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또 다른 나
14년 만에 만난 낯선 필자
며칠 전 - 정확히는 지난 4월 27일 - 이상한 일을 겪었다.
블로그를 하나 만들려고 했다.
이름도 정했고 주소도 정했다. 오래전부터 써오던 필명이라 별 생각 없이 입력했다.
그런데 컴퓨터가 말했다.
"이미 사용 중인 주소입니다."
누가 내 필명을 가져갔나 싶었다.
요즘 세상에 별일도 다 있구나 했다.
하긴 인터넷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내가 좋다고 생각한 이름은 남도 좋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뒤에 숫자를 하나 붙였다.
그렇게 해서 새 블로그가 생겼다.
이름하여 "뉴욕의 雜同散異(잡동사니)".
주소는 gohnge001.blogspot.com.
한 달 남짓 동안 부지런히 글을 썼다.
그런데 얼마 전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글을 쓰고 올리고 고치느라 뻔질나게 들락거리다 보니 내 블로그에는 방이 두 개가 있는 게 아닌가.
가만히 보니 주소가 gohnge.blogspot.com이었다.
그 주소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누군가 흔치 않은 gohnge라는 이름을 작명해서 블로그를 만든 줄 알았었다.
사족(蛇足)이지만, gohnge는 Gohn General Engineering Co.의 약자다.
1988년 내가 창업했던 회사 이름이었다.
나름 기발하다고 여겨 여기저기 남발하다시피 써먹었다.
지인들이 gohnge가 뭐냐고 물으면 "곤지"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곤 했다.
곤지는 전통혼례 때 신부 이마 한가운데 찍는 붉은 점을 말한다.
하는 일과 썩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들으면 잊히지 않는 우리말 소리와 같다는 이유로 우겼다.
누군가 이런 사연도 모른 채 gohnge라는 이름을 만들었다면 대체 어떤 사연을 갖고 작명한 것인지 꼭 물어보고 싶던 차였다.
gohnge.blogspot.com은 2012년 어느 날의 내가 만들어 놓고 잊어버린 블로그였다.
실소가 났다.
나도 참 어지간하다 싶었다.
그 블로그를 만들 당시의 나는 엄청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허구한 날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찾아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살다 보니, 이렇게 살다 죽는 게 내 인생인가 싶어 수시로 우울감과 씨름하던 때였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간절함.
거창할 건 없었다.
신춘문예 따위는 덤벼본 적도 없었고, 하다못해 교지에 글 한 줄 실려본 적도 없는 주제였다.
그래서 더욱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딱히 무엇을 쓰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초조함으로 변해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소금을 되로, 아니 말로 퍼먹은 뒤 찾아오는 갈증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기장 대신 써보려고 만든 것이 예의 그 **'孤韻의 喝隨錄(따따부따)'**이었다.
주소는 당연히 gohnge.blogspot.com.
'갈수록'이라는 이름은 국학자(國學者) 이훈종 선생의 저서 제목에서 따왔다.
열병처럼 들떴던 마음도 블로그를 만들고 글 몇 편을 올린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생업이 우선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바쁘다'는, 지극히 편리한 핑계를 방패 삼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부채의식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언젠가 다시 시작하겠노라는 다짐만은 잊은 적이 없었다.
무언가를 쓰고 싶은 마음은 늘 허기처럼 따라다녔다.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처럼 고여 있던 갈증이 다시 도질 즈음에는 예전에 내가 무얼 했는지조차 깡그리 잊고 있었다.
그러기에 새 블로그를 만들었고,
만들면서 내 별명 같은 '곤지'를 주소로 적었다가,
'이미 사용 중'이라는 안내문을 보고 누가 내 별명을 차용했나 싶은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다.
블로그 주소가 두 개가 된 자초지종이 이러했다.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그때의 나는 무슨 글을 썼을까.
지금의 내가 읽으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유치한 글은 아닐까.
나는 조심스럽게 첫 번째 글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두 번째 글을 읽었다.
세 번째 글도 읽었다.
읽을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 남이 쓴 글 같았다.
문장은 지금보다 더 길었다.
한자도 많이 썼다.
괜히 아는 척도 좀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글 속에는 지금의 내가 잃어버린 무엇인가가 살아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그것은 분노였고, 호기심이었고, 질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 했다.
한글이 왜 위대한지 알고 싶어 했고,
CCTV가 우리를 지키는지 감시하는지 궁금해 했으며,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단순한 가수의 성공인지, 아니면 한국인들의 자존감 회복과 관련이 있는지 묻고 있었다.
정답을 알고 있어서 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궁금해서 썼다.
답답해서 썼다.
누군가와 따져보고 싶어서 썼다.
그래서 블로그 이름도 '따따부따'였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최근의 나는 너무 바빴다.
글을 쓰기는 많이 썼다.
뉴욕 이야기.
집값 이야기.
지하철 이야기.
노인 이야기.
여행 이야기.
그럭저럭 읽을 만한 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는 이유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지금은 힘닿는 대로 다작을 할 생각이다.
그 와중에 자식처럼 애증이 교차하는 글 한 편 건질 날도 올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면 족하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쉰 편 가까운 글을 썼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많지는 않지만 더러 독자들도 드나들기 시작했으니, 그들이 무엇을 읽고 싶어 하는지 지켜보는 일도 중요하다.
결국 글이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쓰는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일.
나는 그 낡은 블로그를 없애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보기에는 글 세 편뿐인 볼품없는 블로그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다르다.
그곳에는 14년 전의 내가 살고 있다.
세상 물정을 지금보다 덜 알았지만,
세상에 대한 궁금증은 지금보다 더 많았던 사람.
늙지 않았고,
지치지 않았고,
아직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던 사람.
그 사람이 거기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보다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돌아보면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
사람도 잃고,
기회도 잃고,
꿈도 잃는다.
그런데 가끔은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내가 발견한 것은 블로그가 아니었다.
어쩌면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한 사람의 필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필자는 다행히도 아직 내 안에서 완전히 떠나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이번 블로그 소동의 진짜 수확은 주소 하나를 찾은 것이 아니라, 잊고 지내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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