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 반명 싸움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민주당
— 불가역을 장담하기 전에, 개혁을 지킬 사람부터 붙들어라
나는 보수 유튜브를 여간해서는 보지 않는다.
억지 논리를 듣고 있으면 반박할 말을 찾기도 전에 속부터 뒤집힌다. 내 정신건강을 지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창을 닫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쪽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민주진보진영이 검찰개혁을 놓고 이렇게 갈라져 싸우는 모습을 상대편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래서 정관용과 조갑제가 나누는 대담을 보았다.
10월 3일 KBS 《정관용의 시사본부》에 출연한 조갑제는 2028년 국민의 선택으로 다수당이 되면 이번 개편을 완전히 되돌려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어 이런 말이 나왔다.
“그러니까 검찰을 다시 원위치하는 게 제일 좋아요.”
나는 더 듣지 못하고 창을 닫았다.
대통령은 불가역을 말하는데, 저쪽은 원위치를 말한다.
우리는 개혁이 제대로 된 것이냐고 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데, 저들은 의석을 되찾아 뒤집을 날을 계산하고 있다.
이 두 문장을 나란히 놓고도 마음이 편할 수 있는가.
불가역은 대통령이 힘주어 발음한다고 성립하는 주문이 아니다. 다음 권력이 되돌리려 할 때 막아낼 제도, 국민이 지켜야겠다고 생각할 성과, 그 성과를 지키기 위해 다시 참여할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법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그 법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개혁을 지킬 사람들의 마음부터 무너뜨리면서 무엇이 불가역이라는 말인가.
나는 대통령이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바로 그래서 속이 끓는다.
잘되든 말든 상관없는 정부라면 이토록 오래 붙들고 묻지 않았을 것이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또 흘려보낼까 봐, 검찰의 간판만 바뀌고 권한을 휘두르는 습관은 살아남을까 봐, 다음 권력이 그 조직을 다시 손에 넣을까 봐 묻는 것이다.
그런데 김지용 초대 중수청장 후보자를 둘러싼 해명을 듣고 있으면 질문과 답변이 서로 다른 길을 달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혁기관의 첫 수장으로 적합하냐고 물었더니, 알고 보니 반윤이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윤석열 장모 사건에 재기수사를 명령했고, 윤석열 정부에서 보직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반윤이면 개혁주의자인가.
윤석열 개인과 거리가 있으면 검찰권의 남용을 막을 사람이라는 보증서가 발급되는가.
최은순 사건은 재기수사 뒤 다시 불기소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김지용이 무엇을 지시했고 어떤 판단을 했는지까지 설명해야 한다. 재기수사 명령이라는 앞부분만 내밀고 마지막 처분은 접어두어서는 그 경력의 의미를 판단할 수 없다. 반대로 불기소 결과만으로 처음부터 면죄부를 주려 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니 기록을 놓고 검증하자는 것이다.
정진웅 독직폭행 사건과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의 기소 판단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이 남는다. 정진웅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차규근·이광철·이규원 역시 무죄를 확정받았다. 김지용이 지휘·결재선에서 어떤 의견을 냈고 어떤 결정을 승인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정진웅 기소에 반대했다는 해명이 사실이라면 그것도 당시 기록으로 밝히면 된다.
한동훈 휴대전화 포렌식 문제도 마찬가지다. 추미애는 김지용이 포렌식 신청을 거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김지용 측은 관여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신청과 예산 집행, 결재 기록으로 가릴 문제다. 부인하는 말 한마디가 검증의 종착역일 수는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의 속마음이 아니다. 권한을 가졌을 때 무엇을 했는가다.
검찰 복원을 주장하는 세력이 힘을 얻었을 때, 이 사람이 수사·기소 분리의 원칙을 지키려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할 경력과 공개적인 입장이 있는가. 초대 수장을 임명하는 쪽이라면 적어도 그 근거를 설명해야 한다.
임명권자의 확신은 국민의 검증을 대신하지 못한다.
더 답답한 것은 민주당의 태도다.
대통령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원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이름으로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 대통령의 뜻을 되풀이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판단일 수는 없다.
우려하는 당원에게는 과격하다고 하고, 인선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정작 의문을 풀어줄 자료는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신뢰를 얻겠다는 것인가.
당대표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 밖에서 개혁을 되돌리겠다는 말이 나오면 안에서는 개혁을 지킬 힘을 모아야 한다. 비판하는 사람을 밀어내는 데 익숙해진 지도부가 실망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겠는가.
김민석 대표에게는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전당대회에서 제기한 ‘반명·분열주의·신천지 3자 비밀연합’의 근거는 무엇인가.
