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챌린지

 


   대통령에게 실망했다고 개혁까지 버릴 수는 없다
— 겸공과 매불쇼에 ‘개혁챌린지’를 제안한다

나는 최근 세 편의 글을 써놓고도 블로그에 올리지 못했다.
한 편을 다듬고 나면 또 다른 일이 터졌다. 어제의 질문은 오늘의 해명에 밀렸고, 그 해명에 대한 반박을 적는 사이 새로운 인사와 발언이 앞질러 갔다. 글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제 그 초안들은 접으려 한다. 문장을 더 고쳐서 될 일이 아니라, 내가 던져야 할 질문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왜 이러는가.


한동안 나는 그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 지금은 다른 질문이 더 절박하다.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의 개혁 의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10월 2일 중대범죄수사청 개청식이 열렸다. 김지용 후보자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지명을 거두는 대신 인사청문 절차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대통령의 속뜻을 헤아리고 선의를 찾아내는 데 더는 마음을 쏟고 싶지 않아졌다.


잘해주기를 바라던 마음이, 제발 나라를 또 탄핵의 격랑으로 몰고 가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쪼그라들었다. 기대가 얼마나 초라해졌는지 나 자신도 서글프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대통령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우리가 막아냈던 권력의 퇴행까지 다시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검찰개혁 논쟁을 지켜보며 답답했던 것은 시간만이 아니었다. 보완수사권을 둘러싼 말들이 오가는 동안, 지지자들이 기대한 개혁과 정부가 실제로 추진하는 개혁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설명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어졌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그러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나왔다. 유시민은 그 발언에서 자신이 이해해 온 개혁 목표와의 단절을 읽었고, 청와대는 대통령의 뜻을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나는 그 공방을 보면서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됐다.


우리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고 믿었던 시간 동안, 정말 같은 지도를 보고 있었던 것인가.
기관의 간판을 바꾸고 조직을 나누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지자들이 바란 검찰개혁은 그보다 깊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한없이 조심스럽고, 찍힌 사람에게는 끝없이 가혹한 수사, 잘못을 저질러도 좀처럼 책임지지 않는 권한, 퇴직 뒤까지 이어지는 특권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개혁의 성적표는 결국 그 자리에서 매겨져야 한다.


김지용 인사는 그 불신에 불을 붙였다.


박은정과 김용민, 추미애 등이 문제를 제기한 인사를 끝내 유지하는 과정을 보면서, 내게는 후보자 개인의 친윤·반윤 여부보다 대통령의 태도가 더 크게 다가왔다. 윤석열 정부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설명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새 수사기관을 맡길 적임자라는 답이 되는가. 개혁 방향에 대한 우려와 과거 행적에 관한 질문에는 그에 맞는 설명이 필요하다.


정작 지지자들이 따져 묻는 것은 사람의 이력과 개혁의 원칙인데, 그 질문이 검사 출신을 무조건 배척하는 주장으로 처리된다면 대화는 엇나갈 수밖에 없다.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 권한을 왜 그렇게 쓰는지 묻는 것이다.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에게 그 정도 질문도 하지 못한다면, 지지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 위에 SNS 논란이 겹쳤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두려움과 겸손함이 줄어들었다고 돌아봤다. 더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후의 SNS 대응을 보며 나는 그 약속과 태도 사이의 간극을 느꼈다. 지지자들을 멸칭으로 공격해 온 계정의 글을 인용한 일에 우려가 제기됐지만, 돌아온 설명은 인용이 그 사람의 모든 과거 발언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말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계정에 소개됐다는 사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권위를, 그에게 공격받아 온 사람에게는 모욕감을 보탤 수 있다는 점을 왜 충분히 헤아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새벽 몇 시에 글을 썼느냐보다 아픈 것은, 그 글을 읽으며 느끼는 거리다. 나와 함께 개혁을 바라보던 대통령이 어느새 나를 설득하기보다 내 질문을 물리치려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리.


대통령이 실제로 화가 났는지, 어떤 속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받은 정치적 인상은 분명하다. 함께 문제를 풀자는 손길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되묻는 얼굴이 먼저 보였다.


대통령과 지지자 사이의 신뢰가 이렇게 닳아가는 동안, 개혁은 어디에 서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난처해진다. 대통령을 계속 두둔하자니 내 판단을 속이는 것 같고, 등을 돌리자니 그 빈자리를 차지할 세력이 두렵다. 기권하고 돌아앉는다고 마음이 편해질 것도 아니다.


그렇게 지지자들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 보이는 틈을 타 내란세력, 윤어게인 무리들의 발호가 가관이 아니다. 영화 '암살자(들)'의 개봉에 맞추어 온갖 별점테러나 악플 도배로 제작자나 출연배우들에게 위해를 가하고 있다.


심지어는 국힘대표 장동혁은 허위사실 까지 입에 올리며 종영을 강요하고있고, 주진우의원은 유해진배우를 대놓고 북한사람 같다는 관상평까지 들먹이며 괴롭히고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사회적 반동은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지지자들이 갈팡질팡하는 현상과 맞물려 있음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라도 각성하여 내란을 가능하게 했던 정치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된다.


