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래도 되는거야?
지방선거까지 19일 남았다. 그래서인지 각종 미디어에 온갖 쇼츠가 넘쳐난다. 그 중 한 장면을 보다가 일상이 멈춰버렸다. 저래도 나라가 굴러갈까?
물론 오늘 처음 들은 이야기도 아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일찍이 작가 유시민이 한 마디 했었다. "그런다고 나라 안 망해요." 그렇다. 그런 사람이 한 곳에 뭉쳐 살아가고 있는데도 대한민국은 아직 멀쩡하다.
하지만, 하지만이다. 윤석열을 뽑았지만 아직도(?) 멀쩡한 나라! 대한민국은 그저 경이롭기만 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정뱅이를 대통령이라고 뽑아줘도, 그렇게 뽑혀 술에 쩐 채 날이 가고 해가 가도, 숙취로 자리보전한 채 가짜 차량행렬로 국민을 속여가면서 대통령질을 해먹어도 멀쩡했고, 급기야 그런 작자가 계엄을 선포하고 자칫 수십, 수백, 수천 명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짓을 저질러도 그런 인간을 뽑아준 사람들은 아직도 '윤어게인'을 합창하는 나라………
이게 세계 경제성장률 1위, 수출 5대 강국, 군사력 5위의 나라라는 게 그저 신기하지 않은가? 유시민의 주술 때문에 멀쩡한 건가?
그 짧은 쇼츠를 보고 잠시 정치가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이렇게도 변하는가를 생각해 봤다.
쇼츠를 보다가 이런 대화가 나왔다.
"왜요?"
"그냥."
이 짧은 대화 속에 민주주의의 오랜 딜레마가 숨어있다.
플라톤은 일찍이 민주주의를 경계했다. 배를 몰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선장을 뽑는 꼴이라고 했다.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그의 '철인정치론'은 바로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현대에도 비슷한 주장이 있다. 제이슨 브레넌이라는 정치철학자는 그의 저서 '에피스토크라시'에서 정치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논리는 간단하다. 중요한 수술을 할 때 아무 의사나 쓰지 않듯,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거도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질문이 생긴다. "그럼 누가 자격을 판단하는가?"
역사적으로 투표 자격을 제한했던 시절이 있었다. 재산이 있는 남성만, 특정 인종만,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만.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기득권이 기득권을 위한 정치를 했다. 약자는 언제나 배제됐다.
"나라 다 팔아먹어도 새누리당"인 사람이 과연 무지한 사람인가. 평생 그 지역에서 살며 체득한 경험,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가치관, 반대편 정당에 대한 깊은 불신 — 겉으로는 맹목적으로 보여도 그 안에 나름의 논리가 있다.
맹목적 지지자를 만들어낸 건 유권자 탓만이 아니다. 정책 대결 대신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합리적 토론 대신 편가르기로 표를 얻어온 정치인들의 책임이 더 크다.
유권자가 "그냥"이라고 대답하게 만든 건 정치가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정책으로 설득하려 하지 않고, 공포와 혐오로 결집시켜온 정치의 민낯이다.
투표권을 제한하는 건 답이 아니다. 더 나은 민주주의는 유권자를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교육, 독립적인 언론, 투명한 정치. 그것이 "그냥"을 "이유 있는 선택"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민주주의는 느리고 답답하다. 그러나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내린 결론은 하나다. 그보다 나은 제도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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