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놈이 내 꿈에서 차를 몰고 달아나고 있었다
도둑놈도 가지가지다.
어떤 놈은 내 생일에 찾아와 차를 털어 생일선물을 대신하더니, 어떤 놈은 차를 통째로 가져가 뼈다귀만 남겨놓았다. 그런데 이번 놈은 방문 경로부터 남달랐다.
꿈속으로 먼저 찾아왔다.
꿈속에서 내 차를 끌고 가기에 화들짝 깨어 뛰쳐나갔더니, 그놈이 정말로 내 차를 몰고 달아나고 있었다.
꿈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문턱을 도둑놈과 내가 나란히 넘은 셈이다. 놈은 차를 타고, 나는 맨발로.
그 기막힌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플러싱으로 이사 간 사연부터 조금 풀어야겠다.
처음 뉴욕에 와서 둥지를 튼 곳은 잭슨하이츠와 엘머스트 일대였다.
그 시절에는 그곳에도 한국 사람 사는 냄새가 제법 났다. 태진아가 운영하던 진아패션이라는 옷가게가 있었고, 윤석화 씨의 언니도 살았다. 윤석화 씨가 형님이 운영하던 동양식품점에 이따금 들르기도 했다. 훗날 가수가 된 강수지도 데뷔 전 어린 시절 그 동네에 살았다.
서울에서는 먼발치에서도 보기 어려울 법한 사람들이 이민 동네에서는 누구네 가게 손님이고 누구네 이웃이었다. 바다를 건너오니 세상이 오히려 작아진 구석도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 사람들의 살림이 조금씩 펴지면서 이삿짐이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플러싱으로, 형편이 더 나아진 사람들은 롱아일랜드로.
사람이 먼저 가고 간판이 뒤따랐는지, 간판이 먼저 가고 사람이 따라붙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한국 사람들이 움직이는 곳에는 식품점이 생기고 식당이 들어서고, 마침내 영어를 몰라도 하루쯤은 너끈히 살아낼 동네가 만들어졌다.
내 기억 속 그 무렵 플러싱은 아직 헐렁했다.
7번 전철 종점에 메이시백화점이 있었고, 울워스였던가 싶은 큰 점포가 기억난다. 한국 가게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눈에는 나머지가 휑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동네 약속 장소의 기준점이 된 유니온상가도 그때는 이제 막 공사를 마치고 가게 몇 개만 들어와 있을 때였다.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신시가지였던 셈이다.
그곳으로 한국 사람들이 몰려가 한인타운을 일구었다. 셔터를 올리고, 불을 밝히고, 없는 장사를 만들어냈다. 내게는 그 시절이 플러싱의 한인 개척시대처럼 기억된다.
그런데 장사는 한국인들이 해도 건물 주인은 중국인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한두 번 리스를 갱신할 무렵 즈음, 중국인들은 임대료를 몽땅 올려 한인들을 내쫓다시피 하고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떼놈이 번다는 옛말 그대로였다. 전철 종점의 한적한 동네를 사람이 북적거리는 핫플레이스로 한국인들이 특유의 근면함으로 일궈놓으니 중국인들이 인해전술로 쳐들어온 셈이었다.
한인들은 돈을 벌면 좋은 차와 집을 먼저 장만했고, 중국인들은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여럿이 돈을 모아 건물부터 샀다.
코리안 커뮤니티와 차이니스 커뮤니티의 경제관념 차이가 경제력 차이로 나타나는 교과서적 현상이 거기서 발현된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나 역시 한국 사람들의 이주 행렬을 따라 플러싱으로 옮긴 대목에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엘머스트에서 도둑님들이 보내준 그 요란한 ‘생일선물’까지 받고 나니 정나미가 떨어졌다.
동네라도 바꾸면 좀 낫겠거니 했다.
그러나 내가 주소를 바꾼다고 도둑 운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1992년쯤, 봄으로 기억한다.
일이 잘됐다.
냉장고가 고장 났다, 워킹박스가 말을 안 듣는다, 여기 좀 먼저 와달라. 거래처가 늘어나면서 하루에 고장신고가 다섯 건 이상 밀릴 때도 있었다. 몸 하나를 두고 여기저기서 잡아당기는 형국이었다.
벌이도 좋았다. 그때는 하루 벌어 웬만한 중고차 한 대쯤 사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물론 돈이 잘 벌린다고 몸이 두 개가 되지는 않는다. 냉장고는 내 사정을 봐가며 고장 나주는 물건도 아니었다.
그날은 집에서 북쪽에 위치해 있는 슈퍼마켓의 워킹박스를 고친 뒤 남쪽에 위치한 브루클린으로 가야 했다.
그쪽에서도 오전 중에 처리해달라고 재촉해둔 일이 있었다.
북쪽 일을 끝내고 내려오는데 길목에 우리 집이 나타났다, 하필이면…….
봄볕 때문이었는지 몸이 나른했다. 이왕 집 앞을 지나는 것, 이른 점심이나 먹고 가자 싶었다.
