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회고록(回顧錄) - 도둑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

 


   내 품에서 곤히 잠들었다가 볼기를 맞은 메롱이

1993년, 내 나이 마흔이었다.

불혹(不惑)이라 했던가.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는데, 그해 나는 흔들릴 틈도 없이 바빴다.

어쩌다 보니 일감이 늘었고, 어쩌다 보니 내 이름을 내건 방송 프로그램 진행까지 맡게 되었다. 먹고사는 일 위에 방송이 얹히니 '하루'는 손가락 사이로 물 빠지듯 흘렀고, 돌아보니 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연말이 가까울 무렵 작은 공사 하나가 들어왔다. 목돈을 쥘 일은 아니었으나 연말연시를 조금은 넉넉히 날 만했다. 

일하는 동안이야 몸이 고되지만, 일거리가 생기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들뜨는 것이 그 시절 내 심정이었다.

이번 연말엔 한숨 좀 돌리겠구나 했는데, 그 안도의 한숨은 나보다 도둑들이 먼저 챙겼다.

주인에게는 공사를, 내게는 도둑을 기다리는 며칠

그때 살던 집은, 드라이브웨이에 세워둔 밴을 통째로 도둑맞았던 바로 그 집이었다. 

그 집에 세를 든 데에는 차고를 쓸 수 있다는 조건이 컸다. 본채에 달아내어 지은 차고였는데, 차 두 대를 넣고도 자리가 남았다. 자재를 쌓고 연장을 들이기에 그만한 데가 없었다.

공사를 하다 보면 자재가 남는다. 공사를 거듭할수록 쌓이는 자재를 보관할 데가 마땅치 않던 차에, 널찍한 차고까지 쓸 수 있다기에 세를 든 집이었다. 그런데 몇 해 동안 남은 자재를 하나둘 쌓아두다 보니 정작 차를 넣을 자리가 없어졌다. 차는 드라이브웨이로 밀려나고, 차고는 자재와 연장을 보관하는 창고가 되었다.

남들에게 차고는 차를 재우는 곳이겠지만 내게는 일감을 벼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 차고는 어느새 내 살림에서 가장 든든한 구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작으나마 짭짤한 공사를 맡게 되어 자재와 연장을 살피러 들어간 날이었다.

뒷벽 한 귀퉁이가 눈에 걸렸다. 벽돌 한두 장이 깨져 있었고, 몇 장은 반쯤 빠져나와 있었다.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니 세월에 절로 금이 간 자국이 아니었다. 무언가로 내리친 상처였다.

집주인을 불렀다. 이리저리 살펴본 주인은 누가 뒤뜰로 들어와 벽을 허물려 한 것 같다고 했다. 철판을 덧대야겠으니 며칠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주인에게는 공사를 기다리는 며칠이었지만, 내게는 도둑을 기다리는 며칠이었다.

벽돌을 쳐보고 벽이 깨지는 것까지 확인하고 간 놈이 다시 오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철판 댈 날까지 얌전히 기다려줄 위인들이었다면 애초에 남의 차고 벽을 두드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밴째로 한 번 털려본 나로선 그 깨진 벽돌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방에 누워도 마음은 차고 뒤편 어둠 속에 가 있을 게 뻔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지키기로 했다.

덩치는 내가 맡고, 귀는 메롱이가 맡는다

외출할 때 타던 링컨 타운카를 차고 앞에 바짝 대고 그 안에서 자면 될 일이었다. 도둑이 벽을 건드리든 문을 건드리든, 코앞에 누운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물론 나 하나만 믿은 것은 아니었다.

메롱이가 있었다.

집에서 키우던 조그만 말티즈였다. 이름은 메롱이었지만 하는 짓은 여간 영특한 게 아니었다. 재주가 일곱 가지나 되었고, 말귀가 밝았고, 재롱이 넘쳤다.

무엇보다 남의 일에 관심이 지대했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 하나만 지나가도 짖어댔다. 우리 집에 올 사람인지 제 갈 길 가는 사람인지 따져볼 것도 없이 일단 목청부터 높이고 봤다. 조용히 하라고 야단도 쳐보고, 제발 좀 가만있으라고 사정도 해봤다.

그런 녀석을 품에 안고 차에서 잔다?

내 딴에는 귀신도 감탄할 아이디어다  싶었다.

덩치는 내가 맡고, 귀는 메롱이가 맡는다. 

