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직장생활

가끔은 뒤도 돌아보면서 앞으로 걸어가라


40대가 되면 뜬금없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뭐가 이리 시시해? 이렇게 사는 게 인생이란 말이야?"

오늘이 어제같고, 내일 또한 오늘 같은 나날이 반복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20대에는 하루가 길었다.

배울 것도 많았고, 증명해야 할 것도 많았고, 세상이 온통 가능성으로 보였다.

30대에는 정신없이 달렸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집 걱정도 하고, 월급날만 기다리며 살았다.



그런데 40대가 되면 어느 순간 깨닫는다.

내 삶에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없다는 것을.

그저 주어진 삶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그리하여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사실을.

다음 주도, 다음 달도, 내년 이맘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축복이겠거니.


세상에는 그 안정 하나를 얻기 위해 평생을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안정이 곧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삶이 익숙함에 젖기 시작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찾아온다.

'나,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살아갈 날은 아직 구만리 같은데, 그냥 이렇게 흘려보내기에는 무언가 아쉽다.

그렇더라도 그것을 불행이라 말할 건 아니다.

다만 넘치는 풍요 속에 찾아드는 빈곤이랄까,

오히려 안정된 삶을 얻은 사람이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또 다른 자아(自我)이다.


사람은 고생해서 지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어 무뎌진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면

마흔이 쉰이 되고, 쉰이 예순이 되어 있다.


출근은 했지만 기억에 남는 날은 없고, 월급은 받았지만 추억은 남지 않는다.


나는 젊은 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려고 산을 올랐다.

모퉁이를 돌고, 등성이를 넘고, 숨이 턱에 차도록 걸었다.

그러면 정상 너머 어딘가에 내가 찾는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침내 땅거미가 질 무렵 가파른 꼭대기에 올랐을 때, 신발 밑창은 이미 다 닳아 있었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다다른 그 곳.

그토록 보고 싶던 풍경은 또 다른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리막길은 생각보다 훨씬 가팔랐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었다.

중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에 몸에 밴 관성이 나를 앞으로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볼 틈도, 걸어온 길을 되새길 여유도 없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40대쯤, 시간이 아직 넉넉할 때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도 돌아보았더라면 어땠을까.'


회사는 내게 안정된 삶을 주었다.

연금도 줄 것이고, 의료보험도 지켜줄 것이다.

하지만 내 삶까지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은퇴 후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지, 

무엇을 좋아하며 살아갈 것인지는 각자가 준비해야 할 몫이다.


책을 읽어도 좋다.

낚시를 배워도 좋고, 

여행을 다녀도 좋고, 

글을 써도 좋다.

무엇이든 좋다.

다만 회사 밖의 나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명함을 떼어낸 뒤에도 기꺼이 시간을 바치고 싶은 무언가를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은 은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의 중심이 회사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업으로 먹고살지만, 직업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출근과 퇴근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밖에 있는 시간들로 완성된다.


그러니 너무 바쁘게 살지도 말고, 너무 무심하게 살지도 말자.

어차피 회사는 내일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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