오전 열 시 반쯤이었으니 점심으로는 좀 빨랐지만, 현장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끼니라는 것도 시간이 날 때나 먹을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집에 잠깐 들러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는 것도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드라이브웨이에 포드밴을 세웠다.
나는 어디에 주차하든 나갈 방향으로 차 머리를 잡아놓는다. 나중에 후진하며 목을 빼고 두리번거릴 필요 없이 곧장 나가려고 그러는 것이다.
그날도 그렇게 세웠다.
내가 편하자고 들인 습관이 그날은 도둑놈의 편의를 도운 셈이 됐다.
밴 안에는 온갖 연장이 실려 있었다. 냉동 공구, 전기 공구, 배관 공구에 목공구까지. 가게 신설공사를 막 끝낸 참이라 짐칸이 꽉 차 있었다.
차 안 가득 실린 공구값만 당시 돈으로 어림잡아 2만~3만 달러는 됐을 것이다.
그중 값나가는 연장은 쓰레드머신(threading machine: 쇠파이프 나사 깎는 절삭기)이었다.
남들이 보면 낡은 중고밴이었겠지만, 내게는 바퀴 달린 밥줄이었다. 어느 가게에서 무엇이 고장 났다고 부르든, 그 차를 몰고 가 짐칸을 열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문도 잠갔다.
도둑놈에게는 찬물 마시기보다 쉽다는 그 문을, 주인인 나는 꼬박꼬박 잠갔다.
집에는 나 혼자였다.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켠 뒤 거실 소파에 앉았다. 배가 차니 졸음이 빈자리를 찾아 들어왔다. 잠깐 앉아 쉬려던 몸이 소파에 붙었다.
소파에서 드라이브웨이까지는 직선으로 약 30피트였다. 문 하나 열고 나가면 차가 있었다.
그 가까운 곳에 내 밥줄을 세워두고 잠깐 눈을 붙였다.
얼마나 졸았는지는 모르겠다.
꿈속에서 어떤 놈이 내 차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서서 그것을 보고 있었는지, 어떻게 그곳까지 나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꿈이라는 것이 본래 앞뒤 설명 없이 사람을 한복판에 세워놓지 않는가.
놈이 액셀을 밟았다.
내 차가 움직였다.
“안 돼!”
눈이 번쩍 뜨였다.
벌떡 일어나 소리를 냅다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꿈이었구나 안도할 틈도, 설마 하며 생각을 가다듬을 틈도 없었다. 너무 생생해서 몸이 먼저 움직였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차가 나가고 있었다.
내 포드밴이.......
방금 꿈에서 본 것처럼, .......
드라이브웨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맨발로 달렸다.
차는 찻길로 접어들기 전에 잠깐 주춤했다. 옆에서 오는 차를 살폈던 것일까. 놈이 무엇 때문에 머뭇거렸는지는 모르지만, 그 짧은 사이에 나는 차 뒤까지 따라붙었다.
뒷문 손잡이가 손에 잡힐 만한 거리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았다.
그때 백미러 속에서 놈이 나를 보았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히스패닉으로 보였다는 것만 기억난다. 옷이 무슨 색인지, 나이가 몇인지, 그런 것을 살필 여유가 어디 있었겠는가.
놈이 액셀을 밟았다.
차가 툭 튀어나갔다.
내 손이 닿을 듯하던 손잡이가 멀어졌다.
몸이 앞으로 쏠려 있는 상태에서 차가 급히 속도를 높이자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도둑놈 잡아라!”
나는 계속 뛰었다.
“도둑놈 잡아라!”
뉴욕 길바닥에서 한국말로 고함을 질렀다. 그 길에는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네일가게도, 식품점도, 만두가게도 있었다. 누군가 듣고 저놈 좀 붙잡아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다들 제 일로 바빴다. 남의 고함 한 번에 가게 문을 열고 뛰어나올 만큼 한가한 동네가 아니었다.
내 고함이 내 차를 뒤쫓았다.
나는 그 고함을 따라 또 뛰었다.
두 블록 가까이 쫓았지만 사람의 맨발이 자동차 바퀴를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놈은 신호도 무시하고 달아났다.
마침내 차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뛰던 걸음을 멈추었다.
조금 전까지 손에 잡힐 듯하던 것이 이제는 눈에도 잡히지 않았다.
꿈에서 잃은 차를 현실에 나와서 또 잃었다. 짧은 사이에 같은 차를 두 번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내 팔자는 어째서 이런가.
차가 없어진 길을 바라보는데, 허망하다는 말 말고는 달리 붙일 말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은 맨발이었다.
쫓아갈 때도 맨발이었지만, 돌아올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알았다. 발바닥이 얼얼했다. 달려갈 때는 도로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돌아올 때는 발밑의 자잘한 것들이 제 존재를 알려왔다.
집에 와 발을 씻었다.
작은 돌에 찍힌 자리가 붉은 반점으로 남아 있었다. 살이 까지거나 찢어진 것은 아니었다. 발은 그만하길 다행이었으나, 그날 내가 잃은 것들은 물로 씻고 끝낼 수가 없었다.
