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30 달러 시대를 맞이할 뉴욕....... 준비는?

노던 블러바드의 새벽

노던 블러바드의 새벽

뉴욕의 최저임금 30달러 시대가 불러올 풍경

이른 아침, 해가 채 뜨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나와 있었다. 퀸즈 노던 블러바드 길가에 삼삼오오 모여 선 남자들 — 대부분 히스패닉, 간간이 어리숙한 표정의 한국인 — 이 지나가는 밴트럭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말이 필요 없는 거래였다. 트럭이 서면 흥정이 시작됐고, 흥정이 끝나면 짐칸에 올라탔다. 그게 전부였다.

새벽 노던 블러바드에서 사다리를 실은 밴트럭 곁으로 몰려드는 이민 일용직 노동자들
새벽의 노던 블러바드. 하루 일을 기다리던 이민 노동자들의 풍경.

헬퍼는 하루 60달러였다. 연장 이름만 알면 80달러.

“해머 줘봐.”
“드라이버.”

이 정도만 알아들어도 20달러가 더 붙었다.

혼자 뭔가를 소화할 수 있는 기술자라면 흥정 테이블이 달랐다. 150달러에서 250달러. 1 베드룸 아파트 렌트비가 800~1,000불이던 때였으니 당시로선 나쁘지 않은 돈이었다.

나는 그 시절 전기, 냉동, 플러밍, 목공 일을 하는 건축설비 회사를 운영했다. 새벽마다 노던 블러바드를 훑으며 그날 필요한 손을 골랐다. 영어 한 마디 못해도 일만 되면 그만이었고, 국적도 서류도 묻지 않았다. 자고나면 가게가 한집 건너 하나씩 새로 생길 때여서 일은 넘쳐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당시 한인사회가 일구던 뉴욕시내의 건설판이었다.


변호사들이 나타났던 시절

그러다 어느 날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히스패닉 일꾼들 사이에 낯선 얼굴들이 끼어들었다. 양복은 아니지만 일하러 나온 것도 아닌, 묘하게 말이 많은 사람들.

노동법 변호사들이었다.

그들은 초과근무 수당이니 고용 조건이니 하는 말을 흘리고 다녔고, 어느 순간부터 연장 이름도 모르는 초보 헬퍼도 100달러 아래론 차에 못 타게 막아섰다.

트럭이 서면 일꾼 대신 변호사가 먼저 다가오는 꼴이 됐다. 인력시장은 서서히 식어갔다.

노동법과 초과근무 수당을 설명하는 사람이 이민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안내하는 장면
노동법, 초과근무 수당, 고용 조건. 현장에는 새로운 말들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연변 출신 조선족들이었다.

말이 통했고 눈치도 빨랐다. 히스패닉보다 싸게 받았고, 변호사 타령도 없었다. 한동안은 잘 굴러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일을 배운 조선족들이 하나둘 독립하면서 단가를 후려쳤고, 시장이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90년대 중반, 나는 그 판을 접었다.


삼십 년 후의 뉴욕

그로부터 삼십 년이 지났다.

지금 뉴욕 시의회에는 2030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간당 30달러로 올리는 법안이 올라와 있다. 일당으로 치면 240불이다.

정치권은 이것을 “생활 임금”이라고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맨해튼에서 혼자 먹고 사는 데 드는 생활임금이 이미 30달러를 넘어섰으니까. 브루클린도, 퀸즈도 머지않다.

그런데 숫자가 현실이 되는 순간, 풍경은 어떻게 바뀔까.

세탁소의 계산기

플러싱 메인스트리트의 세탁소 주인을 생각해보자.

부부가 새벽 여섯 시에 나와 밤 아홉 시까지 돌린다. 직원 한 명을 쓴다. 지금도 빠듯하다.

시간당 30달러면 그 직원 한 명의 연간 인건비가 6만 달러를 넘는다. 4대 보험과 유급휴가까지 얹으면 7만 달러에 육박한다.

세탁소 순이익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답은 뻔하다. 직원을 내보내고 부부가 더 오래 일하거나, 아니면 문을 닫거나.

플러싱의 작은 세탁소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민자 부부 삽화
한 명의 직원도 부담스러운 시대. 계산기는 냉정하다.

잭슨하이츠의 콜롬비아 식당도 마찬가지다.

주방 두 명, 홀 한 명으로 돌아가는 가게. 30달러 시대가 오면 인건비만 한 달에 2만 달러가 넘는다. 메뉴 가격을 올려야 한다.

런치 스페셜이 20달러가 된다. 단골들이 떠난다. 악순환이 시작된다.

자동화는 이미 시작됐다

패스트푸드는 더 냉정하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은 이미 준비가 돼 있다.

키오스크는 진작에 들어섰고, 주방 자동화 설비 투자는 임금 인상 논의가 시작된 순간부터 가속됐다.

30달러가 법제화되는 날, 그들에게 필요한 건 더 적은 사람이다.

해고되는 건 정작 그 임금 인상의 수혜자가 됐어야 할 사람들이다.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와 자동화 주방 삽화
임금 인상 논의가 커질수록, 자동화의 속도도 함께 빨라진다.

그리고 가장 조용히, 가장 깊이 타격받는 곳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코리아타운 뒷골목의 네일샵, 선셋파크의 중국 식품점, 브롱크스의 보데가.

주인이 직접 카운터에 서고, 가족이 교대로 일하고, 그렇게 버텨온 가게들.

이 가게들에게 30달러 최저임금은 선택지를 두 개로 줄인다.

가족노동으로 버티거나, 폐업하거나.

폐업한 자리엔 무엇이 들어오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체인점이 들어온다. 스타벅스, 체이스 뱅크, CVS. 동네의 결이 바뀐다.

저임금 일자리는 사라졌지만, 그 동네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가게도 함께 사라진다.

노던 블러바드에서 이미 봤던 풍경

임금을 올리자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17달러로 1베드룸 렌트비가 2,000불을 넘어선 지금 뉴욕에서 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속도와 구조다.

시장이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바닥을 올려버리면, 바닥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먼저 떨어진다.

내가 노던 블러바드에서 목격한 것도 결국 그것이었다.

좋은 의도로 설계된 제도가 보호하려던 바로 그 사람들의 일자리를 지워버리는 아이러니.

뉴욕 이민자 상점가의 폐업한 가게와 새벽 거리 삽화
임금은 올라야 한다. 그러나 일터가 사라지면, 그 임금은 누구의 것이 되는가.
30달러 시대는 올 것이다. 그러마고 약속을 했던 후보, 맘다니가 시장이 됐으니까.

문제는 그것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는 30달러가 될 것인지, 아니면 그 누군가가 서 있던 자리마저 없애버리는 30달러가 될 것인지다.

그 질문에 지금 뉴욕이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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