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역설: 대한민국 경제는 순항 중인데, 왜 원화는 똥값'일까?
국뽕에 취한 일상
이란전쟁이 한창이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불구경하듯 할 수만도 없다. 치솟는 기름값이 당장 우리 모두의 현안인 까닭이다.
그런 와중에도 즐길 꺼리는 있다.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사간 대공미사일 천궁의 명중률이 96%에 달한다는 소식에 한국인들의 국뽕은 이제 차고 넘치고 있다. 수출문의가 각국으로 부터 쇄도하는 중이다.
우리가 '국뽕'에 취한 지는 꽤 오래 된다. '한류' 열풍으로 시작된 국뽕은 BTS를 거쳐 아카데미를 휩쓴 케이팝데몬헌터스(KPop Demon Hunters)에서 멈추지 않는다. 단군성조 이래로 이같은 태평성대가 또 있었는가 싶다.
수출은 7천억불을 넘겼고, 무역수지 흑자는 지속되고 있다. 땅덩어리는 세계에서 109번째 크기를 가진 나라가 야무져도 너무 야무지다.
'오사리잡놈' 같은 나랏님이 들어서 한 번 휘청거리긴 했지만, 야물딱진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잡녀르 뻘짓' 조차 주저앉힌 저력을 가진 민족답게 나랏님 바꾸니 증시마저 고공행진이다. 오늘은 지수가 6500을 넘나든단다.
여기 까지만 읽으면 맛나게 구운 굴비를 침넘어 가게 삼키는 중이다. 그런데 그만 가시가 목에 걸렸다.
목에 걸린 가시 - '똥값' 환율
모든 경제 지표가 천정을 모르고 치솟는데 왜 한국의 원화는 가치가 '똥값'일까? 곰곰히 되새겨 볼 필요가 있겠다.
한국 경제의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수출은 꾸준히 늘고 무역수지는 14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외환보유액도 세계 9위를 지키며, 실업률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그런데도 환율은 널뛰기를 한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 왜 원화는 자꾸만 밀리는 걸까?
기축통화 - 달러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환율이 무엇을 반영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환율은 한국 경제만 보지 않는다. 환율은 두 나라의 상대적인 힘을 반영한다. 한국이 아무리 선전해도 달러가 더 강해지면 원화는 밀릴 수밖에 없다.
미국이 금리를 높게 유지하는 동안 전 세계 자금은 달러로 몰린다. 안전하고, 이자도 두둑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불안감이 커질 때마다 투자자들이 달러를 찾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달러는 단순한 통화가 아니라 기축통화, 세계의 안전자산이다.
여기에 한국 내부의 구조적 요인이 겹친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다. 국민연금은 수 백조 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면서 해외 자산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해외에 투자한다는 것은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산다는 뜻이다.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거대한 기금이 꾸준히 달러를 사들이고 있는 셈이다. 총액이 1,300조원-거의 1조 달러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것이 환율을 끌어올리는 구조적 압력이 된다.
서학개미들과 원-엔 동조
서학개미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다. 엔비디아, 테슬라, S&P500 ETF.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미국 주식 시장으로 대거 몰려들면서 달러 수요는 꾸준히 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 경제가 좋을수록 이 현상이 강해진다는 점이다. 가계 여유 자금이 늘고, 그 돈이 미국 시장으로 향하고, 달러 수요가 올라가고, 결국 원화는 약해진다.
그 규모가 1,700억 달러(250조 원)을 상회한다. 외환보유액이 4,236억 달러인 점과 비교를 해보면 얼마나 그 규모가 큰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겠다. 잘살수록 자국 통화가 약해지는 역설이기도 하다.
마지막 퍼즐 조각은 원-엔 동조화다.
원화와 엔화는 오랫동안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두 나라가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비슷한 수출 품목을 두고 경쟁하는 데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과 일본을 같은 ‘아시아 수출 경제권’으로 묶어서 보기 때문이다. 엔화가 약해지면 원화도 덩달아 약해지는 구조다.
여기에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효과까지 더해진다. 글로벌 거대 자본들이 일본의 초저금리를 이용해 엔을 빌려 한국 등 신흥국에 투자했던 자금이, 엔 강세 신호만 나와도 한국 시장을 떠나 엔화 상환에 나선다. 엔화가 흔들리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 일본이 금리 인상 기조로 돌아서면서 이 동조화는 다소 느슨해지는 추세지만, 큰 충격이 올 때면 여전히 두 통화는 같이 흔들린다.
경제 순항의 역설
결국 이런저런 정황을 살펴보면 원화 약세는 한국 경제의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달러 중심의 세계 통화 질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 국민연금과 개인투자자의 구조적 달러 수요, 그리고 엔화와 얽힌 아시아 통화 역학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다. 우리가 더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돈이 해외로 나가고, 그 돈이 원화를 팔아 달러를 산다.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돈은 이익이 큰 쪽으로 움직이는 건 당연하니까. 다만,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하면 돈을 손에 움켜쥔 채로 파산을 당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고환율의 덕택으로 수출이 잘되면 국가경제는 더욱 성장한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도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수입물가는 또 시장물가를 올리기 마련이고 서민들의 장바구니는 점점 더 훌쭉해진다.
한편에서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게 되는 아수라장,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환율이 만드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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