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 열닷냥 — 무게는?
엽전 열닷냥 - 원화로 환산해 보면
대장군 잘 있거라 / 다시 보마 고향산천 / 과거보러 한양 천리 / 떠나가는 나그네의 내 낭군 알성급제 / 천 번 만 번 빌고 빌며 / 청노새 안장 위에 실어주던 / 아아아아 엽전 열닷냥 —
1955년에 태어난 노래다.
일제의 발굽 아래 36년을 신음하다 막 해방이 됐다 싶더니 동족이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이 터졌고, 한핏줄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하리만치 철천지 원수들 처럼 3년을 싸우고 나서야 총성이 멎었다.
그러나 멎은 건 총성뿐이었다. 3년 내리 줄초상이던 세상 뒤끝엔 흉년에 돌림병에 민초들의 통곡이 끊일 새가 없었다.
그 질곡과 시름 위에서 빠른 박자의 흥겨운 멜로디 하나가 홀연 세상에 나타났으니, 노랫말이 조선 시대 배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노래를 자기 이야기처럼 따라 불렀다.
이 노래는 1955년 도미도레코드에서 발매됐는데, 발표 당시 같은 음반 뒷면에 황정자의 '오동동 타령'이 함께 실려 있었다.
두 곡 모두 흥과 신명을 돋우는 멜러디로 하여금 시름에 겨웠던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엽전 열닷냥'은 특유의 경쾌함 덕에 침울했던 시절의 숨통을 잠시나마 트이게 했었다.
오늘 같은 태평성대에 딱히 그런 노래를 찾아 부를 사람이 있을까마는, 수 년전 부터 옛 가요를 모티브로 한 TV 프로그램 탓에 어쩌다 보면 이 노래도 한 두번 쯤은 모두 들었거나 흥얼 거렸을 법 하다.
모든 노래 가사를 법전 뒤지듯 따지고 캐서 음미하는 사람이 있으리요만 - 어느 노래나 그렇듯이 노랫말에 취해 그 뜻을 헤아려 볼 때도 없진 않으니만치 - 이 노래도 흥얼거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따라오기 마련이리라.
그런 호사가들을 위해 오늘은 이 노래 가사에 들어있는 엽전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나름 뼈대 자랑하던 멸치처럼 격에 맞는 글을 써보겠다는 당찬(?) 포부로 시작한 블로그질이긴 하지만, 늘 끼워 맞추듯 빡빡하게만 살 수야 없지 않겠는가!
때로는 이런 허섭스런 이야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풀어 헤쳐 보는 것도 휴식이 아닐까 싶다.
열닷냥, 대체 얼마 만큼이나 큰 돈인가?
엽전이라는 이름의 출처
먼저 '엽전'이라는 이름부터 짚어야겠다. 본명이 아니고 별명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통용되던 동전은 원화였다. 상평통보로 불리던 엽전은 흔했지만 아이들 장난감 '제기'를 만들 때 말고는 따로 쓰이는 데가 없었다.
그런 동전이 엽전이란 이름을 얻은 데는 그럴싸한 이야기가 정설처럼 굳어졌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동전(銅錢)으로 기록되어 있고 민간에서는 엽전(葉錢)이라 불렀는데, 이는 동전을 세는 단위가 '닢'이었던 것과도 연관이 있다. 상평통보를 주물로 제조하는 과정에서 주조된 동전들이 마치 가지에 달린 나뭇잎처럼 생겨서 그렇게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굳히고 나면 동전들이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양이 되는데, 거기서 낙엽 엽(葉) 자를 가져온 것이다. 또 나뭇잎을 셀 때도 한 닢, 두 닢 하듯, 동전을 셀 때도 같은 단위를 쓰니 이름이 자연스럽게 굳어졌던가 보다.
우리나라 엽전은(철전이나 동전을 통틀어서) 고려 성종 15년(996년) 부터 시작됐다는 기록이 있어 역사가 1030년이나 됐지만, 이 상평통보는 숙종 4년(1678년) 1월 23일부터 주조 및 유통되기 시작한 조선의 화폐로, 개항 이전 조선에서 전국적으로 지속적으로 통용된 유일한 화폐였다.
이름에도 뜻이 있는데, '상평(常平)'은 '상시평준(常時平準)'의 준말로, 유통 가치에 항상 등가를 유지하려는 물가안정의 의지를 담은 표현이다. 이름은 그럴듯했지만, 이 의지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는 뒤에 따로 이야기하겠다.
화폐 단위부터 정리하자
엽전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단위부터 알아야 한다.
조선시대의 화폐 단위는 1문(文)이 1푼이고, 10푼이 1전, 10전이 1냥이었다. 10냥은 1관으로 관이 최고 화폐 단위였다.
요컨대 100닢짜리 엽전 꾸러미 하나가 1냥이고, 열닷냥이면 그것의 열다섯 배이니 엽전 1,500닢이 된다. 노새 안장에 실으면 묵직할 수밖에.
