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보랬더니 왜 자꾸 손가락만 보는데?
— 김실장 발언에서 앤드루 양까지
지난 5월 12일, 청와대 정책실장이 SNS에 'AI 기술 발전으로 인해 기업들이 거두는 초과 이익이나 세수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투자할 것인가'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그러자 블룸버그의 한 기자가 이것이 코스피 폭락을 불러왔다는 기사를 썼고, 한국 레거시 미디어들이 일제히 받아썼다. 야당은 하루 종일 이를 돌림노래처럼 틀어댔다.
이번 기사를 쓴 이유경 기자는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과장보도로 '검은머리 외신기자'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는 기자였는데, 이번에도 코스피 지수 하락에 여러 요인이 있었음에도 김실장의 말 한 마디 때문에 폭락했다고 기사를 썼다. 성향이 그런 기자니까 블룸버그 기사는 그렇다 치겠지만, 그걸 베껴 퍼나른 기자들은 꼴이 대체 뭔가.
그러나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말싸움이 아니다. 정책실장이 꺼낸 화두의 본질, 그리고 그것이 지금 세계에서 어떤 맥락으로 논의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김실장이 꺼낸 화두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대만계 미국인 앤드루 양(Andrew Yang)이 이미 정치 공약으로 제시한 담론이다.
18세 이상 모든 미국인에게 매달 1,000달러 지급 — 보편적 기본소득의 미국식 버전
전면 무상 의료. 소득이 아닌 시민권에 기반한 의료 접근성
GDP를 넘어 평균수명·정신건강·졸업률 등 삶의 질을 국가 지표로 측정
양이 주목한 것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 현상이었다. 과거 민주당 강세 지역이었던 제조업 지대의 노동자들이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자, 트럼프의 이민자·무역 프레임에 흡수되었다는 분석이다. 자동화의 물결은 점원, 콜센터 상담원, 트럭 운전사까지 이어질 것이라 경고했다. 그러나 개인의 적성과 나이 때문에 직종 전환에는 한계가 있기에, 양은 기본소득제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최저임금 15달러 인상은 의도는 좋지만, 소규모 사업장을 해치고 오히려 자동화를 부추길 수 있다. 반면 기본소득은 사람들의 구매력을 높여 새로운 소규모 사업의 기회를 만든다.
재원은 아마존·페이스북처럼 자동화로 막대한 이익을 얻으면서 세금은 거의 내지 않는 거대 IT 기업들에게 부가세를 부과하면 된다는 것이 양의 답이었다. 실증 사례로는 알래스카 주가 수십 년간 석유 판매 이익을 주민에게 배분해 왔고 오히려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는 사실을 들었다.
비판론자들은 냉소적이다. "사회적 분노를 무마하려는 안전판", "노동 없는 사회를 정당화하려는 포장지", "거대 플랫폼 독점을 유지하기 위한 회유책"이라는 시선이다. 진보 진영조차 "빅테크가 독점을 유지하면서 생색내는 것"이라 의심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AI 기업들의 순이익 구조가 직원 수는 크게 안 늘어나는데 시가총액과 수익은 폭증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이런 우려가 커졌다.
굴뚝 하나 번듯하게 세우지 않았지만 전 세계의 돈을 빨아들이듯 벌고 있는 오너들에게 쏠리는 질시와 분노가 심상치 않다고 — 그들 자신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수한 프로그래머가 1주일 이상 씨름해야 할 고난도 소프트웨어 코딩을 AI 툴이 3~4시간 만에 해낸다. 로펌은 이미 초보 변호사 채용을 줄이고 있다. 판례 수집이라는 초보적 법률 서비스를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콜센터, 번역, 디자인 등의 업무도 일거리가 줄어들고 있어 아우성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현재 전 세계 1위를 찍었고, 수출은 세계 5위로 도약했다. 그런데 이 실적이 앞으로 더 커질 이유가 있다.
AI 개발에 필수불가결한 것은 반도체다. 그 전 세계 생산량의 75%를 삼성과 하이닉스가 담당하고 있으며, 초미세 공정인 2나노 반도체는 오직 두 회사만 양산에 성공했다. 골드만삭스는 조만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전 세계 1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건 국뽕 차오른 누군가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세계적 금융회사 골드만삭스 분석가들이 내놓은 전망이다.
삼성이 애플이나 구글과 차원이 다른 점은 양산 공장을 직접 보유한 '풀스택' 기업이라는 것이다. AI 개발 열기가 본 궤도에 오르는 향후 10년, 그리고 개발된 AI를 유지·발전시키는 그 이후까지도 반도체 수요는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
어제는 '삼성이 한 해 영업이익이 일본 100대 기업 영업이익 총합보다 많다'는 기사가 떴다. 그보다 김실장 말 한 마디에 포커싱을 해대는 광기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쏟아져 들어올 영업이익과 세수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정책 담당자가 '그 이익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투자할 것인가'를 미리 논의하는 것 — 이것이 김실장 발언의 본질이었다. 그것을 공산주의 논란으로 끌고 간 쪽이 오히려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AI 자동화가 낳는 일자리 소멸과 불평등 심화라는 문제는, 그 문제를 만든 AI조차 아직 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사가 그러했듯, 인간은 AI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동시에 그 해결책도 모색해 왔다.
UBI든, AI 배당금이든, Public Wealth Fund든 — 그 이름이 무엇이 되든 간에, 지금 이 논의 자체가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은, 그 논의를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인용된 수치 및 전망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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