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바라기의 뉴욕살이
40년을 살아도 설명하기 어려운 미국
뉴욕에서 40년을 살아온 한 한국인이 바라본 한국과 미국의 차이
40년을 미국에서 살았는데도 솔직히 나는 누구에게 미국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한 해 백만 명이 훨씬 넘는 한국인들이 미국을 수시로 드나들어, 미국에 사는 우리보다 미국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많은데 어설프게 아는 체했다간 비웃음이나 사지 않을까 지레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머무는 곳은 엄밀하게는 별로 미국 같지 않은 곳이라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인종의 도가니라 불리는 뉴욕은 전형적인 미국과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다릅니다. 한국과 미국 만큼이나...
하지만 아무리 인종집합소 같은 곳에 살지만 그렇다고 엊그제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사람들과 부대끼는 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을 전혀 모르지는 않습니다.
혹시 이런 나에게 “미국과 한국이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더듬더듬이나마 조금은 아는 체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요행수를 믿고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1. ‘우리’라는 울타리와 ‘나’라는 독립된 섬
한국의 ‘우리’와 미국의 ‘나’ 사이에서 살아가는 마음
한국과 미국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의 무게중심에 있습니다.
한국의 삶은 관계 중심입니다. 한국은 여전히 ‘우리’라는 끈끈한 울타리 속에서 작동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상황을 짐작하고, 눈치를 보고, 정(情)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영역을 부드럽게 침범합니다. 이것이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되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비교와 피로감을 주기도 합니다.
미국의 삶은 개인 중심입니다. 반면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은 철저하게 ‘독립된 개인들의 집합체’입니다. 아무도 내 삶에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주는 해방감은 엄청납니다. 하지만 이 자유의 이면에는 “내 문제는 결국 내가 백 퍼센트 책임져야 한다”는 서늘한 고독감이 존재합니다.
40년을 살아도 문득 마주하는 이 쓸쓸함은, 우리가 한국식의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관계’에 여전히 향수를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2. ‘당연한 눈치’와 ‘명확한 계약’의 차이
문화적 이질감이 가장 구체적으로 부딪히는 지점은 바로 소통의 방식입니다.
한국은 맥락 지향적 사회입니다. 한국어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분위기 파악, 즉 ‘눈치’가 소통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 뒤에 숨은 뉘앙스를 알아채야 하는 사회입니다.
미국은 텍스트 지향적 사회입니다. 미국은 눈치가 통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모든 것은 말과 문서로 명확하게 표현되어야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비즈니스를 하거나 공공기관을 상대할 때, 감정이나 묵시적 합의가 아닌 ‘철저한 법과 규칙, 계약’으로만 모든 것이 칼처럼 잘려 나가는 순간을 마주하면 본능적인 이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3. ‘속도와 효율’ 대 ‘시스템의 관성’
손가락 하나로 끝나는 한국, 우편과 서류가 아직도 무거운 미국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 같지만, 삶을 지탱하는 행정이나 일상 시스템은 놀라울 정도로 아날로그적이고 느립니다.
한국은 실시간으로 진화합니다. 관공서 업무부터 배달, 금융까지 손가락 하나로 몇 분 만에 해결되는 ‘초효율의 사회’입니다.
미국은 기다림이 기본입니다. 우편물 하나, 서류 한 장 처리하는 데 몇 주가 걸리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관공서나 오래된 인프라를 대할 때 느끼는 답답함은 여전합니다.
이 느리고 묵직한 시스템에 적응해 살아가면서도, 한국의 번개 같은 속도감을 떠올릴 때면 내가 서 있는 이곳의 시계가 묘하게 다르게 흐른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4. 주변인(Marginal Man)이 느끼는 영원한 이방인 감각
두 세계 사이를 걷는 사람
미국에서도 완전히 미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에서도 완전히 한국 사람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마음
이것은 뉴욕의 한인 동포들이 가장 깊숙이 숨겨둔 마음의 결일지도 모릅니다.
미국 사회의 주류 속으로 완벽하게 스며들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나 문화적 배경, 팝컬처와 역사적 맥락의 차이로 인해 보이지 않는 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조차 “어딘가 모르게 미국 사람 같다”는 소리를 들으며 완벽하게 섞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
이 묘한 이질감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나이테처럼 깊어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뉴욕에서의 40년은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바뀐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단단한 원석 위에 뉴욕이라는 거친 정(鑿)으로 미국적인 삶의 결을 쪼아내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온 시간일 것입니다.
뉴욕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뜻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를 끝없이 왕복하며, 끝내 어느 한쪽으로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는 삶의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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