제아무리 수완 좋은 도둑님이라도 오늘 밤만큼은 꼼짝 마라일 거였다. 평소엔 성가시기만 하던 메롱이의 그 참견이 그날따라 그렇게 믿음직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메롱이를 옆에 두고 타운카 안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

초소인 줄 알았더니 숙소였다

눈을 뜨니 차고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내가 밤새 지키고 있던, 바로 그 차고였다.

잠이 덜 깼나 싶어 눈을 비볐지만 문은 틀림없이 열려 있었다. 허둥지둥 차에서 내려 안으로 뛰어들었다.

값나가는 연장만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쓸어 간 것도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값어치 있는 것들만 골라 챙겼다. 남의 연장을 알아보는 안목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안목으로 제 연장을 장만해 제 일을 한다면 좀 좋을까.

나는 바로 코앞, 차 안에서 잤다.

메롱이도 함께 잤다.

도둑은 그 앞에서 제 볼일을 다 보고 유유히 떠났다. 아마 개랑 나랑 곤하게 잠든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터지려는 입을 틀어막고 잽싸게 도망쳤으리라. 그 와중에도 배꼽을 잡았을 듯싶다.

도둑을 지키려던 초소가 하룻밤 새 사람과 개가 곤히 자는 숙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가 막혀 차를 돌아보니 메롱이가 꼬리를 치고 있었다. 아침에 주인을 보니 반가웠던 모양이다. 녀석에게는 그저 새날이 밝았을 뿐이고, 나는 여전히 반가운 주인일 뿐이었으니까.

그 꼬리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평소엔 지나가는 사람 하나 그냥 보내지 않던 녀석이, 제 집 차고를 털어 가는 놈은 어찌하여 곱게 보내주었단 말인가. 재주가 일곱 가지면 무엇 하나. 그날 밤엔 딱 한 가지만 해주면 되었는데.

짖는 것.

그것 하나면 되었는데.

도둑은 보내주고, 주인은 고자질하고

속이 뒤집힌 나는 메롱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냅다 한 대 갈겼다. 녀석이 금방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깨갱거리자, 방에서 자던 마누라가 놀라 뛰쳐나왔다. 2층에 살던 같은 성당 자매님도 놀란 눈을 비비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새 도둑이 연장을 들고 나갈 때는 쥐 죽은 듯 잠잠하던 녀석이, 아침에는 그 작은 몸뚱이로 온 동네에 대고 주인이 저를 때렸다고 고자질을 해대고 있었다.

마누라도 활짝 열린 차고와 텅 빈 그 안을 보고는 망연자실했다.

털린 차고 앞에 나는 우두커니 서 있고, 마누라는 말문이 막혔고, 메롱이는 깨갱거렸다. 넉넉한 연말을 꿈꾸던 마음이 그 아침 한꺼번에 구겨져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메롱이도 억울했을 것이다. 뜬금없이 차에서 재운다고 제가 그날 밤 보초를 서야 한다는 사정을 어찌 알았겠는가. 

주인 곁에서 달게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난데없이 엉덩이에 곤장을 맞은 셈이었으니......

그러나 그때는 그런 헤아림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차고는 비었고, 당장 손에 쥘 연장이 사라졌는데, 나는 믿고 데리고 나온 개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 속이라는 게 그렇게 우스운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날 밤의 침묵만은 알 수가 없다.

말귀 밝고 재롱 많던 녀석이었다. 발자국 소리에도 짖던 메롱이가 바로 코앞에서 차고가 털리는 동안 어째서 한 번도 짖지 않았는지. 도둑이 얼마나 숨죽여 움직였는지, 메롱이가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이제 와서는 물어볼 데도 없다.

나 역시 세상모르고 잤으니 메롱이만 탓할 처지는 아니었다. 다만 나는 연장을 잃었고, 녀석은 아침에도 꼬리를 칠 수 있다는 게 그날따라 그렇게 야속했다.

문득 웬 야바위 무당의 말까지 떠올랐다. 서른아홉이니 아홉수를 조심하라던 소리였다. 

말 같잖아서 듣고도 흘려버렸던 말인데, 속이 상하면 그런 말까지 새삼스럽게 되살아나는 모양이다.

도둑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더니.

재주 일곱 가지에 말귀까지 밝던 우리 메롱이도, 하필 그날 밤에는 짖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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