브루클린 거래처부터 전화를 했다.
“사장님, 차를 도둑맞았습니다. 도난신고도 해야 하고, 오늘은 못 움직이겠습니다. 양해 좀 구합니다.”
오전에 와달라던 집에 전화를 걸어, 오늘은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차가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연장이 하나도 없었다. 몸만 간들 무슨 수리를 하겠는가. 고장 난 냉장고 앞에서 나도 같이 한숨이나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109경찰서로 걸어갔다. 집에서 20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경찰은 도둑 얼굴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신고에 필요한 몇 마디가 오갔고, 서류 사본을 하나 내주었다.
그들에게는 특별할 것이 없는 차량 도난신고였다.
내가 맨발로 얼마나 쫓았는지, 손잡이에서 손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그 차 안에 내 일이 얼마나 많이 실려 있었는지는 신고서가 궁금해하는 사항이 아니었다.
얼마쯤 기다려도 차가 나타나지 않으면 폐차 신고를 하라는 안내도 받았다. 한 달쯤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 기간은 이제 가물가물하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 포드밴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중고차에 책임보험만 들어두었으니 도난 보상은 없었다.
차를 다시 사는 돈도, 연장을 다시 채우는 돈도 내 주머니에서 나와야 했다.
그래도 마냥 주머니만 뒤집어보며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고장 난 거래처의 냉장고는 여전히 고장 나 있었고, 밀린 일은 밀린 채였다.
중고차가 싸다는 곳으로 찾아가 셰비 밴을 샀다.
그리고 공구를 사러 다녔다. 냉동 자재상에서 냉동 공구를 사고, 전기 자재상에서 전기 공구를 사고, 배관 자재상에서 배관 공구를 샀다.
도둑놈은 한 번에 가져갔지만, 나는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다시 사야 했다.
가지고 있던 돈을 털어 당장 필요한 기본 공구부터 갖추었다. 나머지는 일을 하면서 하나씩 채우기로 했다.
사흘째부터 다시 현장으로 뛰었다.
차를 한두 번 털리고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고, 도둑맞는 데 이골이 난다는 말도 우습긴 하지만 속을 끓인다고 놈이 차를 돌려줄 리는 없었다.
그나마 일이 잘될 때였다. 가서 고쳐주고 돈을 벌면 됐다.
차도 바꿨겠다, 다시 잘해보자. 이번에는 단속을 제대로 해서 도둑놈에게 좋은 일 시키지 말자.
그렇게 마음을 추슬렀다.
빈 연장 자리는 일하면서 채우고, 상한 기분은 바쁘게 움직이며 털어냈다. 기왕 다시 나서는 길, 얼굴까지 구기고 다닐 것은 없었다.
세월이 흐르니 차값도 공구값도 이제는 아득한 옛날돈이 되었다.
그러나 그날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던 순간만은 아직도 낡지 않았다.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잠결에 시동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냐고.
모른다.
길가의 집이었으니 자동차 소리는 늘 들렸고, 그날도 누군가 차를 몰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소리가 아니다.
꿈이다.
너무도 선명한 꿈.
어떤 놈이 내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아 달아나던 꿈.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문밖에서 정말로 내 차가 사라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것을 현몽이라 생각한다.
남더러 믿으라 할 생각은 없다.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생각보다 많고,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가끔은 그 꿈에게 따지고 싶어진다.
기왕 알려줄 생각이었다면 조금만 더 일찍 깨워주지 그랬느냐고.
신발 신을 시간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차 문짝 손잡이를 움켜쥘 시간.
딱 그만큼만 더 주었어도 되지 않았느냐고.
이제 와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꿈은 도둑이 오는 것까지는 알려주었지만, 도둑을 잡는 법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맨발로 두 블록을 뛰었고, 포드밴 한 대와 그 안에 실려 있던 밥벌이 연장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세상을 배우게 되었다.
도둑은 문을 잠갔다고 포기하지 않고,
팔자는 동네를 옮겼다고 달라지지 않으며,
먹고사는 일은 무너진 자리에서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사람은 살아간다.
차를 잃으면 차를 다시 사고,
연장을 잃으면 연장을 다시 모은다.
속이 상해도 거래처 냉장고는 기다려주지 않고,
억울해도 내 대신 일해줄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다음 날도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이민자의 삶이었고, 그 시절 내 삶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월이 흐른 지금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잃어버린 차가 아니다.
맨발이다.
꿈을 믿을 틈도 없이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던 맨발.
손에 잡힐 듯 멀어지던 차를 향해 아스팔트를 달리던 맨발.
결국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고 터벅터벅 돌아오던 맨발.
어쩌면 그날 내가 잃어버린 것은 차가 아니라 안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얻은 것은,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훗날 나는 같은 드라이브웨이에서 또 다른 도둑을 기다리게 된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도둑을 잡겠다고 작은 말티즈 한 마리까지 데리고 차 안에서 밤을 새웠다.
돌이켜 보면 도둑놈과 나 사이에도 질긴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다음 이야기의 제목은 아마 이쯤 될 것이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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