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손님들과 빅맥 사장님
— 플러싱 맥도널드에서 늙어간다는 것
뉴욕 퀸즈 플러싱의 겨울 새벽은 유난히 잿빛이다.
해가 뜨기도 전인데 Main Street 지하철역 환풍구에서 김이 솟는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리틀 차이나타운 가게들 마다엔 배달 트럭들이 주문한 물건을 퍼내느라 부산하고, 청소차는 굉음을 내며 전날 버려진 일상들의 찌꺼기를 빨아들인다. 새벽 공기에는 늘 기름 냄새와 커피 냄새가 섞여 있다.
그 시간, 어느 맥도널드의 자동문이 열린다.
회색 점퍼 위에 낡은 패딩을 덧입은 한국 노인 몇 명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온다.
누군가는 지팡이를 짚고, 누군가는 검은 비닐봉지에 신문을 넣어 들고 있다. 주문은 늘 비슷하다.
“스몰 커피.”
1달러 남짓한 종이컵 하나가 테이블 위에 놓인다. 노인 우대 가격이다.
그리고 하루가 시작된다.
그들은 사실 커피를 마시러 오는 것이 아니다.
집 밖으로 나오기 위해 오는 것이다.
미국의 겨울은 길고, 뉴욕 이민의 노년은 더욱 길다.
영어는 여전히 낯설고, 자식들은 바쁘고, 손주들은 한국말보다 영어가 편하다. TV를 켜면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이 쏟아지고, 작은 아파트는 하루 종일 웅웅거리는 히터 소리만 남는다.
그래서 노인들은 거리로 나온다.
따뜻하고, 화장실이 있고, 오래 앉아 있어도 비를 맞지 않는 장소.
플러싱의 맥도널드와 던킨, 싸구려 다이너들은 그렇게 가난한 이민 노인들의 “공공 거실”이 되어갔다.
“야, 한국 정치가 말이야….”
한 사람이 말을 꺼내면 다른 사람이 고개를 젓는다.
신문이 펼쳐지고, 누군가는 돋보기를 꺼낸다. 커피는 이미 식었지만 대화는 계속된다.
젊은 시절 그들은 미국을 “기회의 나라”라고 불렀다. 황금덩어리는 바라지 않았지만, 적어도 허기는 면하리란 기대를 안고 고향을 훌훌 털어 버렸다. 그 때는 당연히 젊었었다.
그러나 늙은 뒤의 미국은 조금 다른 얼굴이었다.
미국은 젊은이에겐 관대한 나라지만, 늙은이에겐 차가운 나라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는, 어느 순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독으로 변한다.
미국 노인 빈곤의 핵심은 굶주림보다 외로움이다.
한국의 가난한 노인이 폐지를 끌고 골목을 돈다면, 미국의 가난한 노인은 커피컵 하나를 붙든 채 하루를 견딘다.
2014년 겨울, 결국 문제가 터졌다.
매장 측은 불만을 터뜨렸다.
출근 시간마다 자리가 없었고, 젊은 손님들은 빈 좌석을 찾지 못했다. 커피 한 잔으로 몇 시간씩 자리를 차지하는 노인들은 매장 입장에선 “손님”이라기보다 “체류자”에 가까웠다.
어느 날 매니저가 말했다.
“여긴 노인정이 아닙니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플러싱 한인사회는 들끓었다.
경찰이 출동했고, 노인들은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쫓겨난 노인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가라면 한 바퀴 돌고 다시 들어왔지.”
그 말에는 이상할 정도로 처연한 품위가 있었다.
갈 곳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사건은 단순한 영업 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가 누구의 것인가를 묻는 사건이었다.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의 공간인가.
아니면 잠시라도 외로움을 피하려는 사람의 공간인가.
미국 사회는 철저히 회전율로 움직인다.
패스트푸드점의 의자는 매출을 위해 존재한다. 오래 머무는 사람은 시스템 입장에서 “비효율”이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처럼 효율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노인들은 커피를 산 것이 아니라, 몇 시간의 소속감을 산 것이었다.
미국 노인들은 흔히 교회로 간다.
Senior Center로 간다.
도서관으로 간다.
자원봉사를 하고, RV 여행을 하고, 골프를 치고, 동네 다이너에서 신문을 읽는다.
그러나 이민 노인들은 종종 그 시스템 바깥에 서 있다.
영어가 벽이 되고, 문화가 벽이 되고, 체면이 벽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자기 언어가 들리는 곳으로 모인다.
플러싱의 맥도널드에는 한국말이 있었다.
“어이 김 선생, 왔어?”라는 말이 있었다.
그 한마디가 하루를 버티게 만들었다.
어쩌면 인간은 늙어서도 결국 같은 것을 원하는지 모른다.
따뜻한 자리 하나.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 하나.
그리고 너무 오래 혼자 있지 않아도 되는 하루.
플러싱의 노인들이 붙들고 있던 것은 커피컵이 아니었다.
세상과 마지막으로 이어진 가느다란 끈이었다.
***인간은 병으로 죽지 않는다. 외로워서 죽는다.
<이 글은 2014년 1월 15일자 뉴욕타임지 기사를 바탕으로 각색된 것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