당시 엽전은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있어 노끈에 꿰어 뭉치로 들고 다녔는데, 1,500닢 꾸러미는 두툼하고 꽤 무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엽전을 처음 주조할 때 상평통보는 나라에서 무게를 8.375g으로 맞추게 하여 재료를 속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나중에 재료가 고갈되면 무게를 줄이게 되니 자연 엽전의 가치도 떨어지기 마련이라, 돈이 가치가 떨어지니 하찮게 느껴졌을 테고 그래서 하찮은 것을 일컬을 때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느니 "땡전 한닢 줍쇼" 같은 천덕꾸러기 취급도 받았을 터다.
아무튼 과거보러 가는 낭군에게 딸려보낸 청노새가 안장에 실은 엽전의 무게는 약 12.6Kg이었다.
그래서, 열닷냥이 지금 돈으로 얼마냐고?
이것이 핵심이다.
조선 후기 1냥의 구매력을 쌀값 등과 환산해보면 대략 4만~5만 원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열닷냥은 지금 돈으로 대략 60만~75만 원 어치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반쪽짜리 이야기다. 쌀값으로 환산한 숫자만 가지고는 그 돈이 실제 삶에서 어느 정도의 무게였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구체적인 물가와 나란히 놓아봐야 비로소 실감이 난다.
노래 속 낭군은 '한양 천리'를 간다. 경상도 끝자락에서 한양까지라면 실제로 천 리가 맞다.
경상도 지방에서 한양으로 오는 데 약 30일 정도가 소요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도 문경새재나 죽령 같은 험한 고갯길을 넘으면서.
왕복 두 달, 그 사이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선비가 시험을 치러 한양으로 올라오고 내려가는 나귀와 하인의 인건비, 밥값, 숙박비 등이 모두 가문에서 들이는 비용이었다.
다행히 당시 인심이 그리 야박하지만은 않았다. 한양으로 가는 선비들은 거처가 마땅치 않을 경우 그 마을 유지의 집을 찾아가 지나가는 과객임을 알리고 하룻밤 유하기를 청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주었으며 심지어 밥까지 대접해 주었다.
당시는 그런 선행이 선비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문화가 있었다. 게다가 과거시험 시즌이 되면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임시 주막을 열어 손님을 받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마냥 얻어먹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막에서 밥 한 끼와 술 한 잔, 하룻밤 짚자리를 빌리는 데는 대략 1~2푼에서 한 전 안팎이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열닷냥, 즉 150전이라면 이 계산에 따르면 최소 한 달 치 숙식을 충당하고도 남는 돈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를 더 얹어야 한다. 서울로 과거를 보러 떠나는 선비들의 봇짐에는 노잣돈 외에도 종이·먹·붓·벼루·좁쌀책 등이 들어 있었다. 문방사우 한 질의 값은 결코 싸지 않았다. 붓 한 자루가 5~10푼, 좋은 벼루나 먹이면 수십 푼에서 한두 냥을 가뿐히 넘겼다.
귀하고 천한 것 조차 시절에 따라 변하는 세상이니 예전에는 쌀을 그 중 귀하게 여겨, 베옷 홑것 하나 걸치고 살던 백성들에게는 평생의 소원이 '이팝(쌀밥)' 먹는 것이었지만 요새 세상은 쌀밥을 건강의 적으로 알 뿐더러, 지지리 없어서 못 먹고 주린던 시절 뱃구레 채우려고 욱여 먹던 꽁보리밥에 시래기를 건강식이라 치니 오래 살다보면 세상일이란 것이 가소로울 때가 많다.
어쨌거나 이 모든 걸 감안하면 열닷냥은 '그냥 적당히 쥐어준 여비'가 아니라, 왕복 긴 여정과 시험 준비를 통틀어 빠듯하게나마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부'였던 셈이다. 오늘날로 치면 지방에서 서울로 취업 시험 보러 올라오는 자식에게 어머니가 전 재산처럼 내어주는 돈봉투 같은 것이었다고 봐야 맞다.
노래가 흥겨울수록, 그 돈은 더 무겁다
조선 1푼은 오늘날 700원, 1냥은 7만 원으로 환산하는 기준도 있다. 이 계산에 따르면 열닷냥은 105만 원이 된다.
어느 기준을 쓰느냐에 따라 6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를 오르내리니 딱 떨어지는 답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돈이 당시 하층 서민 가구의 몇 달치 생계비에 맞먹는 돈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반전이 있다. 이 돈의 가치가 시기에 따라 얼마나 곤두박질칠 수 있었는지를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1866년 12월 당백전 남발로 쌀 한 섬에 7~8냥 하던 것이 불과 2년 뒤에 44~45냥으로 600%나 폭등했다.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재건 자금 마련을 위해 액면가는 100배이지만 실제 금속 가치는 5~6배짜리 당백전을 마구 찍어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앙은행이 무분별하게 통화를 발행할 때 일어나는 인플레이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속도가 2년 안에 여섯 배였다는 것이 다를 뿐.
이름이야 '상시평준(常時平準)'이라 거창하게 붙였지만, 권력 앞에서 화폐의 가치는 허무하게 흔들렸다.
노래는 빠르고 경쾌하다. 그러나 가사 한 줄을 붙잡고 뜯어보면 그 안에 긴 시간이 들어 있다. 한 여인이 떠나는 남편의 노새 안장에 동전 꾸러미를 묶으며 천 번 만 번 빌었다는 그 마음, 그리고 그것이 고작 열닷냥이었다는 사실.
고작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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