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일이 떠올랐다.
뉴욕한인소기업서비스센터(KASBSC)에서 Volunteer(자원봉사)로 사무총장 일을 봐주던 때였다.
가게 업주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가게 바로 앞에 행상이 진을 치고 앉아 손님을 가로챈다는 것이었다.
임대료도 없고, 세금도 없고, 허가증도 없었다. 가게 업주들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는 임대료에, 세금에, 각종 허가에, 직원 월급까지 내면서 장사하는데, 저 사람들은 그냥 카트 하나 끌고 와서 우리 가게 앞에 딱 버티고 앉아 있는 겁니까?"
우리는 시에 압력을 넣었다.
행상 등록제를 도입해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 결과 행상들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가게 입구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례가 생겼다.
그때 우리가 만들어낸 규정 중 하나 — 가게 입구에서 20피트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조항. 사진 속 저 카트는 던킨 입구에서 25~30피트쯤 떨어졌다. 아슬아슬하게 합법이다.
내가 싸워서 만든 규정이, 내가 보호하려 했던 가게 업주들의 코앞에서, 행상이 버젓이 영업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주고 있었다.
옛날 이야기가 있다. 아들 둘을 둔 어머니가 있었는데, 큰아들은 우산장수고 작은아들은 짚신장수였다. 비가 오는 날엔 짚신 못 팔까봐 걱정이고, 해가 뜨는 날엔 우산 못 팔까봐 걱정이었다. 어떤 날씨에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나는 그 어머니의 심정을 이제야 제대로 안다.
가게 업주들은 회원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편에서 싸웠다.
행상들을 규제하는 조항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조항은 동시에 행상들에게도 합법적인 공간을 허락했다. 그 행상들 중엔 가게 낼 돈도, 영어도, 서류도 없는 이민자들이 수두룩했다.
비가 와도 걱정, 해가 나도 걱정. 가게 업주가 잘되면 행상이 힘들고, 행상이 잘되면 가게 업주가 힘들다. 둘 다 내가 보기엔 절박한 사람들이었다.
규정을 만든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편을 드는 일이다.
약자들끼리 서로 상대의 밥그릇을 건드릴 때,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가.
30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그 질문 앞에서 멈춘다.
던킨도 살아있고, 저 행상도 살아있다.
둘 다 쫓겨나지 않고 25~30피트의 거리를 두고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
어쩌면 그게 뉴욕이 뉴욕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월마트 하나 못 들어오게 막은 도시이지만, 노점 카트 하나는 살려두는 도시.
자본의 논리와 골목의 논리가 25피트를 두고 매일 아침 협상을 벌이는 도시.
웃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가끔은 울컥한다.
저 행상은 오늘도 나올 것이다.
던킨도 오늘도 문을 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웃을 것인지, 울 것인지 모른 채
그 앞을 지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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