훈의 반격이 이어졌습니다. 한동훈은 그야말로 울고싶은데 뺨을 때려준 것이니까요.

그러면 대한민국 정치가 거대 여당 대표와 야당 정치인의 SNS 설전으로 쪼그라듭니다.

한 사람은 더 자극적인 말을 찾고, 다른 사람은 그것보다 더 강한 말을 찾습니다.

그리고 언론은 정책이 아니라 누가 무슨 욕을 했는지를 기사로 씁니다.

정치는 사라지고 구경거리만 남습니다.

왜 지도자들이 자꾸 댓글의 링으로 내려오는가

저는 한동훈 개인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먼저 심한 말을 했느냐를 따지자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이것입니다.

왜 이 나라 정치의 윗사람들이 자꾸 SNS의 링으로 직접 내려옵니까?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실이 있습니다.

집권여당 대표에게는 당의 대변인과 공보 조직이 있습니다.

국가와 정당이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도자의 감정과 국가의 판단을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통령이 화났다고 대통령실이 화를 내서는 안 되고, 당대표가 기분 나쁘다고 집권여당 전체가 말싸움에 뛰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 지도자는 모든 싸움에 참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싸움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판단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SNS 정치에서는 그것이 거꾸로 됩니다.

누군가 도발합니다.

지도자가 직접 대꾸합니다.

상대가 더 심한 말을 합니다.

지지자들이 몰려듭니다.

멸칭이 만들어집니다.

짤이 만들어집니다.

조리돌림이 시작됩니다.

조회수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두가 그것을 정치라고 착각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그렇게 미워했던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우리는 왜 일베 문화를 그렇게 싫어했습니까.

보수라서 싫었던 것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언어, 상대를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리는 집단문화, 사실과 논리보다 혐오와 멸칭이 앞서는 정치문화를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우리가 하면 괜찮은 것입니까.

‘우리 편’이 상대를 조리돌림하면 정의이고, ‘저쪽 편’이 우리를 조리돌림하면 혐오입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혐오는 사용하는 사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혐오가 되었다 정의가 되었다 하지 않습니다.

멸칭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재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책과 행적을 비판하면 됩니다.

조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의 주장과 정치적 선택을 비판하면 됩니다.

김어준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말하면 됩니다.

정청래와 유시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을 한 글자씩 잘라 한 묶음으로 만들고 조롱하는 순간 토론은 끝납니다.

남는 것은 부족 정치뿐입니다.

대통령의 말이 대통령에게도 적용되기를

이번 논란 뒤 이재명 대통령은 좋은 말을 했습니다.

폭언과 비아냥, 멸칭과 혐오 대신 사실과 애정에 기반한 합리적 비판과 품격 있는 설득을 해달라는 취지였습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더욱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 원칙을 지지자들에게만 요구하지 마십시오.

대통령 자신에게도 적용해 주십시오.

그리고 집권여당 지도부에도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SNS에서 누군가 대통령을 칭찬한다고 대통령이 일일이 화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 당대표에게 막말한다고 당대표가 직접 맞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의 언어가 있어야 하고, 집권여당 대표에게는 집권여당 대표의 언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권위주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무게를 알기 때문에 말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를 욕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내가 그 시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더라는 옛말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 민주진보진영도 한번 거울을 들여다볼 때가 됐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혐오했던 정치문화와 싸우다가 어느새 그 문화의 말투와 습관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거울은 지지자들만 볼 것이 아닙니다.

유튜버도 봐야 하고, 정치인도 봐야 하고, 당대표도 봐야 합니다.

대통령도 봐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품격은 상대가 품격 있을 때만 지키는 예절이 아닙니다.

상대가 아무리 천박한 언어로 도발하더라도 그 언어의 자리까지 내려가지 않는 것.

저는 그것이 지도자의 품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긴 글을 마치며 사족(蛇足) 하나를 달려 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그동안 사용하던 개인 휴대전화의 전원을 껐고, 퇴임한 뒤 다시 켜 미처 읽지 못했던 취임 축하 메시지에 뒤늦게 답장을 보내 지인을 감동시켰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제가 그 이야기에서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공과 사 사이에는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개인의 희로애락마저 온전히 개인의 것으로만 남겨두기 어려운 자리일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이 클수록 절제도 커야 하고, 말의 영향력이 클수록 말수는 오히려 신중해야 합니다.

지금 청와대에서도 그 엄격한 공사 구분이 지켜지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것이 오늘 긴 글 끝에 붙이는 저의 사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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