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값에 대한 엉뚱깽뚱한 상상
대한민국의 부동산 정책은 참으로 독특하다.
집값이 오르면 세금을 올린다.
그래도 오르면 대출을 막는다.
그래도 오르면 재건축을 묶는다.
그래도 오르면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아무도 묻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서울로 가려고 하는가?
집값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집값을 만드는 원인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마치 열이 나는 환자에게 해열제만 먹이고 왜 열이 나는지는 묻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집값은 집이 결정하지 않는다.
강남의 30평 아파트를 생각해 보자.
콘크리트가 특별한가?
배관이 금으로 만들어졌는가?
창문이 다이아몬드인가?
그럴 리 없다.
오히려 20년 넘은 아파트라면 건물 자체는 감가상각이 진행된 낡은 자산이다.
그런데도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사람들이 사는 것은 건물이 아니다.
그 건물이 놓여 있는 위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위치에 집중된 기회다.
강남에는 아파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 본사가 있다.
금융회사가 있다.
대형 병원이 있다.
학원이 있다.
로펌이 있다.
회계법인이 있다.
투자회사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보가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돈과 돈이 만나고, 기회와 기회가 만나는 거대한 생태계가 있다.
강남 아파트를 사는 것은 사실상 그 생태계의 회원권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어느 날 정부가 선언하는 것이다.
"향후 15년에 걸쳐 수도권 기능 분산 계획을 시행한다."
삼성은 평택.
현대차는 화성.
주요 금융기관은 세종.
대형 IT 기업은 대전.
정부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GTX와 KTX를 촘촘하게 연결한다.
출퇴근 시간은 지금보다 짧게 만든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에는 난리가 날 것이다.
경제신문은 국가 경쟁력이 무너진다고 할 것이다.
부동산 유튜버들은 한국 경제의 몰락을 예언할 것이다.
강남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를 주장할 것이다.
정치권은 표 계산에 바빠질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은 결국 일자리를 따라 움직인다.
새로운 직장 근처로 이사 간다.
새로운 상권이 생긴다.
새로운 병원이 들어선다.
새로운 학군이 형성된다.
새로운 문화시설이 들어선다.
결국 돈을 버는 곳 주변으로 도시가 자란다.
인류 역사 내내 그래 왔다.
미국을 보자.
좋은 직장이 모두 뉴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New York City도 중요하지만
Dallas도 있고,
Atlanta도 있고,
Nashville도 있고,
Charlotte도 있다.
사람도, 기업도, 기회도 전국에 흩어져 있다.
그러니 집값 역시 전국에 분산된다.
반면 한국은 다르다.
좋은 대학도 서울.
좋은 직장도 서울.
좋은 병원도 서울.
좋은 문화시설도 서울.
좋은 학원도 서울.
모든 강물이 한강으로만 흐르는 구조다.
그런데 우리는 물이 넘친다고 둑만 높이고 있다.
사실 세금 역시 문제다.
지금 한국은 이상한 나라다.
집을 가지고 있으면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집을 팔면 세금이 무섭다.
그러니 팔지 않는다.
매물이 줄어든다.
시장은 공급 부족처럼 보인다.
가격은 다시 오른다.
만약 보유세를 현실화하고 양도세를 낮춘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제는 집을 가지고 있는 비용이 커진다.
반대로 팔기는 쉬워진다.
그 순간 시장에는 매물이 나온다.
거래가 살아난다.
가격은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강남을 원하는 이유는 세금 때문이 아니라 일자리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남의 대기업 본사가 이전하면 어떻게 될까?
많은 사람들은 강남이 공동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강남은 원래부터 특별한 땅이 아니었다.
1970년대만 해도 논밭이었다.
정부가 길을 놓고 학교를 옮기고 기업을 유치하면서 지금의 강남이 탄생했다.
즉 강남은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니라 정책이 만든 도시다.
그렇다면 다른 곳도 만들 수 있다.
물론 강남의 가격은 떨어질 수 있다.
지금 40억 원 하는 아파트가 25억 원이 될 수도 있다.
오피스 임대료도 내려갈 수 있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도 조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공동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가격이 내려가면 지금까지 접근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들어온다.
새로운 기업이 들어온다.
새로운 상권이 들어온다.
새로운 수요가 생긴다.
도시는 죽는 것이 아니라 변신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일자리도 빠져나가고,
인구도 줄어들고,
고령화까지 심해진다면
그때는 정말 쇠퇴가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대의 교통망과 인프라가 집중된 강남이 하루아침에 유령도시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강남의 공동화가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강남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강남 몇 개 동네의 부동산 가격에 좌우되는 사회.
청년의 인생이 강남 학군 진입 여부에 따라 갈리는 사회.
기업의 경쟁력이 강남 오피스 임대료에 영향을 받는 사회.
그것이 정상일까.
부동산 문제는 결국 부동산 문제가 아니다.
국토의 문제다.
산업의 문제다.
교육의 문제다.
교통의 문제다.
그리고 기회의 문제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강남을 무너뜨릴 것인가?"
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 곳곳에 또 다른 강남을 만들 것인가?"
이다.
만약 세종에도 강남이 있고,
대전에도 강남이 있고,
평택에도 강남이 있고,
부산에도 강남이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강남 아파트 한 채에 인생을 걸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쩌면 집값을 잡는 가장 강력한 정책은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지도를 다시 그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이 온다면 사람들은 비로소 집을 투자 상품이 아니라,
원래의 목적대로 살아가는 공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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