이 막막함을 이용해 계속 참으라고만 할 수는 없다. 다른 선택지가 마땅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지자의 인내를 무한정 꺼내 쓸 수는 없다. 지지자는 선거 때 불러 모으고, 선거가 끝나면 말을 줄여야 하는 동원 인력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참여의 자리가 필요하다.


나는 그 가능성을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과 ‘매불쇼’에서 생각해 본다. 두 매체가 완전해서가 아니다. 나 역시 모든 발언과 해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언론의 보도만으로는 풀리지 않던 의문을 붙잡고, 당사자와 전문가의 설명을 길게 듣고, 흩어진 사건들의 맥락을 토론하는 데 두 방송이 해온 역할을 나는 크게 평가한다. 지쳐 있던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도록 만든 힘도 있었다.


그 힘을 이제 다음 단계에 써보면 어떨까.
잘못된 정치를 비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 함께 만들고 그 결과까지 지켜보는 프로그램 말이다. 

이름은 우선 **‘개혁챌린지’**라고 붙여보자.

매주 당면한 개혁 과제 하나를 정한다. 검찰개혁이면 검찰개혁, 언론개혁이면 언론개혁이라고 크게 써놓고 각자의 소신만 늘어놓는 자리는 곤란하다. 시청자가 자신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질문을 잡아야 한다.


잘못된 수사로 인생이 무너진 사람이 국가의 책임을 묻기까지 왜 이토록 오래 걸리는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 뒤 사건이 지연되거나 책임을 떠넘기는 일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언론이 의혹을 대서특필한 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을 때, 정정도 처음 기사만큼 독자에게 도달하게 할 방법은 없는가.


이런 질문 하나에 정치인과 전문가가 각자의 해법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재미도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정치 강의를 듣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자기 해법을 설명하게 하고, 진행자는 추상적인 말이 나오면 붙잡아 되묻는다. 돈은 얼마나 드는가. 누가 반대할 것인가. 부작용은 무엇인가. 지금 법으로 가능한가. 당신은 이번 주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출연자가 쉽게 대답할 질문만 골라주는 방송이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 편하게 자기 말만 하고 돌아가는 자리는 이미 차고 넘친다. 시청자가 묻고 싶었으나 물을 기회가 없었던 질문을 대신 끝까지 물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회다.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했다면 공개했는지, 법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면 어디까지 했는지, 이해당사자를 만나겠다고 했다면 무엇을 듣고 왔는지를 확인한다. 막혔다면 어디서 왜 막혔는지 밝힌다. 잘못된 제안이었다면 고치게 한다.

그 과정이야말로 볼거리가 될 수 있다. 호언장담한 사람이 허점을 인정하고 더 나은 답을 가져오는 모습, 말수는 적었던 사람이 약속한 일을 해내는 모습, 서로 다투던 사람들이 실제로 합의안을 만들어내는 모습. 정치에서 오래 보지 못해 더 보고 싶은 장면들이다.

시청자도 박수만 치는 관객으로 남겨두지 말자. 질문을 보내고, 자료를 검증하고, 자신의 경험을 들려줄 수 있게 하자. 방송이 잘못 설명한 부분을 찾아낸 사람도 환영해야 한다. 참여가 특정인을 향한 집단 공격으로 변하지 않도록 운영 원칙을 분명히 세우되, 불편한 질문을 지우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몇 달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사람이 보일 것이다.

누가 구호만 앞세우는지, 누가 어려운 문제 앞에서 공부하는지, 누가 반론을 견디는지, 누가 다른 사람과 일을 해내는지. 우리는 선거철의 포장된 얼굴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 속에서 새로운 구심체가 나타날 수 있다.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는 여러 사람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누구를 띄우겠다고 정해놓을 필요는 없다. 진행자의 친분이나 시청자 팬덤이 평가를 독점하지 않도록 출연 기회와 검증 기준도 공개해야 한다.

새로운 중심은 누가 점지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일을 통해 신뢰를 얻어야 한다.

물론 방송 몇 회로 개혁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법을 만드는 국회와 집행하는 정부의 책임을 방송이 대신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요구를 선명하게 만들고, 책임질 사람을 찾아 묻고, 약속이 잊히지 않게 하는 일은 할 수 있다. 흩어진 시민의 관심이 이어지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일도 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우리 지지자들은 이제 대통령의 말 한마디마다 희망을 찾고, 다음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일을 그만 당하고 싶다. 그렇다고 검찰개혁과 언론개혁까지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 우리가 그 개혁을 바라게 된 사연은 한 정치인의 등장보다 오래됐고, 그 필요는 한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의 선거를 기다리는 시간도 달력에서 날짜만 지워가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라는 개혁을 구체화하고, 함께 일할 사람을 알아보고, 그들이 한 일을 기억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겸공과 매불쇼에 제안한다.


우리의 분노가 매일의 댓글 속에서 소진되지 않도록, 실망한 사람들이 냉소만 남긴 채 흩어지지 않도록, 함께 해볼 일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누군가를 응원하라는 말에 앞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려 했는지 다시 묻는 자리를 열어주었으면 한다.


대통령에게 맡겼던 기대를 거두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바라던 나라를 위해 할 일은 남아 있어야 한다.

너무도 엉터리였고 형편없었던 사람이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게 우리를 욕보였던 지난 정권 후예들에게 다시 또 나라를 넘길 수 없다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그 일을 다시 찾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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