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인사를 올립니다
이름이 고운(孤韻)인 이유
어릴 때부터 궁금한 건 못 견디는 체질이었습니다.
형들이 서울에서 집에 내려오는 날이면, 벗어놓은 손목시계를 보는 순간 이미 제 손에는 연필깎이 칼이 들려 있었습니다. 시계바늘은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 그 작은 궁금증 하나가 저를 멈추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분해해 먹은 형들 시계가 네 개. 셋째 형은 결국 선언했습니다.
"너 이녀석, 공고 안 가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어!"
그리하여 저는 — 반은 협박으로, 반은 운명으로 — 공고 전기과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제 영혼은 처음부터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인문학이 하고 싶었습니다. 역사의 결을 손끝으로 짚고 싶었고, 언어로 세상을 다시 한번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현실은 늘 다른 쪽을 가리켰지만 — 기술로 밥을 벌고, 군대를 다녀오고, 승진을 위해 늦깎이 대학생이 되는 동안 — 영혼은 몰래 샛길로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문예반의 낡은 책상 앞에서, 마이크를 쥔 방송국 한켠에서, 누군가를 위해 손을 보태는 봉사의 자리에서. 밥을 벌기 위해 길을 나서는 발과, 샛길을 그리워하는 눈이 — 평생 따로 살았습니다.
그 갈증이 어떤 것인지, 이공계를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릅니다. 수식과 회로도 사이에서 시 한 줄이 그리워지는 그 느낌을.
저는 그 갈증을 달래려고 책을 읽었고 — 주로 인문학과 역사 쪽으로 손이 갔습니다 — 그리고 이제, 이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쓸지 아직 다 정하지 못했습니다. 경제 이야기도 쓰고, 세상 이야기도 쓰고, 때로는 그냥 마음속에서 오래 묵어온 것들을 꺼내놓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압니다 — 글이라도 이쁘게 한 줄 써서, 이 자리를 찾아주신 여러분 곁에 살며시 두고 싶다는 것.
그러나 아무리 글이 미치도록 쓰고 싶어도 한 가지 새김질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돌아가신 아버님이 내 어릴 적 나지막이 들려주신 그 말씀,
"옳은 말은 외로운 법이니라."
- 그래서 스스로 아호를 '외로운 소리'라는 뜻으로 고운(孤韻)이라 지어 평생을 그 말씀을 되새기며 살았습니다.
평생을 걸었어도 헛헛하기만 했던 이 길에 함께 말동무를 해줄 이가 생길 것 같아 행복합니다.
늦었지만,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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