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
빚쟁이 제국의 외교

독수리와 용 시사 삽화
독수리와 용이 마주한 채 흔들리는 미국의 신용과 패권

1. 침묵으로 끝난 베이징 회담

세계 최강국이 베이징에 손을 벌리러 갔다.

지난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9년 만에 중국을 찾았다. 공동성명도, 합의문도, 공동 기자회견도 없었다. 회담을 마친 트럼프는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톈탄 공원을 산책하며 기자들에게 “훌륭했다”고만 했다. 대만 문제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협상에서 할 말이 없는 쪽이 침묵한다.
시진핑과 트럼프 시사 삽화
중국 앞에서 침묵하는 미국의 외교

이번 회담의 구도를 만든 것은 이란이었다. 미국이 올해 초 이란을 공격하면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고, 국제 유가는 치솟았다. 물가가 오르고 민심이 흉흉해지면서 트럼프는 출구가 필요해졌다. 마침 이란의 최대 원유 수입국은 중국이다.

결국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그 수습을 위해 상대의 문을 두드리는, 외교적으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공격해 오히려 더 강한 나라 앞에 무릎을 꿇게 된 셈이다.

시진핑은 그 자리에서 미국에 “투키디데스 함정을 극복하자” 고 말했다. 강대국의 자리를 넘겨달라는 말을 점잖게 포장한 것이다. 분석가들은 이번 회담을 “대체로 중국에 유리한 피상적 휴전” 이라 불렀다.


2. 100년 왕좌의 몰락, 신용등급 강등

그런데 이 외교적 퇴조는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다. 같은 주,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100년 넘게 지켜온 최고 등급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미국이 쓰는 돈보다 버는 돈이 훨씬 적다는 것, 그리고 그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이자 지출의 첫 1조 달러 돌파: 올해 미국 연방정부가 국채 이자로 지출한 돈은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넘어섰다.
  • 세수의 20%가 이자로 증발: 세금으로 걷어들이는 돈의 상당 부분이 이자 상환에 사용되고 있다.

나라 살림이 이 지경인데 감세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무디스는 현재 GDP의 6%를 넘는 재정적자가 2035년에는 9%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3. 끊어지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

빚이 늘면 더 높은 금리를 주고 채권을 팔아야 하고,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다시 늘어난다. 이 고리를 끊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세계 투자자들은 조용히 달러 자산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중동과 아시아의 국부펀드들이 달러 대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이미 몇 해 전 얘기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요란하게 관세를 올리고, 동맹을 윽박지르고, 전쟁을 일으키면서 미국은 지난 몇 년간 세계를 향해 크게 짖었다. 그런데 정작 진짜 경쟁자인 중국 앞에서는 말을 잃었다.

초강대국의 신뢰는 그 나라의 경제적 건전성과 외교적 일관성 에서 나온다. 무디스의 등급표와 베이징 회담장이,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채무자의 신용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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