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을 살기 위해 주기적으로 보톡스를 맞던 여자의 최후

 

타인으로 살기

길에서 주운 신분증 하나가 한 여자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바꾸려다 들통이 났지요. 주인공은 멀쩡한 성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주운 신분증의 주인은 자신보다 무려 15살이나 어린 사회 초년생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머, 주인 찾아줘야지" 하고 끝날 일입니다. 하지만 이 여자는 달랐습니다. 머릿속에 위험한 불이 번쩍 켜진 겁니다. 그렇게 남의 신분증으로 15살 어린 인생을 가로채려는 황당하고도 무모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화장 전후가 다른 거 아시잖아요?"

'견물생심'이라 했던가요. 처음엔 남의 신분증으로 휴대폰을 개설해봤는데, 어라? 이게 됩니다. 자신감이 붙은 그녀는 급기야 은행 창구까지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돈을 다루는 곳의 눈길은 매서웠습니다. 창구 직원의 싸늘한 질문이 날아왔습니다.

"본인 맞으세요?"

​아뿔싸, 미처 대비하지 못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했습니다.

"원래 여자들은 화장했을 때랑 안 했을 때랑 얼굴이 다르잖아요!

보톡스 시술로 둔갑시킨 삶

뾰루퉁하게 찡그린 얼굴로 위기를 모면한 그날, 그녀의 간은 더 부어올랐습니다. 이왕 타인의 인생을 살 거라면 더 철저해져야겠다고 결심한 것이죠. 그때부터 그녀는 '보톡스'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시술을 받을 때마다 그녀에겐 철칙이 있었습니다. 보름 동안 두문불출하는 것. 붓기가 빠지고 '회춘'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일체 외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범죄라는 것을 알수록 그녀는 거울 속 젊어지는 얼굴에 더 집착했습니다. 이웃들은 그저 조용한 사람인가 보다 했겠지만, 실상은 집 안에서 "좀 더 어려졌나?"를 확인하며 뒤틀린 희열을 느꼈을 겁니다.

 결국 이 연극은 막을 내렸습니다. 보톡스가 세월은 늦출 수 있어도 늘어가는 피해자와 수사망까지 막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세상만사 결국 '사필귀정'인 법입니다.

 보톡스를 넘어 줄기세포의 시대로

​나이 들기 싫은 마음, 우리 중에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서인지 요즘 안티에이징 시장은 무섭게 커지고 있습니다. 보톡스가 이미 일상이 된 지금,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끝판왕'이라 불리는 줄기세포 시술로 향하고 있습니다.

 줄기세포 시술은 쉽게 말해 내 몸의 혈액이나 지방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다시 몸에 넣어주는 방식입니다. 줄기세포가 스스로 손상된 부위를 찾아가 회복을 돕는 이른바 '호밍 효과(Homing Effect)'를 노리는 것이죠.

 피부 탄력은 물론 만성 피로와 면역력 개선까지 도와준다고 하니, 리프팅 레이저로도 만족하지 못한 분들이 마지막에 선택하곤 합니다. 유명 셀럽들이 입소문을 따라 시술을 받으려 원정을 다닌다는 소문이 돌 정도이니 그 열풍이 짐작 가시지요?

 , 여기서 냉정해져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시중의 '줄기세포 주사' 중 상당수는 실제 줄기세포가 아주 소량이거나 추출물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적의 회춘'을 기대하기보다는 피부 회복을 돕는 보조적 수단으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가격 또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니, 광고에 혹하기 전 꼼꼼히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심심해서 죽지 않기 위해 '웃을 일'을 만드는 숙명

​의술의 발달은 보톡스를 거쳐 줄기세포를 이용해 젊어지는 것을 넘어 이제 죽음을 극복하려는 단계까지 닿아 있습니다. 가당한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미 우리는 '100세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재미없이 100년을 사는 것은 형벌이라 투덜대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구에 닥쳐올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숙명이 하나 주어졌습니다. 바로 '심심해서 죽지 않기 위해, 죽어라고 웃을 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흔해빠진 범죄영화의 클리셰

​다시 그 여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보름씩 집에 틀어박혀 거울을 보던 그녀의 마음을 떠올려 봅니다. 범죄는 비난받아 마땅하나, 젊어진 자신의 모습에 쾌재를 불렀을 그 마음만은 짐작이 갑니다.

어쩌면 그녀는 거울 속 젊어진 얼굴을 보며 자신의 죄의식까지 자연스럽게 지워버렸던 게 아닐까요?

거대한 산업이 된 안티에이징의 물결 속에서, 그 혜택을 남을 속이는 데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신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노아의 방주'를 내리실지도 모릅니다.

겉모습을 젊게 만드는 보톡스보다, 우리 삶을 진짜 웃게 만드는 에너지가 더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문득 한국의 범죄 또는 느와르 장르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던 삽화가 떠오릅니다.

삐뚤빼뚤 큼지막하게 벽에 써놓은 글씨,

차카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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