당권을 다투는 자리에서 당의 핵심 배후를 겨냥한 주장이라면, 선거가 끝났다고 설명 책임도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신천지가 정치에 개입한 전력이 있다는 일반론과 특정 세력들이 비밀연합을 했다는 주장은 다르다. 누가 누구와 무엇을 공모했다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
근거가 있다면 제시하라. 없다면 철회하고 사과하라. 허위임을 알면서 당권을 얻는 데 이용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동료들을 향해 던진 의혹을 해명하지 않은 채 단합을 요구하면, 그 단합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대표의 성과를 몇 사람을 징계하고 내보냈는지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실망한 당원을 얼마나 다시 참여하게 했는지, 갈라진 사람들 사이에 어떤 공동의 목표를 세웠는지로 평가하고 싶다. 방송에서 질문에 답하는 친절함도 좋지만, 그 질문 때문에 무엇이 바뀌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기둥뿌리는 썩어 가는데 방 안의 박수 소리만 듣고 있어서는 집을 지킬 수 없다.
그렇다고 나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돌아앉을 수는 없다.
대통령에게 더 호소할 힘이 소진됐다는 것과 개혁을 포기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보수의 검찰 복원론을 듣고 나니 오히려 질문이 달라졌다.
우리는 누구에게 다시 기대야 하는가.
나는 당원과 시민에게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 때 표를 보태고, 필요할 때 후원하고, 일이 틀어지면 단합하라는 말을 듣는 역할만으로는 사람들의 열의를 되살릴 수 없다. 당의 방향을 결정하고 후보를 선택할 권한이 실제로 있어야 한다.
‘공천권을 당원에게’라는 요구가 필요한 이유다.
다만 마지막 투표만 당원에게 맡기고 지도부가 경선에 나갈 사람을 마음대로 잘라낸다면 그것은 당원 주권의 흉내다. 후보 배제 기준과 사유를 공개하고, 이의를 제기할 독립적인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 단수공천과 전략공천에는 엄격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선거 직전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규칙을 바꾸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필요한 부분은 당헌·당규를 고쳐서라도 보장해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현역들도 당원의 평가를 피할 수 없다는 경험이 있었다. 그 힘이 이번에는 누구의 충성도를 가리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개된 발언과 표결, 법안 발의와 공약 이행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대통령의 뜻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자기 책임을 피한 의원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그 설명을 평가할 경선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당원은 지도부의 동원명부가 아니다. 의원의 공천 보험료도 아니다.
그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지도부라면 지도부가 바뀌어야 한다.
사람을 모으는 일과 함께, 다시 모일 이유도 만들어야 한다.
나는 겸공과 매불쇼에 제안했던 ‘개혁챌린지’를 그런 장으로 만들고 싶다. 분노를 쏟아내고 다음 날 또 분노하는 데서 끝나지 말고, 과제 하나를 정해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묻고 그 뒤를 확인하는 것이다.
시민이 제안하고, 정치인이 답하고, 현장에서 확인하고, 다음 방송에서 결과를 보여주자. 지키지 못한 약속에는 이유를 묻고, 이뤄낸 변화에는 제대로 박수를 보내자. 출연 한 번으로 책임이 끝나는 방송이어서는 안 된다.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마음을 깨뜨리는 데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열변보다,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를 움직였다는 경험이다.
조국혁신당과의 관계도 미룰 일이 아니다. 합당을 포함해 공동의 개혁 과제와 공천 원칙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양당 당원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의석 계산만 앞세운 통합으로 또 다른 상처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분열을 방치하는 무책임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위성정당 문제를 막을 선거제도 개선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소수 의견을 대표하는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살리되, 의석을 얻기 위해 별도 정당을 세우는 편법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상대의 편법만 비난하고 우리 편의 편법에는 눈을 감는 정치로는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이 모든 일을 오늘 당장 완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작할 수는 있다. 사람들을 붙들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다.
나는 다음 총선의 패배가 이미 정해졌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은 지금처럼 해도 된다는 위로가 아니다. 아직 바꿀 시간이 있다는 경고다.
대승적으로 가자는 말로 비판하는 사람의 입을 막지 말라. 개혁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충성심부터 증명하라고 하지 말라. 그 사람들의 지친 마음속에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
대통령에게 실망했다고 그 나라까지 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민주진보세력이 다시 집권할 이유를 지금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편이니까 한 번 더 맡기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완수할 것인지, 어떤 잘못을 고쳤고 누구에게 권한을 돌려주었는지로 답해야 한다.
보수는 검찰을 원위치시키겠다고 말한다.
민주당은 무엇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인가.
우선 당원을 당의 주인 자리로 돌려놓아라. 비판을 설명과 토론의 자리로 돌려놓아라. 지도부를 책임의 자리로 돌려놓아라.
불가역적 개혁을 장담하기 전에, 그 개혁을 끝까지 지킬 사람부터 붙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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